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엔 친정 엄마 생신이 있다. 일본에 살땐 신정을 보내러 꼭 한국에 나갔었기 때문에 함께 생신을 축하해드릴 수 있었는데, 미국에 오니 그것도 어려워졌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치니 외로움 한바구니가 가슴에 넘친다. 아이들의 일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면, 외국에 사는 외로움은 잠시 자리를 비켜가는데, 연말연시가 되면 다시 고개를 들곤 한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은 나에게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IMF의 여파로 친정 아빠의 실직과 사업실패로 한동안 마트의 점두에서 장사를 하셨던 엄마. 촛불의자라고, 큰 알루미늄 통에 촛불을 하나 넣고 앉아 찬 바람에 손을 녹이시며 앉아있는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아려오곤 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삼남매에게 달마다 생필품이며 반찬을 택배로 보내셨다. 서울가는 기차값대신 택배비 4000원이 너무 싸다며 초긍정주의신 친정 엄마는 호탕하게 웃으셨다. 본인은 워낙 글솜씨가 없고 악필이라며 어릴적 우리는 엄마의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택배에 엄마의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일명 골판지 편지라고 우리는 불렀는데, 과일 상자를 열어보면 맨 위에 덮혀져 있는 골판지 한장. 그 종이에 엄마는 한가득 정말 알아보기 힘든^^;;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내셨던 것이다. 택배가 도착하기 무섭게 우리는 그 골판지 편지를 먼저 읽어보겠다고 다투곤 했는데, 엄마의 골판지 편지를 읽으며 이내 코 끝이 시큰해졌다. 힘든 시기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렇게 삼남매는 타지 생활을 더 열심히 해 나갈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일본에서 살게 된 작은 딸이 엄마는 못내 아쉬우셨던 모양이다. 그 때만 해도 070인터넷 전화기가 없던 때라, 국제전화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전화통화를 자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처음 키보드를 치는 날이었나보다. 나에게 연습삼아 메일을 보내왔는데, "작은 딸 안녕" 그 한줄의 메일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엄마의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는게 일상이었다. 070전화기를 사용하기 전까지 9개월간 엄마와 나는 그렇게 메일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었다. 나중에 그 메일들이 너무 아까워 책으로 만들어서 엄마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엄마는 생애 처음 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책이라며 너무나도 기뻐하셨다. 두권을 주문해서 엄마 한권, 나 한권, 서로의 책장에 꽂아두고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들쳐보는 엄마의 편지글은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주고 있다.

 

IMG_0598.JPG    IMG_0599 (1).JPG

지금은 실시간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시차로 인해 전화통화가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한국의 아침시간 여기 저녁시간이면 070인터넷 폰으로 엄마와 딸의 폭풍수다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이어진다. 참 좋은 세상이다.

 

며칠전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마의 장문의 카톡 메세지가 와 있었다.

"세월이 참 잘간다. 우연히 책보다가 네가 엄마한테 선물한 사랑의 메세지 책이 눈에 들어와 잠깐 읽어보는데 참 감격스럽더라. 자랑스러운 엄마 작은 딸. 처음 결혼시키고 해외로 보내면서 기쁜 마음이 가득하여 메일 주고 받고 참 행복했구나.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 있다니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살인가? 연말이 다가오니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그러네. 일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감사할 일이 너무 많구나. 추억도 많고. 엄마 아빠가 너한테 많은 행복을 선물받았구나. 고맙다. 사랑의 편지는 못보내도 시대에 맞춰 카톡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참 좋구나. 여름에 오면 오래 있다 가거라. 엄마 아빠 걱정 말고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살아야한다."

 

환갑을 지난 엄마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계신다. 내일은 발 뒤꿈치가 아프신 엄마가 편하게 신을 신발을 사러 가야겠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 더욱 와 닿는 엄마의 사랑. 조건없는 사랑. 품어주는 사랑. 따뜻한 사랑. 찬 겨울도 녹이는 사랑...

 

학교 버스에 내려서 나에게 달려와 내 품에 폭 안기는 둘째가 그런다.

 

"엄마! 나는 학교에 있어도 엄마가 보고싶어!"

'응...엄마도 엄마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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