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기자님 이래로 죽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젝트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면서 제 차례는
언제 쯤일까... 어떤 분에게 바톤을 이어받게 될까... 내심 궁금하고 설레었는데
같은 열두살 첫 아이를 키우고 있는 윤영희님에 이어서 글을 쓰게 되어 퍽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관심있게 살펴보던 여러 분들의 책장에서 반가운 책들을 발견하는 기쁨고 컸고, 내가
미처 관심두지 못했던 분야와 작가들과 책들을 만나는 설렘도 정말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순서를 맡게 되면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 혼자서 미리부터 두근거리며 고민을
해 오던 참이었는데 역시 막상 쓰려고 하니 쉽지 않네요.
마흔 다섯해를 살아오면서 빚진 책이 어디 열권 뿐이겠습니까. 하지만 깊이 생각하기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오르는 책들을 적어봅니다.
 
1.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2차대전 당시 유태인으로서 나치의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던 정신과의사 '빅터 프랭클' 박사의
실제 경험담을 중심으로 풀고 있는 이 책은 심리학과에 입학에서 첫 수업을 받을때 상담 전공
교수님이 권해 주셨던 책입니다. 명예, 사회적 지위, 사랑하는 아내와 모든 것을 다 잃고
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진 주인공은  매일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포로 수용소에서 비로소
자신의 실존과 마주합니다. 언제 죽을지조차 알수없는 극한의 공포와 비참한 환경속에서도
저자는 생의 의미를 쉼없이 찾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그 경험을
통해 '로고 테라피', 즉 '의미 치료'라는 새로운 정신분석 개념을 완성합니다.
대학시절, 잘 안되는 연애와 집안의 궁핍함, 암울한 미래, 내 자신에 대한 불안함으로 수없이
휘청거리며 우울과 두려움에 자주 빠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책장에서 이 책을 다시 찾아
읽곤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간들의 의미를 곱씹곤 했습니다.
읽을때마다 나는 깊이 감동했고 새로운 깨달음과 위로를 얻곤 했습니다.
이젠 내 삶에 어떤 일들이 와도 젊은날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쓸 뿐 입니다. 삶의 고비속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2. 한강 - 조정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작가 조정래에게 빚을 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리랑',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으로 이어지는 대하 소설 3부작은 이 나라의 근현대사를
가장 생동감있고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강'은 남편을 만나 짧은 연애를 하던 2002년 봄에 읽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어서
한권, 두권 빌려보다가 서점에 앉아 내리 일곱시간 동안 코코아 한 잔으로 버티며 기어코
그 때까지 나와 있던 모든 권들 다 읽어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굉장한 몰입은
처음이었습니다. 다 읽고 일어섰을때는 머리가 다 핑하고 돌더군요.
우리가 이루어 낸 고도성장의 그늘 아래 수많은 아픔과 비극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내 나라의 참 모습을 발견한 기분이었달까요,
그 후로는 어떤 풍경을 보아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상처에 더 먼저 마음이 가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쉬지않는 필력으로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고 있는 작가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보냅니다.
 
3. 해리포터 - 조앤 롤링
책께나 읽는 사람으로서의 어설픈 자존심이랍시고 누구나 다 읽는 책엔 여간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꽤 늦게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는 순간부터 정신없이
빠져들었지요. 이 책과 더불어 10년을 살았습니다. 어떤 책의 주인공들과 함께 성장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경험은 이 책이 처음이었습니다. 한 권 두 권 책이 발표될때마다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어버리고는 몇 년씩 다음 편을 기대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 친정의 다섯 자매가
모두 펜이 되어 함께 열광했던 것도 흐믓한 기억입니다. 아이들 책인줄 알았지만 삶의 두려움을
직면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져 또 10년간을 같은 배우들과 함께 나이들어 갔고, 이젠 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또다른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 시리즈를 벌써 세 번이나 독파한
큰 아들에 이어 여덟살 둘째가 해리포터의 세계에 입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순간은 여전히 마법안에서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4. 마음으로 가는 길 - 오쇼 라즈니쉬
젊은 시절 한때 라즈니쉬에 심취해서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번번이 상처받고 마는 연애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게 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나를 일으켜줄 수 있는 영적인 스승들에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대학교 중앙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했는데 내가 읽기 전에 7년간 아무도
대출한 적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7년만에 내 손에 들어온 책이라는 것이 이 책을 더 특별하게
여기게 했을 겁니다. 안정효님이 번역한 이 책은 삶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해 라즈니쉬가 설파하는
지혜들을 담고 있는데 그 시절 나에겐 큰 위로와 힘을 주었던 책입니다. 이 책을 계기로 한동안
라즈니쉬의 책들을 섭렵하며 지내면서 요가에 입문하고 명상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젠 라스니쉬의 책들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지만 내 젊은날의 방황을 돌아보면 그 안에는
라즈니쉬의 책들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는 구절을 이 책에서 읽은 것이 1993년도 였습니다.
지금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지혜들의 힘은 여전할 듯 합니다.
 
