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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모디슈머 라면 열풍
윤후의 먹방 신화를 낳았던 ‘짜파구리’ 이후 인스턴트 라면을 섞어 새로운 요리를 창안해내는 실험가들의 도전이 늘고 있다.
궁핍한 자취생들의 일용할 양식은 섞고 섞고 또 섞는 무한도전을 통해 국민 간식 반열에 오를 기세다.

인디밴드 강백수밴드의 구성원은 4명이다. 리더 강백수(29·보컬), 김덕남(31·드럼), 김홍용(26·기타), 이윤재(22·베이스기타). 이들의 꿈은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 1년 전 정규앨범 1집이 나왔다. 밴드의 일상은 평범한 우리 시대 청춘들과 다를 바 없다. 편의점과 카페, 프랜차이즈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번다. 이들에게 간편한 라면은 밥보다 가까운 주식. 지난 8월8일 낮 2시. 이들이 라면 앞에 모였다. 색다른 방법으로 조리한 라면 실험에 나서기 위해서다. 올해도 라면업계의 ‘모디슈머’(Modisumer) 열풍은 거세다. 모디슈머는 제시한 표준방법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다. 지난해 <아빠! 어디 가?>에서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끓여 화제를 낳았던 ‘짜파구리’가 그 예다. 자취 경력 3~7년 차인 이들이 여러 가지 라면 조합을 맛보며 유쾌한 맛 수다를 펼쳤다.

1. 팔도 꼬꼬면+삼양 불닭볶음면+군만두

강백수 종종 해먹을 거 같다. 둘 다 닭인데 닭 맛은 안 나는데.

김홍용 불닭볶음면을 좋아하는 이들은 싫어할 거 같아. 매운 거 싫은 사람한테 좋을 거 같다.

김덕남 요즘 불닭볶음면 충성도 높은 사람 많더라.

이윤재 불닭볶음면은 입이 얼얼하고 속에서부터 매운 게 올라오는 게 매력이다. 꼬꼬면은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국물이 매콤하다. 불닭볶음면 마니아로서는 섞는 게 싫다. 나는 불닭볶음면에 캡사이신 넣어 먹는다.

강백수 김밥집 라볶기 같은 느낌이 있다.

김덕남 내 여친은 불닭볶음면 먹을 때 닭가슴살 캔을 꼭 넣어. 이거 난 좋아.

강백수 보통 닭가슴살은 다이어트용 아니야?(웃음) 불닭볶음면은 달아서 싫은데 이건 안 달아서 좋네.

김홍용 여자들이 좋아할 거 같아.

강백수 네가 여자를 알아? 참, 여자친구 있지. 살다 보니 내가 여자친구가 없고 홍용이가 있는 때도 있군.

팀원들 중에 여자친구가 있는 이는 두 김씨들이다. 다들 그릇을 비우고 물을 마시러 간다.

* 한마디

강백수 닭 플러스 닭인데, 닭은 없다. 맛은 있어.

김덕남 비주류끼리 만나서 시너지가 났다. 라면 하면 농심인데 불닭볶음면은 삼양이고, 꼬꼬면은 팔도 거잖아, 김한길과 안철수였으면 망하는 건데, 이것은 아니구만.

이윤재 10점 만점에 5점. 각각의 특별한 색깔이 사라진 거 같아.

김홍용 슈퍼맨과 배트맨이 나라를 구하려고 만났는데 서로 손발이 안 맞는 것처럼 보여. 그래도 한번은 시도할 만해.

불닭볶음면의 마니아인 이윤재씨는 하루 세끼를 불닭볶음면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무리 줄여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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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팔도 비빔면+팔도 일품짜장

강백수 두 개의 맛이 따로 나. 왼쪽 이와 오른쪽 이가 다른 걸 씹는 거 같아.

김덕남 삼양의 열무비빔면 좋아했는데.

강백수 비빔면을 따스하게 먹는 게 문제인 거 같아. 차갑게 먹는 면이 따로 있군. 만화 <테니스의 왕자> 보면 두 명의 단식 선수가 나오는데. 복식이 낯서니깐 코트를 나눠서 맡아서 쳐.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야.

김덕남 세월호 특별법 합의한 거 같아. 유족들이랑 야당이랑 얘기가 달라.

강백수 정치 주제로 빗대니깐 있어 보여?(웃음)

김덕남 뮤지션은 사회 현실에 관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해. 흠흠. 해도 못 먹을 음식은 아닌데.

