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과잉보호에 내몰리는 대한민국 아이들을 위해서)

저자 편해문

출판사 소나무



참으로 오래 걸렸다. 이 책을 읽어내기까지 말이다. 추석 명절을 탓할 수도 없다. 명절이든 아니든 두 아이 육아라는 비슷한 하루일과를 보내는, 명절 준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것을 기억하면, 이유는 분명해진다. 나는 이 책의 주제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 없었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본인이 지난번에 말했던 놀이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이 책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한국에서 저자의 생각처럼 하는 것은 방임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렇듯 나는 책과 저자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첫째 아이를 내년부터 유치원에 보낼 계획이어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유치원의 놀이터 시설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아이들의 놀이, 놀이터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놀이터들이 서로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고백하건데 마지막 책장을 닫을 때까지 책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다. 저자가 말했듯이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사례들을 뒤로 한 채 저자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서 듬성듬성 읽어 내려갔다. 특히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한 세월호 사건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추석 명절동안 아이들은 친가에서 생활을 했다. 산책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 근처 마트에서 걸으며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네 살 된 첫째 아이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마트에 가자고 했다. 저자가 서문에서 요즘 아이들은 마트로 놀러 간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쇼핑이 놀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대형마트를 잘 이용하지 않기에 우리 아이들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 여겼는데, 아이들의 적응력은 정말 빠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저자는 도전과 모험이 있어야 진정한 놀이터라고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전과 모험이야 말로 어린 시절 놀이의 중요한 벗이었다. 가로의 나무 기둥이 사다리처럼 놓여 있는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유치원생이었을 때 그 사이로 몸이 빠져나가는 놀이를 하다가 끼인 적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오셔서 한겨울 점퍼를 벗겨내고서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에서 놀게 되었다. 군인들이 훈련할 때 밧줄을 잡고 올라가던 경사진 나무판과 비슷한 철제 놀이기구가 있었다. 올라 갈 때는 밧줄을 잡거나 멀리서 도움닫기를 해 단숨에 뛰어 올라가면 되었는데, 문제는 내려 갈 때였다. 위에 올라온 학생들이 많아서 밧줄을 잡을 기회를 얻지 못하면 두 발만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심호흡을 계속하며 위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또 철봉을 여러 개 이어 붙인 듯 한 구름다리를 건널 때 두 세 칸을 한 번에 건너려다가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위험한 순간들을 경험하고도 똑같은 방식으로 놀이를 하던 것을 생각하면 도전과 모험이 너무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 아이가 이러한 방식으로 놀이를 하면 엄마인 나는 뭐라고 말을 할까. 아마도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할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아이는 놀면서 다칠 권리가 있다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놀이를 하도록 하는 데는 엄마의 큰 용기도 필요하다.



놀이터의 주인은 놀이기구가 아니라 ‘터’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우리 아이의 경우에도 집 바로 옆 놀이터보다는 조금 멀리 있는 학교 운동장을 자주 이용한다. 뛰어놀기에는 모래로 덮인 학교 운동장이 가장 좋다. 놀이터는 미끄럼틀을 타고 싶을 때 가끔 이용을 하는데 미끄럼틀 아래 아이가 ‘집’이라고 부르는 작은 공간이 있다. 사방이 막혀있지 않은 아주 작은 공간인데도 아이는 그 공간을 아주 좋아한다. 아이가 숨을 수 있고, 찾으려는 사람은 찾기가 쉬운 공간이 있어야 좋은 놀이터라는 저자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아파트 내에는 놀이터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고무바닥으로 되어있고 다른 곳은 모래바닥으로 되어있다. 아이는 모래바닥에서 모래놀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저자는 인공조경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놀이터를 좋은 놀이터로 꼽는다. 책에 실린 놀이터 안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사진을 보며, 놀이기구만 달랑 있는 한국의 놀이터가 떠올라 씁슬했다.



이 책에는 저자가 탐방했던 수많은 놀이터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아이가 모래 놀이를 하는 동안 유모차에 앉아서 책을 읽던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이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가 꽤 크기 전에 이것을 벗어나기는 힘들 듯하다.



놀이터는 놀이터를 짓는 사람이 이용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역지사지해야하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상상놀이터처럼 놀이터가 예술표현의 대상이 되거나, 실내 놀이터처럼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산성비, 황사, 자외선 등으로 미래의 놀이터는 실내놀이터로 변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우리 부부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나무야’ 혹은 ‘가루야’와 같은 실내놀이터나 키즈카페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모래밭, 그리고 역지사지로 만들어진 놀이기구 몇 가지가 있으면 금상첨화라 생각한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수용 가능한 위험과 만나고

위험을 배우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또는 친구들과 함께 찾는 곳이다」 (261쪽)



세월호 사건 때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던 모습을 보며 충격이었다. 위험에 부닥쳤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자신을 구해낼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놀이터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이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처럼 그 놀이터는 ‘놀이터’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모든 장소를 포함한다. 책을 덮고 나서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남편이 했던 말처럼 한국에서 어떻게 위험을 마주치게 하고 어디까지 허용할까하는 고민이다. 나의 고민에 저자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허용이라는 단어는 아이들의 놀이를 통제하려는 어른의 욕심이 담긴 말입니다. 진정한 놀이는 어른의 간섭이 없을 때 이루어집니다. 게다가 아이는 스스로 위험을 감지할 능력이 충분합니다. 아이를 믿고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지만 엄마인 나는 여전히 고민이 된다. 내 아이를 믿지만 다치지 않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의 마음 아닐까. 아이의 자율성과 부모의 보호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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