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esc] 3D입체 마음테라피
무리한 목표에 짓눌린 작가생활…벗어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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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40대의 작가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왜 나는 대단한 작품을 쓰려고 하는가”입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왜 나는 무리한 목표를 세워서 늘 나 자신을 엄격하게 다루는가” 하는 거죠. 작품을 발표한 지 오래되어 저는 늘 부담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오랜 공백을 한번에 역전시켜보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을 제어하느라 늘 애쓰는 것 같습니다. 좋은 아빠이려고 하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임감이 저 자신을 심각하게 만들어가고 있어요. 아주 가벼운 일, 예를 들면 의미 없는 수다, 시시한 영화 따위에 빠져드는 걸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제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아내는 결혼 전 제가 유머러스해서 반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저 자신도 모를 정도입니다. 어쩌면 무능한 아빠, 무능한 남편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고민상담gomin@hani.co.kr

 

131060905468_20110715.JPG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장

 

위대한 작품! 소소한 이야기부터→

셰익스피어님께. 사람들을 만나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아버지’ 혹은 ‘아빠’에 관한, ‘배우자’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사연들은 모두 제각각 달라도, 공통적인 건 이들이 아주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아주 사소한 것에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죠. 저 역시 아버지를 떠올릴 때 ‘좋은 아빠’라고 느꼈던 기억들을 보면, 유능한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랍니다. 다정한 모습을 보였던 바로 그 순간의 아버지의 모습이죠. 남편이 정말 좋았던 순간들도 그렇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비장미(?)가 넘쳤을 때라든지, 폼 잡는 말들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라, 의미 없는 수다, 시시한 영화 따위를 격의 없이 공유했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듯 인간이 끌리는 건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시하고 사소한 이야기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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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나’가 좋은 아빠·남편·작가. 일러스트레이션 이동희
셰익스피어님. 좋은 작가,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으시다고요? 내가 끌리는,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감성으로 녹여내세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내 쪽으로 살짝 밀어줄 때의 아빠의 모습이라든지, 추위 잘 타는 날 위해 잠자리에 들 때 자신의 체온으로 미리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해놓고 “당신 추울까봐 내가 덥혀놨지!”라고 미소 지을 때의 남편의 모습. 그런 소소한 모습들이 셰익스피어님의 책 속에 있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좋아할 겁니다.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 되고 싶은 책임감과 사소한 것들을 누리는 기쁨과 타고난 유머 감각은 결코 상반되는 게 아니거든요. 작가가 일상과 격절되었을 때, 오히려 좋은 글이 영글어지는 말의 보금자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게 되죠. 그러니 일상을 품고 가십시오. 일상을 재발명하십시오.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죠. 행복한 기분일 때에는 언제라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오스카 와일드의 ‘사람’을 ‘작가’로 바꾸어 보세요. 먼지도 태양 빛을 받으면 찬란해지듯이, 소소한 일상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신다면, 그 소소한 이야기들이 셰익스피어님을 어느덧 다른 사람들이 귀 기울여 주는 작가로 만들고 있을 겁니다.


131060905505_20110715.JPG소기윤 정신과 전문의·미소정신과 원장

 

역할들 던져두고 먼저 즐거워져야 해요→

 

우선 주인공께서 늘 제어하려고 애쓰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성공한 작가라는 목표에 걸림돌 취급을 받는 그것은 아마도 의미 없는 수다, 시시한 영화, 아내를 반하게 한 유머와 한편인 무엇일 텐데요. 주어진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레 뒷전이 되었던 그것은 어느새 주인공에게는 제어의 대상이 돼 버린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제 와 그걸 따르려다 보면 현실의 책임을 내팽개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으신 듯하네요.

그런데 그것이 정말 목표지향적인 활동과 상충하는 것일까요?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보낸다거나, 돈과 시간을 써가며 여행을 하거나, 음악 혹은 스포츠에 빠지거나 하는 것들은 목표지향적인 활동들에 중점이 되는 동안 당장 안 해도 될 일이며 심지어 방해가 될 거란 생각에 서서히 줄여 버리기 쉽습니다. 대신에 책임져야 할 일들로만 내 생활을 가득 채우게 되지요. 하지만 목표지향적 활동이란 것이 쉽지 않기 마련이며 그 결과물로 자신의 가치를 점수 매기다 보면 결국 부담감이 불어날 대로 불어나서 그 일들로부터 벗어나야 행복할 거란 마음이 듭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여의치가 않겠지만) 용기를 내서 목표지향적 활동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행복해지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왜냐만 목표가 잘못 정해져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또다른 좌절감을 일으킬 테니까요. 결국 문제는 그 목표들을 잘 이뤄내야 하는 자기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러기 위한 방법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비타민이라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자신을 챙기고 북돋우던 잃어버린 활동들이 뭐가 있었더라 하고 다시 떠올려보시고 가장 실천하기 쉬운 일부터 자신에게 하게 해주세요. 잠시 작가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스스로 즐겁게 해주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좀더 나아진 기분이 된다면 일에 능률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최소한 가족에게는 주인공의 행복한 표정 자체만 해도 좋은 아빠이고 좋은 남편인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31665507525_20110923.JPG김남훈 프로레슬러·<청춘매뉴얼제작소> 저자

 

알타미라 원시인처럼 편하고 재밌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여행을 유희로 즐깁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낯섦과 불편함을 일부러 찾아가는 거죠. 인간 이외의 동물은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 아니면 조금 더 불편하지 않은 서식지를 위해서 움직일 뿐이죠. 글쓰기 또한 다른 동물은 갖고 있지 않은 인간만의 유희죠. 이건 ‘알타미라 동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후기 구석기 시대, 생존에 지쳐 있던 육체파 노동자들이 뭔가 후대에 그럴듯한 것을 남기려고 고심 끝에 그런 벽화를 그렸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직 먹고살기 위해 석기를 손에 쥐었던 그들은 그냥 뭔가 재밌게 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숯과 황토, 적철석으로 말과 사슴, 수퇘지 그리고 여인의 형상도 그리면서 낄낄거리며 웃어댔겠죠.

저도 글밥으로 먹고삽니다. 그래서 선배 작가님께 드리는 조언은 참으로 죄송스럽고 겸연쩍기까지 합니다. 알량한 전문지식과 일천한 경험으로 바다처럼 아는 척하지만 그 깊이는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그런 잡문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피가 튀기는 프로레슬링 경기를 끝내고 대기실에서 코를 찌르는 파스 냄새 속에서 뭔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이거다’ 하는 글귀가 생각나면 바로 휴대전화 메모장에 저장합니다. 발에 깔리고 뒤로 꺾여서 퉁퉁 부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툭툭 터치하면서 말이죠. 제가 이럴 수 있는 것은 글쓰기를 완벽하게 저만의 놀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망은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이 나올 때마다 서점을 둘러보고 베스트셀러 코너는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는 속물 작가입니다. 하지만 잘 팔리는 책에 대한 욕심보다는 제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 저 스스로 재밌다고 느끼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지속가능한 즐거운 글쓰기의 전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배 작가님께서도 대작과 거작에 대한 욕심보다는 1만8500년 전의 알타미라 동굴에서 그림을 그리며 낄낄대던 원시인들처럼 조금 더 편안하고 즐거운 글쓰기를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도 친구 스티브 워즈니액과 창고에서 컴퓨터 부품을 갖고 놀다가 애플을 세상에 선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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