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 오후 4시. 띠띠띠띠 띠리리리릭! 문이 열린다. 첫째 쭉쭉이가 학교 끝나고 돌아왔다. 손을 씻고는 곧바로 TV 앞에 앉는다. 둘째도 덩달아 TV 앞이다. 나란히 앉은 모습에 다행이다 싶다가도 그곳이 왜 책장이 아니고 TV 앞인지. (아빠의 욕심이 그렇다. 하하)    


30분이 지나서 첫째에게 묻는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니?”

밝게 울리는 대답은 “우선 놀고, 그다음에 씻고, 엄마가 오면 밥 먹고 TV 보고. 그다음에 숙제하고!” 다.     


며칠 전 가슴이 답답하다며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난다고 했던 터라 하교 후 일과를 강요하는 대신 그냥 일정만 물었다. ‘그래 자기 입으로 말했으니 하겠지!’ 하며, 그나마 숙제라도 하겠다고 하니 그게 어디야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씻기는커녕 엄마가 오고 함께 밥을 먹고서도 동생과 놀이하는 녀석. 휴~~    


안 그래도 나이 덕에 주름살까지 만개하는 요즘, 점점 찌그러지는 내 얼굴을 보던 아내가 “전혀~ 아니,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데.” 그런다.         


+

3일 전 오후 4시. 첫째는 문을 열고 뛰어들어와서는 곧장 화장실로 향한다. 문을 닫으려는데 두 명의 친구가 빼꼼하며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한 친구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놀러 가겠다고 한다. 으음~~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5시 30분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해가 많이 길어진 덕에 한번 놀이터에 가면 집에 올 줄 모르는 녀석은 7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씻고 밥을 먹으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알림장을 확인하고 숙제하려 책을 펴고는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책장은 멈추었고 시간만 흘러간다.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엔 불쑥불쑥 화가 올라오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아~~ 짜증이 나.’, ‘아이~ 정말!!’ 다시 조금 책을 보는 듯하다가 불쑥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래저래 달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툭툭 뛰어나오는 아이의 진심    


“엄마, 아빠는 공부 먼저 하라 그러고, 아빠는 놀아주지도 않고 자기 할 일만 먼저 하고,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하는데, 왜?”    


아빠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멈추었다. 겨우 생각해낸 말이,

“내일 놀이터 가면 아빠가 같이 놀까?”

“또 괴물 할 거지?”

“응”

“이제 재미없어. 지겨워졌어.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아이와도 아빠는 같이 놀게 하잖아.”    


뭔가 설명과 변명을 늘어놓고 싶었지만, 꼭 잔소리가 될 것 같아 멈추었다. 홱! 돌아서 자 버리는 녀석. 나의 눈엔 놀이터에서 너무 놀아서 피곤해졌고, 남은 숙제가 힘들어 짜증이 난 것 같은데…….        


+

다시 오늘.

시원하게 한 방 먹고서는 3일 동안 숙제도, 씻기도, 자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마음속에는 아이가 이해하겠지. 뭔가 달라지면 불안해하지 않을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것은 허망한 기대에 대한 냉혹한 현실!    


화병이 날 지경이다. 출근했다면 아마 아내에게 그냥 좀 더 아이에게 자유 시간을 주자고, 아직 어린데 여유를 갖자고 했을 테지만. 매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3일이란 퇴근 후 함께하던 3시간이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는 72시간이었기에, 기다림에 충분하다고 여겼고, 이 시간을 참아내는 것이 또 하나의 힘겨움이었다.  


좀 더 기다리자는 마음의 소리와 달리 아빠의 입은 벌써 첫째 이름을 부른다.         



+

쭉쭉아~ 아빠는 너를 보호할 책임이 있지? 먹이고 입히고 배우게 하고.

쭉쭉이는 아직 어린이잖아. 그래서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집에서는 엄마, 아빠와 공부도 하지만 규칙과 생활습관을 배우는 거야. 어른이 되면 ~~~ 주저리주저리 ~~~ 그런데 지금처럼 놀고 TV 보고 놀고, 늦게 씻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     


한바탕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첫째가 동생과 놀이하던 기분을 유지하며 숙제를 들고 와서는 옆에 앉는다. 휴~~ 다행이다.     


아이를 기다리는 데 실패했지만, 이런 잔소리를 화내지 않고 전달했다는 사실에 절반은 만족한다.


누군가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라고 하던데. 아빠가 조금씩 자라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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