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엄마예요

자유글 조회수 5602 추천수 0 2010.05.20 05:44:26
한겨레 육아전문 사이트 오픈을 축하합니다.

아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또한 유아교육을 전공한 직장인으로서, 여러분들과 함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회원 가입도 하고, 이렇게 글도 씁니다.

아래 글 중에 출산경험기를 올리신 분이 계시길래, 저도 제 아이가 태어날 무렵에 썼던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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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에 정기 산부인과 검진을 갔었다.
Dr. Campbell 이라는 여자 의사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해서, 왠지 친숙함이 더 느껴지는 좋은 사람이다.

이제 출산 예정일이 4주 정도 남은 상태라, 출산이 임박했을 때의 증상 같은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첫 아이라 가진통과 진짜 진통을 헷갈리기 쉬우므로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오지 말고 느긋하게 집에서 쉬면서 진통 간격을 잘 재어보라고도 했다.

그런데, 다음 순서로 자궁 상태를 보겠다며 내진을 하더니, "와우~" 하는 감탄사와 함께, 지금 당장 분만장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자궁경부가 벌써 많이 열려서 지금이라도 아이가 나올 수 있다나?

얼떨결에 분만장으로 가서 가운을 갈아입고 온갖 모니터를 배와 팔에 붙이고 누워있자니, 끄지도 않고 오피스에 두고 온 컴퓨터와, 그 안에 만들다 놔둔 강의 자료들, 강의와 기말 시험, 채점, 등등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남편이 이웃한 다른 도시에서 저녁 강의가 있는 날이라, 연락하기도 마땅치 않고...

들락거리며 내 상태를 확인하는 간호사에게 "오늘은 절대 안돼" 라며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려보기도 하고...

그렇게 두어 시간을 누워있다가 극적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오늘은 집에 가도 좋은데, 이제부터 언제라도 애기가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고,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 일찍 다시 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지시와 함께...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니는 병원은 일부러 학교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일하다 말고 애를 낳으러 가려면 그게 나을 것 같기에) 생각해보니, 몹쓸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심정이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듯 했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은데...
그걸 누구 다른 사람에게 시키자니 마음이 안놓이고...
제발이지, 지금 벌려놓은 일 요것만 마무리하고 드러누울 수 있다면 마음이 놓이겠는데...
그런 심정이, 물론 죽음을 앞둔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겠지만, 흘러가는 하루, 또는 한 시간이 안타깝게 여겨진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 하는 것이리라...

학교에 돌아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바바라 선생님 (선배 교수)도, 비서 아줌마도, 대학원생 조교도 모두들 호들갑에 난리법석이 났다.

"내가 뭐든지 다 도와줄께"
"일 걱정 하지말고,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쉬어야지?"
"뭐든 할 일이 있으면 지금 시켜"

헐헐...
말씀들이야 고맙지만...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강의 계획을 어찌 고대로 해달라고 부탁을 할 수 있으며, 누구한테 일을 시키려면 나도 준비를 해야하는데 우째 속편하게 집에 가서 들어누워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암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무사히 다음날 수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목요일은 다른 날보다 강의가 많을 뿐 아니라, 내가 각별히 신경쓰는 전공 수업-그것도 교육계획안을 리뷰하는 중요한 날이어서 도저히 남에게 맡길 수 없는 수업이었는데, 그것까지 무사히 마치고나니,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추수감사절 방학이고, 그 다음 2주간의 강의는 비교적 남한테 부탁하기 쉬운 내용이거나, 시험 감독과 채점 등이어서, 금요일 하루 동안 열심히 준비를 해두었다.

날짜별로 언제 어디서 무슨 수업이 있고, 그 날의 강의 내용을 담은 파워포인트 파일과, 주의사항 같은 것들을 플래쉬 메모리에 저장해서 책상 위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두고 왔으니, 이제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비서나 바바라 선생님께 전화 한 통만 해주면 된다.

언제라도 들고갈 수 있도록 병원에 들고갈 가방을 미리 싸두라고 하고, 미역국을 미리 끓여두라고도 하고, 혹시라도 남편과 연락이 안될 경우에 대신 병원에 데려가줄 사람을 물색하라는 등등의 조언을 받고 있지만, 나와 남편은 그냥 천하태평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병원이 천만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혹시 안챙겨온 것이 있으면 남편이 되돌아와 가져가면 될 것이고, 입원은 길어야 이삼일 동안이니, 그다지 바리바리 싸가야 하는 물건도 별로 없지 싶다.

애기 낳으러 병원가면서 냄비에 미역국을 담아가는 것도 우습고, 자칫 차 안에다 쏟기라도 하면 그 뒷수습이 더 복잡할 것이다. 미국인 산모들은 미역국 구경도 못해보고 아이낳고 모유 먹이고 다 하는데, 그깟 이틀 정도 병원에서 주는 미국음식 먹는다고 큰 일이 날 것 같지도 않고...

뭐 이래저래 이제는 마음이 편하고 조바심이 전혀 나지 않는다.
성질 급한 우리 애기 덕분에 분만장 견학도 미리 해두었으니...

오늘은 애기 옷과 천기저귀 빨래를 해놓고, 청소나 좀 해두어야겠다. 물론, 늘 하던대로 빨래는 남편이, 청소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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