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seoul@naver.com
mayseoul@naver.com
[토요판] 인터뷰 ; 가족
40대 딸과 60대 엄마
▶ ‘젊다’ ‘젊어 보인다’는 상대에게 하는 긍정적인 말입니다. ‘나이 들었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상대에게 해선 안 되는 말로 이해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젊기도 늙기도 하는데 왜 시간의 전반부는 긍정적으로, 후반부는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질까요? 시간의 후반부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다들 오지 말라고 손사래부터 치거나 천천히 오길 바랍니다. 마흔이 된 딸과 육십대가 더 행복하니 너의 나이듦을 기다리라는 엄마가 여기 있습니다. 두 여자의 대화를 들어보세요.

지난해 겨울. 엄마 생신 날 엄마랑 빵집에 갔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고른 케이크를 계산하려는데 점원이 물었다. “초 몇 개 필요하세요?” 순간 굳어버렸다. ‘우리 엄마 나이가…’ “엄마, 올해 몇 살이야?” “육십넷.” “육십사? 엄마가 예순넷이라고? 엄마가? 그럼, 내년이면 65세. 노…노인이야?” “그럼~ 이제 지하철도 공짜야(웃음).” 그때의 충격이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좌절감 같은 거였다.

나에게 엄마의 나이는 오십대에서 멈춰 있다. 그 이후로 엄마의 나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철딱서니 없기는. 그래서 ‘장면 전환용’으로 건넨 질문이 지금 생각하면 더 가관이다. “하아, 65살이면 엄마 많이 우울하겠다. 노인이라니. 나는 마흔 되는 것도 우울한데.” “아냐, 전혀 안 우울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다잖아. 근데 진짜야. 너도 기대해. 60~80살이 제2, 제3의 전성기가 될 수 있어. 잊지 말렴.”

우문현답이다. 마치 내 앞에 한 위대한 구루가 서 있는 느낌이랄까. 그날 이후 엄마는 내 인생 최고의 멘토이자, 가장 존경하는 여성으로 자리를 굳혔고, 나는 올해 그런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담대하게 ‘불혹의 나이’ 마흔을 맞았다. 진정한 ‘노인’이 된 엄마와 마흔이 된 딸. 우리는 내가 마흔이 되는 날, 나이 듦에 대하여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말썽 피워도
한번도 부정적 소리 안하셨죠
내게 기대와 욕심을 안 부렸어
엄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

엄마
딸 시집보내고 손주 나오니
사랑과 행복이 뭔지 알겠어
그런 과정 거쳐 노후 보내면
인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 믿어

 엄마, 마흔이 되니까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실감이 난다? 마흔이 되면 우울할 줄 알았는데 희한하게 행복감 같은 게 밀려드네?

엄마 새로운 세계가 오는 거지. 곧 학부모도 되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기 같은 게 있잖아. 사춘기 비슷하게.

엄마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지. 책으로 보는 게 아니고 체험했다고 할까. 자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깨달음이야.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한 상태지. 딸 시집보내고 손주가 나오니까 세상 이치를 알겠어. 아! 인간에 대한 애틋함. 그 전까지는 이기적이었지. 손주 보고 나서는 마음이, 모든 걸 내려놓게 돼. 사랑이라는 거에 대해서 뭐가 와.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달라. 달리 보여.

 인생의 순환을 봐서 그런가?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신 걸 봤고, 또 새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는 걸 보니까.

엄마 예전에 아이엠에프(IMF) 때 부도난 상태로 망해버렸으면, 이겨내지 못했으면. 먹고사는 거에 치여 음지에 머물면서 사람도 미워하고 그랬을 거야.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너희가 잘돼서 예쁜 손주도 낳고 그렇게 됐기 때문에 나한테 다시 빛이 온 거야. 모든 거 다 내려놔도 행복해.

 그게 언제부터야?

엄마 손주 나오고부터. 손주를 보는데 다 예쁜 거지. 눈, 코, 입 뭐 다 예쁜 거지. 안 예쁜 데가 없어. 머리카락 한 올까지 예쁜 거야. 그러고 나서 매사에 행복을 느낄 줄 알게 된 거지.

 할머니 되면 우울하지 않아? 엄마가 한 말 중에 ‘60~80살에 제2의 전성기가 올 거다’ 그 말이 되게 감동적이더라고.

엄마 하나하나 감사하게 여길 줄 알게 됐고. 깨닫게 되는 거야. 인생에 대해서. 김형석 교수님이 말씀하시듯. 지금 96살인데도 철학 강의 몇 군데 하시고 아주 정정해. 너희 세대는 잘 모를 거야. 우리 세대 때는 가장 존경받는 분이었어. 너 이어령 교수님 알잖아. 말하자면 그런 분. 그분도 그전까지는 철학자고 교수래도 삶에 대해 잘 모르고 정신없이 살았다는 거야. 옳은 답을 못 찾고. 근데 60살 넘어서 알게 됐대. 이해가 되더라고.

 이치를 깨닫는 나이라는 거야, 육십이?

엄마 응.