이윤재 짜장면에 비빔면의 새콤달콤한 맛이 들어간 거 같아.
모두 (웃으며) 같은 게 아니라 그런 거야.

김홍용 비빔면 수프를 줄이면 더 나을 거다. 일품짜장은 섞지 말고 그것만으로 먹는 게 좋아.

강백수 일품짜장 수프가 훌륭하지. 우리가 큰맘 먹고 먹는 라면이잖아. 비싸단 말이야.(일품짜장 권장 소비자가 1100원)

이들의 평균 몸무게는 100㎏. 갖가지 평을 하면서도 그릇은 말끔히 비운다.

* 한마디

강백수 정말 친해지지는 않는 두 남녀 같아. 매일 직장에서 만나는데 안 친해지는. 라면 섞는 요리는 좀 가격이 싼 것으로 하는 게 낫겠어.

김덕남 내가 일했던 M 햄버거 점장과 나와 관계군. 절대 안 친해졌지.

이윤재 라면의 본분을 잊었다고 봐.

김홍용 물과 기름 같다. 일품짜장과 농심 생생우동과 섞으면 맛있어. 통영에 가면 ‘우짜’ 메뉴가 있잖아.

3. 삼양 한우특뿔면+농심 블랙신라면

강백수 클래스가 비슷한 럭셔리 라면이 만났네. 아~ 역시 비싼 것은 맛있나 봐.

김덕남 쉬는 날 느긋하게 점심으로 먹는 라면 맛이야. 역시 좀 전에 먹은 국물 없는 라면은 두 개 먹어야 간에 기별이 오는데 이건 국물까지 있으니 뱃속이 훈훈해지네.

김홍용 (소고기 건더기를 발견하고) 소다!!! 건더기가 소고기처럼 살아있어. 이거 엄청 긍정적이라는 생각 든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소고기야. 맛을 떠나서 감동이야.

김덕남 소고기는 너무 이상하게 요리하지 않으면 다 맛있어.

김홍용 지금도 돈은 없지만, 진짜 돈이 없었을 때 라면만 먹었지. 600원짜리 제일 싼 걸로. 옛날 생각나. 라면이 저주스러울 때가 있었어. 먹을 게 라면밖에 없었으니깐. 이제는 이렇게 고기 건더기 있는 것도 먹고 내 생활이 좀 나아진 느낌이야.

김덕남 난 돈 없어도 빚내서 소고기 사먹었는데.

* 한마디

강백수 그냥 비싼 라~~~면!

김덕남 대학생 신분으로 집에서 여유 부리고 먹는 라면!

이윤재 건더기 질감이 살아있어서, 몸에 그나마 나은 듯한 느낌.

김홍용 (다른 음식에 비해) 싼값에 할 수 있는 자기만족 같은 거.

4. 오뚜기 스파게티+오뚜기 카레라면

이윤재 스파게티와 콕콕콕 치즈볶이를 섞는 게 좋겠어. 카레라면은 안 어울려. 치즈오븐스파게티 같은 것도 있잖아.

강백수, 김홍용 뭐라고 평을 못하겠어.

김덕남 비유하자면 암바사에 밀키스 탄 것 같아. 영화 <소나티네>에 ‘죽는 게 두려워지면 오히려 죽고 싶어진다’란 말이 있지. 그런 느낌!

다른 3명 뭔 소리야! 그 정도는 아니야!(웃음)

강백수 부조리한 맛이야.

김덕남 원래 인생은 부조리한 맛이야.

* 한마디

모두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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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삼양 불닭볶음면+농심 올리브 짜파게티

김홍용 아! 이거네. 1등이다. 아주 좋은데. 적절히 맵고 적절히 짜파게티 같고. 짜파구리에 안 져. 이게 요리지.

강백수 삼양하고 농심이 협업을 해서 제품화하면 좋겠다. 둘이 잘 만났어. 짜파구리보다 나아. 불닭볶음면보다, 짜파게티보다 훌륭해.

김덕남 맛있어! 좋아! 좋아!

강백수 결혼하고 싶어진다. 두 개 끓인 거니깐 둘이 먹어야겠군.

김덕남 나는 혼자 다 먹는데! 나는 평생 결혼 못하겠네. ㅠㅠ

강백수 여자친구와 4개 끓여 먹어라! 이거 먹으니깐 다른 거 먹기 싫다.

