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다 좋다
곽문연
드라이브 코스를 아들이 고른다
허리가 뻐근하고 뒷골이 어지러워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외식식단을 아들이 고른다
달거나 시거나
내 입맛과 멀어도 맛있게 먹어준다
함께 볼 영화를 아들이 고른다
멜로물이거나 판타지거나
참 좋다 좋다 한다
늦은 밤 왁자한 웃음들
졸리거나, 조용히 책을 보고 싶을 때도
마냥 웃어준다
아들 앞에 서면
나는 아들의 아들이 되어간다
내 키보다 큰 아들 앞에서 나는 자꾸 작아진다
10월에는 내 생일, 아버지 생신, 엄마 생신이 8일 간격으로 연이어 있다. 딸아이 첫 생일상을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껏 차리면서 문득 우리 엄마, 아빠 생신상은 이렇게 차려 드린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요즘 부엌육아에 마음을 쏟으면서 육아 뿐 아니라 '식구'를 향한 사랑도 부엌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올해 두 분 생신상은 내 손으로 차려보겠다 했다. 때마침 올케가 아버지 생신상을 차린다 했으니 나는 엄마 생신상을 차리면 되겠다. 생신상을 차리기 전에 엄마에게 전화해 무얼 드시고 싶냐 물으니 "너거 잘 먹는거로 해라. 다 좋다, 좋다."하신다. 생일선물을 여쭤볼 때도 "아이고, 다 좋다, 좋다.", 언제 시간 되시냐고 날짜를 정할 때도 "마 다 좋다, 좋다." 하셨다. 언젠가부터 엄마 대답은 무조건 "다 좋다, 좋다."다. 도대체 누가 좋다는건지... 괜히 눈물이 핑 돈다. 나는 엄마가 좋으면 좋겠는데, 그동안 남좋은 일에 익숙해진 엄마는 자기가 좋은 건 다 잊어먹은 것 같다. 미안하고 좀 서글프기까지 하다. 내가 좋으면 다 좋다는 엄마처럼 나도 나중에 딸아이 앞에서 마냥 웃으며 다 좋다, 좋다.. 하고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딸아이가 나에게 미안하거나 짠한 마음 갖지 않도록 '싫다'도 말할 거라고 중얼대며 시린 눈을 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