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퇴근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습니다.
남편도 늦는다고 했는데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회사를 나왔으니 맘이 급해
달리는 듯 걸었죠.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한번씩 안아주고 손을 씻으려 하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지요.
식탁의자가 거실에 나란히 붙여 있었고, 바닥에 이불도 깔리고, 작은 쇼파도 위치가 바뀌어 있었죠.
이렇게요.
'오늘 뭐 재미있는 놀이를 했나? 이거 다 언제 치우나...'
생각하며 저녁 식사를 하려고 의자를 빼오려는데
아이들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앉으라고 하더군요.
순간 피곤한 마음에 귀찮았으나 너무하나 싶어 귀를 기울여 줬죠.
"엄마는 키 큰 어른이니까 앞에 바닥에 앉아주세요.."
할머니는 쇼파에 앉아 계셨고 관객은 엄마 한 사람인데...
의자에 앉고 싶었으나 바닥에 혼자 뻘쭘하게 앉았습니다.
"애들아 뭐하게? 엄마 손 씻고 밥먹어야지. 오늘 어린이집 수료식은 잘 했어?"
"엄마 우리가 인형극 할꺼야."
오잉.. 웬 인형극...
집에서 인형극 공연은 처음이었죠.
이때를 놓칠세라 폰을 꺼내 영상 녹화를 꾸욱 눌렀습니다.
"그래 해봐...박수... 짝짝짝..."
그러고 보니 베란다도 평소와 달랐어요.
인형과 장난감등 그곳에 없던 물건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지요.
"자.. 오늘의 인형극을 시작하겠습니다.
인형극 제목은 곰돌이와 친구들입니다~. 인형극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큰 아이가 인형극을 진행하고 작은 아이는 나름 보조 역할을 하며
무대 주변을 서성거렸죠.ㅋㅋ
큰 아이가 바닥의 대본(?)을 느릿느릿 읽으며 새로운 인형들을 등장시키며 극은 진행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줄거리를 알 수 없는 실험적인(?) 이야기를 선보였고 폰을 들고 있는 엄마의 팔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아이들 인형극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숨을 죽여가며 공연을 감상했죠.

금방 끝나겠지 싶었던 공연은 11분을 넘겨 11분 31초에 끝이 났지요.
인형극 공연을 마치고 아이들은 비로소 외할머니와 엄마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보아하니
둘째 아이 수료식때 그간 작업한 작품들을 받아와서 그것을 인형극에 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대본이었습니다.

어떨결에 본 공연이었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준비하고 연습한 걸 생각하니 기특하더군요..
내용이 궁금하시죠?
대본입니다.
인형극 제목:공돌리와 친그들
1. 예들아 저기 여자아 곰돌이 쌍둥이다 와~~
2. 근데 1명은 크고 1명은 작아 왜 그럴까
3. 그떼 뽀로로가 나타낟어요
4. 그떼 3명 친그들은 쩌기에 발자국이 보였어요
5. 쿵캉쿵캉 발 쿵캉 거렸어요
6. 발짜국이 컸어요
7. 그떼 저기에서 달팽이가 왔어요
8. 예들아 큰일낟어 %&%*$(% 큰 사람이 와 &^%% 말했어요
9. 그떼 하늘에서 예쁜는 왔어요
10. 그레서 아이들은는 사람을 만들었어요
11. 그런데 사람의 손짜국이 들었어요.
12. 그런데 땅에 나문잎 1게 복였어요.
13. 그떼 눈이 녹아 버렸어요.
14. 그런더 그 떠랑(?)에서 꽃이 피었어요.
15. 리라쿠마가 꽃을 땃어요
16. 그떼 친그들은 바다에 갔어요
17. 바다에 가서 돌고래를 만났어요
18. 그떼 루피가 저~기서 과자를 가지고 왔어요
19. 예들아 네가 먹을 것을 가지고 왔어요
20. 그떼 사람에 엑자가 2개가 보였어요
21. 예들아 저기 사람의 엑자가 보여
22. 예들아 입술을 찍은 사진이 보여
도무지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는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대본이었지요.
그리고 등장인물이 아주 많았던 인형극이었습니다.
1월말에 인형극을 보여줬었는데 나름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사실 걱정이 많이 되는 대본입니다. 올해 초등학교도 입학하는데요...
학교가서 잘 배우겠지요?^^
사랑스러운 딸들아엄마가 공연 정말 감동적으로 봤단다.다음에도 좋은 공연 기대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