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통신 14
나는 로터리형 인간이다. 로타리라 부르면 어쩐지 촌스러운 회전교차로.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아무래도 로터리형 인간이군.
군청 앞 신호등에 걸린다. 이 삼거리의 신호등은 이 곳이 얼마나 한적한 시골인가를 확인시켜주는 용도로만 쓰인다. 차는 없고 신호는 길다. 그냥 갈까. 양심냉장고. 기다릴까. 차가 다녀야 기다리는 보람이 있지.
나는 로터리형 인간이다. 로타리라 부르면 어쩐지 촌스러운 회전교차로.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아무래도 로터리형 인간이군.
군청 앞 신호등에 걸린다. 이 삼거리의 신호등은 이 곳이 얼마나 한적한 시골인가를 확인시켜주는 용도로만 쓰인다. 차는 없고 신호는 길다. 그냥 갈까. 양심냉장고. 기다릴까. 차가 다녀야 기다리는 보람이 있지.
세상은 온통 신호등형 인간들로 가득하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신호등형 인간들은 세상이 가거나 서는 이진법 외의 것들로 구성되는 것이 불편하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그립거나 저주하거나. 연민이나 애증, 애처로움 따위는 그저 빨강과 파랑 사이 잠깐 켜지는 노란 신호일 뿐. 교차로마다 신호등을 설치하고 모두가 평화로울 때까지 교통정리. 차 따위야 다니거나 말거나. 호르르륵 삑삑.
로터리형 인간은 생각한다. 신호등 자리에 로터리를 만들면 눈치껏 돌고 돌아 제 갈길 가련만. 빨강 파랑 신호를 대신하는 건 약간의 눈치와 서툰 배려. 먼저 들어온 차들은 먼저 가라지. 잘난 차들도 먼저 가고. 나는 바쁠 것도 잘난 것도 없고 보아하니 다들 눈치껏 교차하면서 눈치껏 돌아 나가더만. 신호 따위 내 알 바 아니고. 그럭저럭. 이만저만.
그러니 지금 군청 앞 삼거리에서 갈등하는 것은 순전히 공무원들이 탁상행정으로 신호등을 설치한 탓. 여기는 말야 신호등이 아니라 로터리가 필요하다고. 하루에 몇 대 다니는지부터 세어보란 말야. 그런데 지금 나는 가? 말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