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 의자

자유글 조회수 5172 추천수 0 2014.08.25 15:57:45

01255594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부엌일 하다 좀 쉬려고 앉거나, 책 좀 읽어 보려고 책 들고 앉아 있으면 뽈뽈 기어다니던 딸 아이가 와서 냉큼 무릎 위에 앉는다. 얼마 전부터 혼자 일어서는 연습을 수시로 하더니 다리가 아픈가 틈만 나면, 그것도 꼭 내 무릎 위에 앉아서 '히' 하고 웃는다. 웃는 딸애를 보면서 나도 '아구구, 죽겄다.' 하며 전용 안마의자인 남편에게 슬쩍 기대 어깨 좀 주물러 보라 한다. 이럴 땐 참말로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거 별거 없구나 싶다. 서로 기대고, 서로 자리 내주는 거 이거구나.

 아가씨 때는 '결혼'이, 결혼 후에는 '출산'이 참으로 크고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과연 내가 이 모든 걸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살아보니 이정록 시인 어머니 말씀처럼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다는 말이 딱이다 싶다. 내 의자를 남편이, 딸아이가 가져가버린 게 아니다. 같이 시원한 그늘에서 좋은 풍경 보며 살려고 내 의자 옆에 의자 몇 개 더 놓아둔 거다. 아이가 좀 자라고 숨 좀 돌릴 때가 되면 또 다른 이를 위해 하나씩 의자를 더 놓아두는 거, 그거면 된다. 그래, 별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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