이윤재 짜파게티와 불닭볶음면 수프가 기막히게 잘 맞는데?

* 한마디

강백수 인간이 혼자보다 둘이 있는 게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합. 농심이랑 삼양이랑 합병해라! 밴드 합주를 이렇게 해야 돼. 우리 밴드, 이렇게 돼야 한다.

김덕남 시너지 효과라는 용어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윤재 따로 먹는 게 그냥 커피라면 이건 티오피다.

김홍용 딱 소주 안주네. 4명 모였을 때 더 멋있는 닌자거북이야. 우리 밴드의 지향점이지.

밴드 연주의 문제점이 라면 조합을 통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리더 강백수씨는 김덕남씨를 쳐다보면서 기분에 취해 약속하지 않은 비트를 쳤던 지난 공연을 말한다. “라면을 봐, 불닭볶음면만 튀지 않고 짜파게티만 튀어나오지 않잖아. 맛있잖아”라고 강씨가 웃으면서 핀잔을 준다. 김씨는 머쓱한 표정이다. 이때 김홍용씨가 가세한다. “모든 밴드는 이 라면 조합처럼 조화롭게 합주를 해야 하는 게 맞지”라는 논리를 설파하기 시작한다. 강씨가 덧붙였다. “밴드 합주가 망하면 스파게티와 카레라면 섞은 것처럼 되는 거야.” 김덕남씨의 시원한 답이 돌아온다. “오케이!”

6. 삼양 나가사끼짬뽕+농심 올리브 짜파게티

강백수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나가사끼짬뽕을 굳이 넣은 장점이 뭔지 모르겠어. 해물 같은 게 씹히는 것은 괜찮은데.

이윤재 짜파게티 맛만 강해. 나쁘지는 않아.

김홍용 분명한 건 맛이 없지는 않아.

김덕남 해물 없는 삼선짜장면 맛이군. 해물 육수에 끓인 짜장면 같다고 할까!

강백수 라면 먹다 보니 내가 쓰는 칼럼, ‘백수의 청춘식탁’ 때문에 벌어진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모 케이블방송에서 라면집착남으로 나와 달라는 섭외가 왔어. 난 뮤지션이잖아, 거절했지. 좀 지나 또 연락이 왔어. 집착남은 섭외됐고 집착남이 만든 라면의 평가자로 나와 달라고.(모두 웃음)

* 한마디
강백수 나가사끼짬뽕이 너무 센 친구 만났다. 2 대 2 미팅을 너무 잘생긴 친구와 나간 꼴이야.

김덕남 짜파게티의 유신독재!

이윤재 짜파구리가 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좋아할 거야.

김홍용 짜파게티를 물에 적셔 먹은 느낌. 맛이 비슷한 것들끼리 섞는 게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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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농심 사천짜파게티+농심 얼큰한 너구리

강백수 이건 클래식이지. 너구리 맛도 표현되는데. 짜파구리에 매운 맛을 추가한 거네. 그런데 짜파게티 봉지 사진은 사실과 달라도 너무 달라. 다른 라면은 대충 다른 재료 막 넣으면 비슷해. 그런데 이 사진은 마치 중국집에서 짜장 소스를 부운 것 같은데 이러려면 수프가 액상이어야 하잖아. 가루 수프로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이렇게 안 되지.

김덕남 지금 일하는 피자 프랜차이즈 본사에 광고 전단지랑 실물이랑 너무 다르다는 항의 전화가 많이 와. 그것과 비슷한 거네.

강백수 그럴 때는 “당신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같은가”가 물어봐.(모두 웃음)

김덕남 짜파구리는 먹을수록 나중에 느끼한 맛 나는데 매운맛 덕에 느끼하지 않네. 이건 남자 라면이라고. 메탈리카의 ‘마스트 오브 퍼피츠’ 같은 거. 라면계의 메탈리카! 라면으로 할 수 있는 모험 중에 가장 안전한 방법이군.

김홍용 ‘사천’ 들어간 건 다 맛있어. 클래식이다. 비틀스의 ‘렛 잇 비’ 언제 들어도 좋잖아.

강백수 라면계의 최민식, 류승룡이다. 흥행을 안 할 수가 없지.

김홍용 김윤석, 하정우야. 믿고 영화 보지.

* 한마디
강백수 짜파구리는 <아빠! 어디 가?>의 윤후가 먹고, 이건 윤후 아빠가 먹을 라면.

