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회사에 말아톤 동호회가 처음 생기고 잠시 망설이다 가입했다.

풀 코스 완주는 어림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운동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지난 가을 춘마(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는 7세 남아와 동반 출전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지만

올해 3월 동아마라톤은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물론 10Km.

 

2000년 즈음 생애 첫 10Km에 도전했다 반환점을 놓쳐 하프 21.0975Km를 완주한 후

유행처럼 각종 말아톤 대회에 참가 하다가 시들해졌는데

2009년 봄 남편과 하프 완주 후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달리기는 안녕이었다.

 

세월이 흘러 8세 남아와 동반 참가 신청을 하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거다.

연습 첫날 5Km에 도전했는데 뛰다 걷다 반복하여 1시간 하고도 10분이 걸렸다.

같은 시간 남편은 10Km를 완주했다. 혼자! !

 

두 번째 연습은 개똥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3Km만 뛰었고

세 번째는 5Km 겨우 겨우 겨우.

네 번째는 3Km.

속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정말 도 닦은 기분이었다)

 

대회 전날엔 참가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이왕 시작한 것 완주까지 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더 강했다.

코스와 교통통제 시간을 뚫어지게 본 결과 5Km 1시간 이내에 뛰지 못하면

회수차량에 강제 탑승하게 되어 완주를 하고 싶어도 못할 형국이었다.

~! 말아톤 대회 출전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트랙을 도는 순간인데... 트랙을 밟을 수 있으려나?

 

대회 당일 올림픽공원으로 향하는데 교통통제를 준비하는 경찰들이 많이 보인다.

두근두근 설레며 가슴이 뛴다.

멍 때리던 개똥이의 눈에도 생기가 돈다.

"저 경찰 아저씨들이 길을 막고 우리를 뛰게 해 주실 거야.

 그런데 우리가 뛰지 않고 걸어가면 더 이상 못 뛰게 하고 차가 다니게 하실 거야"

 

잠실 주경기장 트랙을 밟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과 비례하여

중간에 포기하게 되더라도 개똥이를 원망하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출발.jpg

- 출발 대기 중인 올림픽 공원.

 

10Km 부문 참가자 15천명이 대기하는 올림픽공원은 완전 축제 분위기였지만

출발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긴장 보다는 짜증이 점점 더해갔다.

10 30 A팀의 출발을 시작으로 우리가 속한 D팀은 자그마치 25분 후인 55분에서야 출발.

 

출발 후 마음이 무거웠다.

교통통제 시간이 짧아서 5Km까지 1시간 이내에 뛰어야 완주 가능성이 있는데 벌써 25분이나 까먹었으니 아~! 완주는 글렀구나.

그래도 거의 8년 만에 도로 위를 달리자니 감회도 새롭고 기분도 살짝 좋아졌다.

개똥이는 "배가 아프다", "힘들다" 하면서도 물을 마실 때 빼고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3Km.

녀석은 힘들어 하면서도 거의 멈추지 않고 달렸기에 우리는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구간을 통과했다.

그래도 후미그룹을 면할 수는 없었는데, 혹시 더 못 달리게 되더라도 '이 정도면 이미 훌륭하다'고 마음을 잡았다.

 

4Km.

뒤에 있을 줄 알았던 회사동료와 그의 딸 8세 여아가 우리 앞에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이야 말로 3Km 완주가 목표였는데??

게다가 8세 여아는 그야말로 깡총깡총 장난하듯 즐겁게 달리고 있었다.

8세 남아와 여아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Km 정도를 무사히 달릴 수 있었으니 Win- Win!

 

5Km.

식수대가 반갑다. 개똥이와 물을 마시고 들고 있던 꼬마 생수 병에도 물을 채운다.

하지만 교통통제 제한 시간이 지나 간신히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던 코스에서 퇴출 당했다.

회수버스 대신 우리에게는 "인도로 가세요"라는 교통경찰의 명령이 떨어진 것.

 

6Km.

인도 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뛰다 걷다 하니 대규모의 풀 코스 주자들이 보인다.

나의 예상대로 풀 코스와 합류하여 다시 달릴 수 있었다.

게다가 대규모 응원단은 특별 뽀나쑤.

참가 번호표에 큼지막하게 써진 개똥이 이름을 보며 사람들이 응원해준다.

"개똥이 화이팅!!!", "개똥이 멋지다!!!"

~. 녀석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다시 힘을 내어 달리는데 녀석이 항의 한다.

"엄마 6Km까지만 뛰면 걸어도 된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계속 뛰어요?!!!"

"그래. 그랬지. 걷자!"

잠시 후 녀석이 먼저 제안한다.

"엄마 우리 이제 다시 뛰어요"

녀석에게서 이런 말이 듣게 될 줄이야!!!

 

8Km.

드디어 종합운동장이 보인다.

저곳이 우리가 도착할 곳이라고 들어가서 올림픽 육상 선수처럼 트랙을 멋지게 한 바퀴 돌면 끝이라고 말해준다.

녀석이 "우리가 1등은 아니겠어요. 아쉽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서 나는 터지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그래 우리가 1등은 아니지만 꼴등도 아니야. 15천명 중에 1만등을 할 것 같아."했다.

 

주경기장에 가까워 질수록 도로 양 옆으로 응원단이 빼곡히 서 있었고

응원단도 풀 코스 도전 선수도 끊임 없이 개똥이를 칭찬했다.

정말 대단하다.”, “내가 본 어린이 중에 최고다.”

폭풍 칭찬에 녀석도 힘을 얻었는지 막바지임에도 지치지 않고 끈기 있게 달렸다.

 

트랙에 들어서자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에 휩싸여 "신난다!" 소리가 절로 난다.

전력 질주를 하고 싶지만 녀석의 거절에 바로 포기한다.

우리는 Finish Line까지 처음과 같은 속도로 천천히 달렸다.

띠띠띠띠 기록칩을 인지하는 힘찬 전자음에 파묻혀 완료. 완주!

 

개똥이를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했는데 Finish line에서 기념촬영을 부탁하는 외국인 커플 덕택에 패스.

 

우리의 기록은 1:31:33, 1:31:35.

개똥이는 남자 부문 6,580. 나는 여자 부문 3,586.

10Km 부문 15,000명의 참가자 중 10,166위 되겠다.


20170319_완주.jpg

- 완주 메달을 감상 중인 개똥이.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는데 8세 남아 개똥이는 포기하지 않고 해내어 솔직히 조금 놀랐다.

나는 10Km 구간 내내 왼손에는 꼬마 생수 병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개똥이 손을 잡고

개똥이를 향해 "정말 잘하고 있다.", "우리 조금만 더 뛰자" 끊임없이 독려하며

녀석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날려주는 사람들에게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내가 녀석의 손을 잡고 달리는 일이 이번이 시작일지 마지막일지 모른다.

녀석이 계속 달린다면 머지 않아 엄마와 나란히 달리게 될 것이고

다시 엄마를 제치고 아빠와 나란히 달리다 혼자 질주를 하게 되겠지.

 

어쩌면 먼 훗날 이날이 못 견디게 그리워 질지도 모르겠다.

개똥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1시간 30분을 꼬박 달려낸 힘들지만 뿌듯함으로 벅차 오르던 이 시간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든 녀석을 압박하지 않고 최대한 독려하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강모씨.



추신.

중간에 같이 뛰었던 8세 여아도 완주 했다!

기록은 1:47:05.

다만 다음날 엄마 등에 업혀서 등교하는 후유증이 있었다고. ^^"


20170319_휴식.jpg

- 귀가 후 말아톤 참가 기념티셔츠를 고집하며 아빠 다리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개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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