 좋은 얘기다. 주변에 보면 나이 들어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외로움을 많이 타고. 왜 노년에 우울증이 많다고 하잖아. 근데 엄마는 허리가 아픈데도 그렇다는 게 참 대단한 거야.

엄마 첫째는, 너희들이 잘 살고 허리는 내 마음대로 못 써서 불편하긴 하지만 죽었다 살아났다 생각하면 감사한 거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울하지 않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잘한 것에도 행복해하면 돼.

 밥 먹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엄마 따뜻한 방에 누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데. 나는 화려하게 사는 게 하나도 안 부러워.

 엄마 원래부터 그랬어. 돈에는 욕심이 없었어.

엄마 나는 그냥 신경 안 쓰는 게 행복한 거야. 요새는 뉴스 너무 무서워. 결심했어, 뉴스 안 보기로. 한 이틀은 잠이 안 와. 요 며칠 그 사건 보고 잠이 안 와서 아침에 일어나는데 휘청하더라고.

 나는 친부모가 그런다는 게 도저히. 근데 엄마, 나보고 어떻게 애 보고 짜증이 안 나냐고, 밉거나 그런 적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 남편이 미우면 자식이 미울 수도 있다는 사람도 있고. 깜짝 놀랐지.

엄마 남편이 미워도 모성애는 별갠데? 그런 여자들도 많은데. 자식은 다른 거거든. 참 이상하네.

 나는 미운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너무 예쁘고. 이것 또한 감사해. 돌이켜보면 엄마한테 맞아본 기억이 한 번도 없는 거야. 잘못을 많이 했는데도 엄마가 날 한 번도 안 때렸어. 어린 시절에 혼난 기억이 없더라고. 사랑도 대물림이구나 생각했지.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았구나. 우리 애한테 내가 하는 걸 보면 나 어릴 적 엄마가 떠올라.

엄마 자식이 잘못하면 매를 든다거나 혼을 낸다, 나는 그거 아니라고 봐. 학교 들어가면 저절로 배우는 건데. 애들이 저절로 깨달아 가거든.

 엄마를 보면 어떤 희망이 드냐면, 나이 드는 게 우울할 수 있잖아? 특히 여자는, 늙어가는 모습 보는 거라든가. 근데 엄마 보면 ‘노년에도 내가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엄마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본인이 잘만 하면 점점 더 재밌지. 더 행복한 길로 갈 수 있는 거야.

 내가 엄마 아빠한테 받은 최고의 선물은 행복을 느끼는 지수가 높다는 거?

엄마 행복이 뭔지 깨닫는 게 인생 공부야.

 내가 중학교 때도 그렇게 공부를 못했는데 혼낸 적도 없었고.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거나, ‘저거 저래서 되겠어? 대학이나 가겠어?’ 그런 얘기 주변에서 다 하는데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하는 거야. 밤낮 공부도 안 하고 말썽만 피우는데도 한 번도 그 소리를 안 하는 거야.

 그나저나 동원이(아들) 장가가고 나면 ‘빈둥지 증후군’ 올 수 있는데?

엄마 아냐, 나는 그냥 행복하게 살아주면 돼. 내가 동원이한테도 여자친구 만날 때 엄마에 대한 얘기 절대 하지 마라 그랬어. “우리 엄마는” 뭐 이런 얘기 꺼내지도 말라고. 독립체로 살아가길 바랄 뿐이야. 나한테 올 필요도 없어.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하고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해.

 결국 사람이 욕심이 있어 우울한 거야.

엄마 맞아. 살면서. 기대가 있다거나 욕심 있을 때.

 요새 마음이 많이 편한 게 욕심이 없어져서. 연기자로 직업을 전환한 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다들 내가 미쳤다지만. 그리고 이 일 덕에 운동을 꾸준히 한 3년 했더라고. 엄마, 나 한 번 만져봐.

엄마 어후, 너 왜 이렇게 돌덩이 같냐.

 건장해졌거든.

엄마 하하하. 왜 이렇게 돌덩이 같냐. 세상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시겠다. (할아버지는 늘 나보고 군대 가라셨다.) 행복이란 옳은 길을 생각하면 돼. 그런 과정을 거쳐 노후를 잘 보내면 인생이 헛되지 않지. 누구는 인생이 헛되다고, 장국영 같은 스타들 자살하고 그랬잖아. 절대 허무하지 않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많으면. 요만한 데서 행복을 느끼는 그 묘미를 알면 돼.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를 데리러 태권도 학원에, 엄마는 장을 보러 가신다며 동네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는 무와 야콘, 파프리카 등을 넣고 만든 장아찌가 참 맛있게 담가졌다며 늘 그렇듯 정성껏 적은 레시피 메모를 곁들여 저녁 찬거리로 가져다주셨다. 이런 게 행복이다. 엄마가 지난 연말에 보내주셨던 카톡 메시지를 다시 찾아봤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함의 깊이에 달려 있다.’

불혹이 된 분당 아줌마


(*위 내용은 2016년 1월22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 [가족] 출산 뒤 “피곤해” 거부…남편의 폭발 “내가 짐승이야?” imagefile [2] 베이비트리 2012-04-16 25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