이윤재 짜파구리가 클래식이라면 사천짜파구리는 뉴클래식.

김홍용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만나 만든 ‘렛 잇 비’.

김덕남 메틸리카의 제임스 헷필드와 라스 울리히의 만남

* 라면 레시피는 라면회사 4곳이 제공한 기초정보를 바탕으로 라면 마니아들의 의견을 수렴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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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11068305_20140814.JPG » 강백수밴드의 멤버. (왼쪽부터) 리더 겸 보컬 강백수, 드럼 김덕남, 베이스기타 이윤재, 기타 김홍용.

>>> ‘모디슈머’ 라면 제조법 비결

3시간30분 동안 강백수밴드가 라면 실험을 하고 내린 ‘모디슈머’ 라면 제조법 결론.
➊ 맛의 베이스가 같은 라면을 섞는 게 낫다. 맛의 충돌이 적어 최악의 맛은 피한다. 닭 육수면 닭 육수, 소고기면 소고기 육수끼리 어울린다.
➋ 차갑게 먹는 라면끼리, 뜨겁게 먹는 라면끼리.
➌ 제조법은 거의 유사한데 건더기나 수프의 맛에서 큰 차이가 나는 라면이 잘 어울린다.
➍ 짜장면에 고춧가루 뿌려 먹는 이들이 많다. 일반인들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조리법을 차용하는 게 좋다.
➎ 조합하는 라면의 수프 양을 자신의 입맛에 맞춰 조절하는 게 좋다. 면을 삶는 시간 조절도 중요하다.
➏ 면의 굵기가 비슷한 라면끼리 어울린다.



>>> 불닭볶음면은 어떻게 모디슈머 라면의 선두주자가 됐나

 2012년 12월 출시되어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매콤한 맛의 ‘불닭볶음면’. 시장에 새얼굴을 내미는 라면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될까? 불닭볶음면은 출시 당시에는 시장의 반응이 거의 없었다. 1987년 출시됐다 우리 기억에 사라진 ‘이백냥’이나 70년대 출시한 ‘삼양냉면’, ‘카레라면’ 꼴 나기 십상이었다. 삼양식품연구소 전영일소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불기 시작한 모디슈머 바람의 영향이 컸다”라고 말한다. ‘제조사가 제시한 표준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소비자’를 뜻하는 모디슈머(Modisumer). 조리가 간편한 라면은 모디슈머들이 다루기에 대중적인 재료였다. 이들이 만든 독창적인 레시피는 블로그에 올라갔고 만들어먹어본 사람들의 후기가 댓글로 이어졌다. 불닭볶음면과 짜파게티를 섞은 일명 ‘불닭게티’는 ‘짜파구리’의 인기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고 있다.

“모디슈머 라면은 주로 젊은 층이 만든다. 국물 없고, 볶거나 비벼는 조리법에, 매운 맛이 강한 게 특징이다.” 전소장은 주소비층을 20~30대로 잡았다. 그는 매운 맛을 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연구원, 마케팅팀원들과 맵기로 소문난 맛집을 다녔다. 주로 홍대거리를 섭렵했다. 혀에 각인된 경험을 바탕으로 매운 맛을 내는 재료들을 골랐다. 청양고추, 멕시코의 ‘칠레 아바네로‘(chile habanero), 베트남산 고추, 인도의 ‘부트 졸로키아‘(bhut jolokia) 등을 구입했다. 스콜빌지수(SHU. 매운맛을 측정하는 지수)를 따졌다. 지나치게 매운 부트 졸로키아는 배제하고 나머지 3가지를 여러 가지 배합률로 섞었다. “첫 맛은 강하게 맵지만 마지막 맛은 여운이 남을 정도로 맛있어야 한다.” 연구원들과 여러 차례 실험 한 결과 스코빌지수 4400의 수프를 개발했다. 여운은 ‘그릴에 구운 치킨’ 맛을 첨가해 완성했다. 매운 맛이 완성되자 일사천리로 개발은 진행됐다. 면은 삼양라면보다 굵었다. “끓이고 볶기 때문에 가늘면 쉽게 면이 퍼진다.” 삼양라면보다 0.2~0.3mm 정도로 굵은, 4분30초 조리시간을 견딜 수 있는 면 가락이 완성됐다. 오전 10시부터 하루 4번, 그와 연구원들은 라면을 끓이고 맛을 봤다. 결과는 마케팅팀으로 보내졌다. 실험과 분석과정이 1년 이상 걸렸다. 드디어 추운 겨울 출시됐다. 신제품은 주로 겨울에 출시한다. 라면은 추운 날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불닭볶음면은 3개월이면 소비자의 선택이 결정나는 결판난다는 일반적인 법칙을 벗어난 라면이다. 특별한 광고 캠페인도 없었다. “광고를 굳이 안 해도 재구매가 이뤄지면 성공한 라면이다.”

