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독자사연 맛 선물

우리 집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빠듯한 살림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집밥’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어머니께서 ‘하실 줄 아는’ 요리만 먹고 자랐다. 어머니의 한정된 레시피에서 벗어나게 된 건 대학 입학과 함께였다. 애교 섞인 웃음과 함께 “선배~ 밥 사주세요”라며 매달리는 건 새내기들만의 특권! 공짜 밥 얻어먹는 데 재미를 붙인 나는 눈에 익은 선배만 보면 들이댔고, 하늘 같은 복학생 선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94학번 선배와 밥 약속을 잡았다. 선배는 나를 학교 앞 정식을 파는 집에 데리고 갔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즐거운 고민에 빠진 날 보며 선배가 말했다. “이 집 순두부 잘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전 순두부찌개 할게요.” 잠시 뒤 몇 가지 반찬과 함께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는 찌개 하나가 내 앞에 놓였다. “아, 맛있겠다. 그런데 이 집 반찬 좀 특이하네요. 삶은 달걀 주는 집은 처음 봤어요.”

“어? 삶은 달걀?” 나는 작은 접시 안에 있는 달걀 두 개를 가리켰다. “너 순두부 처음 먹어보니?” “아~ 네. 엄마가 순두부찌개는 해 주신 적이 없어서….” 갑자기 선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달걀의 용도를 설명해 주었다. “이거 날계란이야. 찌개 다 먹고 나서 얼얼한 입속 달랠 때는 요 날계란만한 게 없거든.” “계란을 생으로 그냥 먹어요?” 동그래진 내 눈을 보고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두부찌개는 그렇게 먹어야 제맛이거든.”

순진했던 나는 순두부찌개를 맛있게 먹은 후, 날계란 하나를 톡 깨서 쪽 빨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선배는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순두부찌개는 보글보글 끓을 때 달걀을 풀어 반숙으로 익혀 먹는다는 걸 안 건,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얼마나 민망하던지 순두부찌개를 해 주신 적이 없던 어머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뒤로 선배는 나만 보면 “야! 날계란!” 하고 불렀고, 우린 항상 티격태격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10년. 밥팅 하던 그때가 참 그립다. 오늘 저녁은 청홍고추 송송 썰어 넣은 얼큰한 순두부찌개에 달걀 하나 톡 깨서 내야겠다. 그럼, 남편은 또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겠지. “너희 엄마가 있지~, 아빠 처음 만났을 때 날계란을 말이야….”

한경화/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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