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아픈 고백을 하듯 오래된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키운 우리 엄마의 육아 방식이 싫었던 내가
엄마가 되고 내 아이를 같은 방식으로 키우며
약간의 원망과 자괴감을 느끼며
변화를 꿈꾸는 그런 이야기
집안에 장녀로 태어난 나는 엄마 표현대로 얼마간은 어떻게 키운지도 모르게 키워진 얌전하고 조용하고 부모님께 협조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던 아이가 스무 살이 되고부터 엇나갔다고 이야기 하신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내 안에서 꿈틀대던 문제아의 본성을 엄마는 정말 모르셨을까?
엄마는 나에게 무척 엄한 편이셨다. 자라면서 내내 잔소리도 많이 듣고 매도 많이 맞았다.
당시 엄마는 처음 낳은 딸을 잘 키우고자 하는 욕심에 나를 그렇게 엄하게 키우셨다고 지금에서 고백하신다.
하지만 지금 나의 아이들을 봐주시는 엄마는 이제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고, 실수와 잘못을 구분하고(대부분 실수라고 규정되어진다.) 사소한 일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신다.
엄마와 마주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식을 키울 때는 그게 잘 안 됐는데 손자 손녀에게는 되더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살짝 미안해 하신다.
지금 내 모습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할 나름이지만
엄마가 과거 나에게 지금의 내 아이들에게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하셨다면…
지금 내가 내 아이들에게 조금 더 멋진 엄마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건 너무 불효스런 상상일까?
어른들이 강요한 덕목에 반항하는
어린이가 많습니다.
지나치게 강요하고,
질릴 정도로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어린이 스스로
천천히 발견할 수 있게 해 줍시다.
부모가 보기에 아무리 옳은 길일지언정
그 길을, 그 길로 가기 위한 방법을 반복해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그 길과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는
그런 엄마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아이를 향해서 강요하고 소리치고 질리도록 반복하는 괴물 같은 모습일 때가 많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 아이였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고, 그 모습에 내 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이를 키워보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키우셨을지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이런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에 의해서 변화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변화를 바라며 부모도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나를 지배하고 있던 습관이라 이렇게 나를 길러온 부모님을 살짝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살짝만)
육아를 좀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
멋진 성인으로 성장할 내 아이를 위해
내 자신을 좀더 들여다보고 내 아이의 마음을 좀더 들여다보자.
물론 반드시
Break the chain.
아이를 기르는 것은 즐거운 놀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막대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며, 수없는 많은 밤을 지새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밤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책도, 어떤 충고도 주지 못하는 것을 당신에게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는 어떤 지식을 얻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고양시킨다는 데에 있습니다.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에 우리를 도와 주던 신비한 조력자, 아이의 수호 천사가 마침내 존재를 드러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엄마의 마음에 직관과 통찰력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진실만 말하기 때문에, 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