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부모 7기 모집에 글을 올려? 말아? 고민했다. 이전에 받은 두 권의 책 후기를 아직 올리지 못했다. 밀린 숙제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2015년 우리 집 좋은 일'이라니 도대체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이 안 나는 거다. 아마 꿀꿀한 내 기분 탓에 좋은 기억이 안 떠올랐나보다. 후기를 올리지 못한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얻은 건 좋은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잠깐! 어쩜...... 그렇구나. 정말 좋은 일이 있었는데도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떠올리다니 마음상태가 이리 중요하구나. 요 몇 년 동안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기쁜 일이 올해 있었다. 약 5년간 회계사 시험 준비를 해왔던 동생이 올해 합격을 했다. 일하던 직장 정리하고, 늦깎이로 준비한 시험이었다.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그 아픔도 극복하면서 동생은 합격이라는 큰 선물을 내게 주었다. 발표 당일 폰 문자에 'ㅜㅜ'가 먼저 올라와서 어떻게 위로하지, 옆에서 도와주진 못할망정 그 동안 심적, 물적 부담을 안긴 언니라서 한없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제대로 창을 열었더니 합격 소식에 감격의 눈물이었음을. 나도 같이 울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이겨낸 동생이 자랑스러웠다. 언니의 큰 심적 부담까지 덜어주었다. 그 동생이 지금은 야근에다 공휴일도 없이 일을 한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또 좋은 소식, 바로 이 글을 쓸 수 있게 용기를 준 일이다. 어제 두 번째 공연 제의가 들어왔다. 한 달 전, 짧은 시간이지만 거의 20년 만에 나의 솔로 공연을 했었다. 마을에 아는 분들과 함께 한 저녁 모임에서 옛날 옛적에 노래패 활동을 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지인의 책 출판기념식에서 노랠 불러주면 좋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노래방에서 내 노랠 부른 적이 언제였는지도 모르는데 여럿이도 아닌 독창을? 사실 고민이 됐다. 그러나 기분은 따로 놀았다. 부담이 되는데 두근거리면서 즐거웠다. 큰 무대도 아니고 마을 활동을 하는 분들이 모이는 조촐한 자리, 누구나 축하공연을 할 수 있다! 그래 해보자로 결론을 냈다. MR보다는 서툰 우쿨렐레 반주에 맞추는 게 훨씬 쉬워서 직접 반주 해가며 2곡을 불렀다. 마이크가 없어서 더 다행이었다. 노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못 불러도 넘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기타반주를 할 사람이 있다고 한다. 송년모임 자리에서 보컬로 노래 한 곡 불러달라고. 참, 뭘 믿고 흔쾌히 하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나에 대한 믿음이 이리 컸었나, 아니면 모험을 하고 있거나. 사실 잘 부를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노래듣기,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지. 곡 선정을 하려고 20년 전에 열심히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 찾아 들었다. 내가 부르고 싶은 곡을 찾아가는 시간이 흥겨웠다. 예전에 불렀던 곡들이 재해석되면서 혼자 울고 웃었다. 잘 부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잊을 만큼.
올해 내게 있었던 기쁜 일은 회비를 내고 싶은 단체, 모임을 만난 것이다. 일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일이다. 급여는 작아도 일을 할 수 있었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단기라서 새해 다시 일을 구해야하지만 올 상반기 때보다는 일자리를 구하는데 자신감이 좀 더 붙었다. 훌륭한 작가 분들의 글들도 많이 접한 한해였다.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 외, 이반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하이타니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조지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등. 좋았던 올해의 강의로는 조영선 선생님, 박재동 화백, 이범 선생님 강의가 있었다. 길게 들은 강좌로 ‘백자초문’, ‘미디어 비평과 글쓰기’ 시간도 행복했다.
제 때 정리를 안했더니 고구마줄기 뽑히듯 이제야 좋은 기억들이 와르르 올라온다. 마을학교를 함께 한 분들과 글쓰기 한 것을 묶어 내 이름이 표지에 들어간 책도 나왔다. 비록 참가자 중에 가장 소량의 분량을 기록했지만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글을 쓰는 뿌듯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5월, 11월 두 번의 연극무대에 서는 경험을 했었다. 함께 활동해온 마을공동체에서 5살부터 12살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첫 번째는 주어진 대본으로, 두 번째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대본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습 기간 동안 매주 모여서 저녁에 몇 시간씩 신나게 아이도 엄마도 놀았다. 이렇게 좋은 추억을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책과 강의를 올해 만났었구나. 1년 동안 제대로 맘 잡고 처리하지 못한 일을 정리하려고 요사이 정신이 딴 곳에 가있었다. 두려움과 버거움, 힘겨움 이라는 다른 곳에. 좋은 기억들 속에서 좋은 에너지를 꺼내 써야 어려운 일도 잘 풀리는 법인데 잊고 있었다.
좋은 에너지를 다시 끄집어내게 해주신 베이비트리 담당자님, 고맙습니다. 이 글을 쓸 기회를 잡지 않았다면 깜박 잊고 넘어갈 뻔 했어요. 연말연시 따뜻하게 보내세요.
베이비트리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