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된 유행어이긴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한때
'낫토, 너마저'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어요.
식품첨가물, 인스턴트 음식 등이 일본 가정의 식문화를 덮치면서
전통적인 콩 발효식품인 낫토에까지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는 보도로
사람들이 모두 망연자실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자연주의 육아를 지향하던 부모들 중심으로
이뤄져왔던 아이들의 숲체험을
요즘은 업체에 맡기기도 한다는 글을 읽고
'숲체험, 너마저'
란 말이 탄식처럼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부모들이 주도할 경우, 벌어지기 쉬운 사소한 실수나 문제들
쉽지않은 준비과정들, 야외에서 아이들을 케어하는 어려움 등
을 감안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게 해결해줄 업체에 맡기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우리들의 육아와 교육, 너무 많은 부분들이
점점 정제된 백설탕처럼 되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불순물 하나없이 새하얗게 가공된 백설탕,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원재료 사탕수수가 가진 본래의 빛깔과 영양은 거의 제거되어버린
그런 백설탕..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으로
일본 내에서만 2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린시절, 서점도 작은 영화관도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고 해요.
아무런 편리시설이 없는 대신,
자연 만큼은 너무 아름다워서 하루종일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질 않을 정도였다 합니다.
어린시절 내내 오랫동안 바라보며
감동했던 하늘풍경에 대한 감성이
<너의 이름은.>이란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담긴 것 같다 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감독이 어린 시절에
사교육 업체가 주도했던 '하늘관찰 체험' 프로그램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물론, 전문가들의 훌륭한 안내와 지도로
부모들에게는 얻을 수 없는 지식을 얻게 될 기회가 되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전문가의 지도나 지식없이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뛰어난 그림과 스토리를 만들어 냈어요.
그 이유는 바로 어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과 자연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시간 제한없이 맘껏 누릴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의 자연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누구의 지시나 섣부른 방해없이
스스로 자연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줘야 한다는 걸.
지식이나 정보는 그 다음이어도 늦지않다는 것,
아니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는 걸요.
숲을 걷다가 모르는 식물을 발견하거나
작은 곤충을 만났을 때
바로바로 척척 대답해주는 어른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 찍어온 사진과 도감을 비교해보며
그 대상의 이름을 드디어 알아내는 순간,
숲체험의 진정한 효과는 발휘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일요일 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