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에 나하고
웃어라 캔디야 들장미 소녀야
울면 바보다 들장미 소녀야
83년 TV로 나왔던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다. TV에서 하는 만화영화가 바뀌면 제일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이 주제가를 외우는 거였다. 새로 나온 주제가를 다 외웠을 때의 뿌듯함이 얼마나 컸는지 친구에게 자랑할 정도였다. ‘우주보안관 장고’의 주제가 “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머나먼 우주의 별나라 뉴텍사스 /...”, 꼬마자동차 붕붕의 주제가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왔다/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호호 아줌마의 주제가 “... 아줌마가 펼치는 꿈속 같은 이야기/ 꼬마친구 숲속친구 모두 모두 즐거워/...” 이렇게 나열해 보는 것만으로도 만화영화를 보았던 그 때의 행복감이 온 몸으로 전달된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때까지도 학교에서 놀다가 가끔 늦을 때면 부리나케 달려와 TV가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녁 5시쯤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가 TV에서 시작했다.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발야구를 하고 놀다가 집으로 갈 때면 만화영화 시작 시간을 놓칠까봐 조마조마했었다. 평일 저녁시간과 함께 TV에서 만화영화를 하는 또 다른 시간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어린 내가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준 TV. 하지만 우리 집에서 볼 수 있는 TV채널은 많지 않았다. 안테나를 달아야지만 TV를 볼 수 있었다. 볼 수 있는 채널은 KBS1, MBC가 다였다. 지붕에 단 안테나에 문제가 있었는지 KBS2 채널은 지지직댈 때가 많았다. 친구와 이웃집 동생들에게 KBS2에서 하는 만화영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보고 싶을 수가 없었다.
어린 나에게 TV는 바보상자가 아니었다. 꿈을 꾸게 만들어준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 보물 창고였다. 아기 때 뒷집에 놀러가서는 TV를 얼마나 끌어안고 좋아했었는지 아버지는 나 때문에 다리 넷 달린 TV를 구입했다고 하셨다. 농촌 시골 마을에 만화방도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다.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돈을 따로 받아 생활하지도 않았고 만화책을 보면 안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들었던 학생이었다. 모범생? 그랬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는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놀기도 잘 놀았다. 아래로 세 명의 동생과 이웃집에 사는 세 명의 동생들을 이끌고 다녔던 우리 집 앞 골목대장이었다. 게다가 살림밑천 맏딸로 부모님 일손도 잘 도와드렸다. 그런 나의 감수성을 키워주었던 것은 TV만화영화였다. 키다리 아저씨, 빨강머리 앤, 소공녀 세라, 아기공룡 둘리, 미래소년 코난, 요술공주 밍키, 꼬마자동차 붕붕, 은하철도999, 독수리5형제, 플랜더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우주소년 아톰, 개구리 왕눈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이상한나라의 폴, 호호아줌마, 달려라 하니, 영심이, 날아라 슈퍼보드, 배추도사무도사, 메칸더 브이, 우주보안관 장고, 톰소여의 모험, 태양소년 에스테반, 달려라 졸리, 톰과 제리, 작은 숙녀 링, 세렌디피티 등. 나열해보니 하나하나가 새롭다.
내가 좋아했던 캔디와 키다리아저씨의 쥬디의 사진을 붙여가며 따로 수첩을 만들었던 기억은 머릿속에만 남아있다. 한번은 대학 때 친구가 문득 날 보고 ‘빨간 머리 앤’ 같다고 했었다. 나의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말해 주었는지 직접 못 물어본 것이 지금도 아쉽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 ‘빨간머리 앤’을 TV에서 다시 보았다. 둘째를 낳고 분가를 해서 한창 힘든 시기에 앤을 만났다. 이른 아침시간이었지만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는 ‘빨간 머리 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앤처럼 난 말이 많지 않은데 어떤 점이 앤을 닮았을까? 친구가 어떤 뜻에서 한 말인지는 몰라도 빨간 머리 앤을 닮았다는 말이 은근히 좋았다. 앤의 긍정적인 마음이 내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을 생각하면 더 활발해지면서 기운이 솟는다.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노래라는 주제로 뭘 쓸까를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생각난 노래가 ‘외로워도 슬퍼도...’ 들장미소녀 캔디 주제가였다. 이와 함께 빨간 머리 앤을 닮았다는 친구의 말도 생각났다. 딱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이번 기회에 어릴 때 보았던 만화영화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게 만화영화 주제가는 성경을 암송하듯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중요한 구절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만화를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날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연애인보다는 만화가 좋았다. 지난 주말에 딸이랑 ‘암살교실’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다. 딸이 보자고 한 달 전부터 이야기 한 영화이다. 하필 제목에 ‘암살’이란 말이 들어가 있어 꺼려졌었는데 영화를 보고는 아이에게 같이 보자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진정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내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다. 세대는 다르지만 아이와 난 지시하는 선생님이 아닌 진정 마음을 다해 도와주는 선생님을 바라고 있다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올해 이모랑 보았던 ‘너의 이름은’도 찾아보고 싶다. 내가 시간이 안 나서 이모에게 같이 봐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 때 아이와 못 본 것이 이리 후회될 줄이야.
영화를 보기 전에 구입한 '너의 이름은'포스터를 아이 방 벽에 붙여두었다.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이라 문이 열린 상태에서 보면 방 가득 '너의 이름은'의 멋진 장면이 들어온다. 올 한해 학교 다니기 힘들어하는 아이와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어떤 시간을 보내야할지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자. 이 시간이 먼 훗날 멋진 기억으로 남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