5. 사랑의 학교 - 이원복
어린시절 우리 집에는 하얀색 하드커버로 된 아주 두꺼운 만화책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그 만화책은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로 유명한
이원복 선생님이 그린 책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세계 여러나라의 감동적이고 재미난
일화들을 만화로 엮어놓은 책이었는데 다섯 자매들이 마르고 닳도록 돌려 읽었던 책입니다.
정작 그 두꺼운 책은 자라면서 다 헤어지고 망가져서 어느결에 없어져 버렸지만 책에서 읽었던
만화의 내용들은 자매들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가 큰 언니로부터 이 책이 두 권의 단행본으로 다시 재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뛸듯이 반가와하며 서점으로 달려가 자매들이 모두 다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며 읽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내 어린날처럼 근사한 하드커버가 아니라 평범하고 촌스런 외관을 하고 다시 나온게 아쉽기는
하지만 변함없는 내용은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려 줍니다.
이 나이 들어 다시 읽어도 정말 재미있는 책 입니다.
 
6. 뜻으로 본 한국역사 - 함석헌
나는 이 큰 스승을 너무 늦게서야 만났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 정말 전율하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책과도 다른
함석헌 선생님의 역사관은 교과서적인 지식으로 차 있던 내 머리를 온통 다 흔들어 버릴만큼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국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 고난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속에 있는 귀함을 찾아서 역사를 바로 세우라는 일깨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에도 여전한 고난 속에 있는 이 나라를 생각할때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주고 가신 가르침을 우리의 지금 삶 속에서 어떻게 펼칠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7. 무탄트 - 말로 모건
미국 여성 말로 모건은 새로운 삶을 찾아 이주한 호주에서 내륙에 사는 한 원주민 부족의
초청을 받아 그들과 동행하게 됩니다. 몇 시간 정도의 만남을 생각하고 따라 나섰던 저자의
여행은 120일간 그들과 함께 하며 호주의 가장 깊은 내륙을 탐험하게 되는데요, 문명인의
눈으로 보기엔 한없이 미개한 원주민들이지만 삶의 깊은 지혜와 통찰은 문명인이던
저자의 삶,자체를 바꾸어 놓게 됩니다.
말 보다는 마음의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참된 가치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은 오랜 문명에 찌들어 있던 저자에게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날을 축하하지만 원주민들은 내가 더  좋은 존재가 된 날을 축하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본인만이 알 수 있으므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스스로 잔치를 열어 축하를 받는다고
합니다. 원주민들에게 질병은 나쁜 일이 아니라 나와 삶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기회
로 여겨집니다. 원주민들 가운데 새 생명이 태어나면 그 아기는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이 여행길에서 너를 도와주겠다'는 말을 최초로 듣게 됩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생을
마감할때 또 한번 모든 부족 사람들을 통해 들려집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진심으로 한 존재를 사랑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사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 글을 쓰면서 몇 년 만에 다시 꺼낸 이 책을 읽으며 또 다시 감동받고 있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길어지다니... 애들 재우고 쓰기 시작했더니 벌써 자정이 다 되가네요.
밤 열두시가 넘으면 호박으로 변하는 지라 나머지 세 권은 내일 올려드리겠습니다.
별것도 없으면서 괜히 여지를 남겨두는 유별남이라니....ㅋㅋ
 
모쪼록 재미나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ㅎㅎ
 
축하한다는 원주민들의 지혜는 내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2014.10.13  v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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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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