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조리법 활용한 레스토랑들 
‘레어’ 돼지고기 요리 트렌드 논란
과거와 달리 기생충 감염 없어도
한국선 여전히 “바싹 익혀야” 인식
이탈리아 레스토랑 ‘로칸다 몽로’에는 분홍빛 돼지고기 안심스테이크(오른쪽 사진)가 있다. 보들보들하고 촉촉한 식감이 식도락가들을 사로잡는다. 분홍빛 때문에 때로 손님들은 덜 익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 찬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수비드(장시간 저온 조리법)를 활용한 스테이크다.

주인장겸 요리사인 박찬일씨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지에서 돼지고기를 ‘레어(rare)’, ‘미디엄 레어(medium rare)’ 정도로 익혀 먹는 식습관을 떠올리고 그 맛을 구현하는 데 유사한 조리법을 활용해 만들었다. 주로 유럽 국가들에서는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어왔다. 모던 한식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과거 그가 일한 ‘노부 마이애미’나 스페인의 레스토랑에서도 분홍빛이 돌도록 덜 익힌 스테이크를 보고 놀랐다. 그는 “족발이나 정강이는 푹 익히지만 안심이나 등심은 미디엄 정도로 익힌다”라고 말한다.

몇몇 레스토랑의 이런 ‘레어’돼지고기 요리 트렌드를 언급한 기사(<한겨레> 8월13일치 18면 카페풍 삼겹살집 4곳 비교)를 계기로, 최근 에스엔에스(SNS)에서 일반인은 물론 교수나 식육마케터 등 관련 전문가들 사이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어도 되나’가 논란이 되고 있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한국에선 돼지고기는 바짝 익혀 먹어야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심지어 고기를 굽는 데 쓴 젓가락으로는 다른 음식을 집어 먹어서도 안 된다는 속설까지 있다. 기생충인 갈고리촌충과 그 유충인 유구낭미충, 섬모충 감염을 우려한 탓이다.

특히 성충인 갈고리촌충은 한자리에 있지만 유충인 유구낭미충은 사람 몸 안에서 돌아다닌다. 피부뿐만 아니라 뇌로도 가는데, 뇌에선 간질 발작의 원인이 된다. 이런 위험천만한 기생충들은 77도 이상의 불에 가열해야 죽기 때문에 익혀먹는 건 상식이었다.

의학계나 축산업계는 돼지에 더이상 인분을 먹이지 않는 요즘엔 감염 우려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기생충 박사’로도 잘 알려진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는 “지금 유구낭미충은 박멸됐다. 1960,70년대만 해도 인분을 돼지사료로 썼지만 80년대 들어서 사육시스템이 바뀌었다. 1990년을 마지막으로 갈고리촌충의 유충을 보유한 돼지가 발견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또 멧돼지 등 야생동물에서 주로 발견되는 섬모충은 사료를 먹여서 키우는 돼지사육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한국축산컨설팅협회 김준영회장도 “제주도에서 관광증진용으로 인분을 활용한 제주 똥돼지 시연행사를 하기도 하지만 국내 사육되는 돼지가 인분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음식인 잔반사료를 먹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대부분 사료를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반론도 거세다. 요리연구가 이보은씨는 최근의 논쟁 자체가 “달갑지 않다”면서 “가족에서 굳이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과 근육이 적당히 섞여 있는 소고기와 달리 우리가 주로 먹는 삼겹살이나 오겹살, 목살은 지방층과 살이 확연히 나눠져 있는데 그것을 덜 익히면 식감과 맛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치킨도 뼈에 핏물이 보이면 더 익혀달라고 얘기하는 게 우리 식문화”라면서 “굳이 우리가 외국의 식문화를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주부 김지영씨는 “박멸되었다고 하나 한 종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건 믿기 어렵다”면서 “‘만의 하나’의 위험 때문에 익혀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이 1970년대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덜익은 고기에 대한 불안은 강하다. 반면 레스토랑 업계는 식재료의 재발견을 위해 레어나 미디엄으로 조리하는 돼지고기 요리도 우리 식문화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 내용은 2015년 9월1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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