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나의 일과.
나에게 시간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나인 시간'과 엄마이면서 아내로 사는 '앞치마인 시간'.
아침과 오후 나인채로의 일과가 바쁘게 지나가면,
꼬마가 돌아오고, 챙기고 잔소리하고 정리하다가 정신차려보면 밤 열시쯤 되어 있는 것 같다.
엊저녁.
정신못차리고, 폭풍 설거지를 하던 나에게
꼬마가 오늘 있을 할로윈 파티를 즐기고 돌아오면
"점박이"영화(EBS에서 만든 공룡영화)를 보여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나는 물론, 건성으로 '그러마'하고 대답을 했던 모양이었다.
오늘.
작년에 입었던 배트맨 옷을 짤뚱하게 입고 파티를 즐겁게 마치고 온 녀석이 후다닥 자기 할일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왠일이래..싶었는데, 자기가 할일을 마치고 나면, 점박이 영화를 틀어달란다.
나는 물론 금시초문.
점박이를 어쩌고 저쩌고 했던 걸 들은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약속한 건 정말 까맣게 몰랐으니 자동으로 "안돼-" 소리가 나왔다.
계속해서 쉴 틈이 없어 정신적 여유도 없는데다가,
TV를 보면서 뇌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지양하고자 하는 나였기에,
가치없이 NO를 외쳤으니, 꼬마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
바로 찡얼찡얼 대면서 눈물바람을 하기 시작했다.
꽥-!!!!!!!!! ('안됐다고 했자나!!')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버리고선 나도 놀랐다.
아니.. 내가 또 내 짜증을 아이에게 풀고 있구나 싶어서.
다시 한 번 정확히 이야기 하게 했다.
엄마가 약속했었니? 언제? 어디서? 어떻게?...차근차근 물어보니,
내가 어제 건성으로 대답하며 약속했던 것이 아주아주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소리지르며 짜증냈던 것은 바로 사과했다.
아이가 여섯살이 되니 이런 건 바로 사과해야 옳은 것 같다.
꼬마 입장에서는 약속해놓고 짜증내고 소리까지 꽥-지르는 엄마가 되어 있었으니..
쫌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나의 분노를 제압하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 화를 내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아이를 혼내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해소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때마다 나의 이 미완성된 모습때문에 아이에게 상처가 남진 않을까 심한 후회도 든다.
엄마도 인간이고, 인간은 미완성 존재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서 엄마는 미완성 존재... 이면 절대로 안될 것 같은 강박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이내 자기 생각이 우선인 여섯살 꼬마에게 꽥꽥꽥.. 오리 엄마가 되어 있다.
그래도 잘못 인정하고, 약속을 지켰으니 된 것일까..?
앞으론 절대 정신 놓은 상태로 약속을 하지 않아야 겠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