박미향기자mh@hani.co.kr

>>> 비운에 간 ‘왈순마’ ‘이백냥’ 기억하시나요

‘왈순마’를 기억하시는지요? 1960년대 20대를 보낸 이들은 아마도 배우 강부자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왈순마는 1968년 농심(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이 만든 세번째 라면으로 베트남전쟁 당시 군수물자로 수출됐다. 배우 강부자는 왈순마의 광고 모델이었다. 거금 750만원 상당의 경품을 걸고 홍보행사를 해 당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후발주자였던 롯데공업주식회사는 삼양식품과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다. 삼양라면과 한판승부를 내걸고 출시한 왈순마는 뜻밖에 복병을 만났다.

1969년 2월25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법원으로부터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상표사용금지처분 결정을 받는다. 만화가 정운경씨가 자신의 작품 ‘왈순아지매’의 모작이라며 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 대표 신춘호씨를 상대로 상표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50년이 넘는 라면사에는 왈순마처럼 무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라면들이 많다. 수명은 짧았지만 그 시대를 반영한, 추억의 라면들이다.

최초의 라면은 1963년에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 선 시민들을 보고 라면 개발을 결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삼양라면은 매우 생소한 먹거리였다. 옷감이나 실, 플라스틱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1년이나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까지 가세해 직접 거리판매를 하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 무료 시식행사를 했다. 1965년 정부가 추진한 혼분식장려정책 등으로 라면은 점차 식탁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짜장면이 외식의 선두주자였다면 라면은 별식이나 간식의 대명사였다. 60년대 삼양라면은 10원에 팔렸는데, 60년대 말 명동, 북창동 일대의 짜장면 가격은 50~70원이었고, 커피와 홍차는 35원이었다. 삼양라면은 잠깐 시장에서 사라졌다가 1994년에 재출시됐다. 농심의 ‘소고기라면’도 1970년에 출시됐다가 1999년 복고풍 바람을 타고 다시 출시된 라면이다. 닭고기 맛 국물 위주였던 당시 시장에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70년대에는 색다른 라면들이 많이 출시됐다. 지금 인기인 짜장류의 라면도 있었다. 삼양식품에서 출시한 ‘삼양짜장면’이 그것. ‘삼양냉면’, ‘카레라면’도 70년대 출시된 라면이다. 이 라면들은 여전히 배고팠던 시절, 시대를 너무 앞서간 나머지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카레는 건강식 이미지다. 1986년 농심도 카레에 라면을 비벼 먹는 스타일의 ‘카레게티’를 출시했으나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삼양식품의 ‘우유라면’도 눈에 띄는 추억의 라면이다. 삼양식품연구소 전영일 소장은 “우유를 면 반죽에 섞은 라면인데 끓이고 나면 국물에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우러나는 라면이었다”고 회고한다. 순한 맛의 우유라면은 매콤한 맛에 대한 선호가 늘어나면서 시장에서 사라졌다. 얼큰하고 매콤한 맛의 ‘신라면’은 86년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다. 라면시장은 이후 순한 맛과 매콤한 맛으로 양분된다. 이듬해 삼양식품도 매운맛의 ‘이백냥’을 출시했으나 신라면처럼 오래가지는 못했다. 제품 이름이 명쾌하게 맛을 설명해주지 못한 게 이유로 꼽힌다.

지금 컵라면계의 시조쯤 되는 ‘삼양컵라면’(1972년 3월 출시)도 50~60대들에게 추억의 라면이다. 당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생소하기도 했고, 간편식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 주방을 책임졌던 여성의 사회진출도 그다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 넘어와 설렁탕이나 부대찌개, 라볶이, 짜장면, 우동, 짬뽕 같은 친근한 먹거리를 차용한 라면들도 쏟아졌다. 라면 신제품은 출시되고 3개월이면 시장에서 살아남을지 판가름이 난다고 한다. 소비자의 입맛 유행과 변화를 제대로 반영했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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