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뒷마당 담벼락. 담쟁이 덩굴속에 대륙검은지바뀌 한쌍이 둥지를 틀었다.
아이와 남편과 나는 너무너무 좋았다.
아이는 평소 경주라도 하듯
맹렬히 타던 트렉터도 자제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조심히 했다.
둥지 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몰래 보곤 했다.
알을 품고 있는 엄마새와 눈을 마주치고, 얼릉 자리를 비워줬다.
아빠 새가 먹이를 물고 오면 빨래를 널다가도 살그머니 집에 들어와 둥지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언젠가, 남편이 둥지를 살짝 보더니, 엄마아빠 새가 없다며,
이사간 것이 아닌가..
아주 서운해했다.
다행히 아니었다.
알이 깨고 새끼가 나왔던 것이다.
엄마 아빠 새는 아기 먹이를 구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었던 것이다.
손님이 행여라도 우리가 무서워 떠날까봐.
우리는 아주 조심조심.. 새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았다.
그러면서, 새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아빠새가 지렁이같은 먹이를 물고 오면,
먹이를 물은채로 마당 창고 지붕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대륙검은지빠귀는 "노래새"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노래솜씨가 훌륭하다.
플룻을 부는 것 같은 목소리다.
엄마새는 아빠의 노랫소리를 듣고 둥지 밖으로 나오고,
엄마 품에 쏙 안겨있던 아기새에게
아빠새는 먹이를 준다.
엄마새도 먹이를 물고 온다.
식사시간이 아닐때는 엄마는 아기를 품에 꼭 안고 있다.
엄마가 알을 품느라 식사를 못할 시절에는
아빠가 먹이를 날라다 주었다.
우리 애 아기시절 우리같아..더 좋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주간 남편은 내가 먹을 아침을 차려주고,
자기가 없는동안 내가 아이를 품고 충분히 먹을 수 있게,
간식, 과일, 점심, 차까지 보온병에 넣어 차려 놓고 출근했었다.
우리는 아빠새, 엄마새, 아기새였다.
오늘 아침. 아침식사를 하며 뒷마당을 보고 있는데,
아빠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쪽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부리에 먹이를 물고 다른 쪽 벽에 자꾸 머리를 부딫쳤다.
나와 아이는 너무 이상하다. 왜 저럴까. 하며..
새를 계속 바라보았다.
아이 등교를 하려 뒷마당으로 나가는데.
마당에 뭔가가 있었다.
무엇인가의 잔해. 무엇인가 작은 동물의 내장. 난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집에 돌아와 마당을 찬찬히 돌아봤다.
잔해는 두군데 더 있었다.
이상한 예감.
둥지를 살펴보았다.
항상 담쟁이 덩쿨속에 숨겨져 있던 둥지가
드러나 있었다.
빈 둥지.
밤새. 아기새가 변을 당한 것이다.
엄마아빠 새는 둥지를 떠났다.
오늘 아침 아빠새는 여전히 습관대로 먹이를 물고 왔으리. 그러다 아기새가 없는 것을 알고 너무 슬퍼서 벽에 머리를 부딫친게 아닐까.
태어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아기새. 옆에서 잠시 몰래 지켜본 나도 이렇게
슬퍼서 눈물이 난다. 아기새의 운명이 참으로 안타깝다.
난 그다지 복잡한 사람이 아니지만, 엄마라서, 어른이라서, 세월호 아이들과, 세월호 엄마아빠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속이 터진다. 아이를 잃은 것만 해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데.. 살 수 있는 아이들이 거지같은 시스템으로 인해 억울하게 생으로 갔다고 생각하면 더 속이 막힌다. 그 후 제대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직한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벌써 일년전에 갔는데..
그래서 세월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에도 세월호 사건이 터진지 몇달 안되어 큰 사고가 났다.
말레이시아 항공 사건.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죽었다.
여름휴가가 시작된 첫주였다.
즐겁게 휴가를 떠난 일가족도 있었다.
나라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항공사건이 일어난 순간. 수상은 비행기를 타고 막 휴가지에 도착했었다.
바로 항공기를 타고 돌아왔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항공기에 타고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이 가장 많았다.
사고가 난지 나흘이 지나도 잔해가 된 시신은 돌아오지 못했다.
유품들은 우크라이나 인들에 의해 노획되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사고 처리를 위한 긴급 국제 유엔 회의에 네덜란드 대표로 간 네덜란드 외무부 장관은, 이딴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냐며,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힘과 책임을 다 지고라도
시신과 유품을 가족에게 돌려주겠다며,
아주아주 감정적이고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그 후 바로 네덜란드는 전용기로 모든 시신을 송환했다.
시신이 네덜란드에 도착하는 날. 에인트호벤 공항에는
국왕부부와 수상, 정부각계의 모든 중요한 분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앉아 시신을 기다렸다.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고급스러운 관에 담겨진 시신들은 멋진 제복을 입은 청년들의 어깨에 실려 리무진으로 운반되었다. 모든 시신이 그렇게 관과 리무진에 실려 운반되었다.
네덜란드에 그렇게 검은 리무진이 많았던가. 끝없는 검은 리무진의 행렬. 그날 주변 차량은 모두 통제되었고, 네덜란드는 그렇게 피해자들의 초상을 국장으로 치뤄 주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국가원수의 장례식에 버금가게, 최선을 다해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장례를 치뤄주었다.
네덜란드에 십년 가까이 살며, 이렇게 모든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처음 보았다.
특히 여름휴가기간엔 모든 것이 정지!에 가깝도록 느리기에.
그 후 네덜란드는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무릎쓰고 러시아와 수출입 통제에 들어갔다.
네덜란드에 사용하는 가스 대부분이 러시아에서 오는데도 당당히 맞섰다.
지금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 항공사고에 대해 말하는 이는 없다.
깔끔히 정리됬기 때문이다.
국가가 알아서 충분히 해줬기 때문이다.
충분히 애통할 수 있게 기본적인 부분을 걱정하지 않게 처리해줬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국민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 때, 국가가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을 해줄때,
국민들은 일상을 다시 열심히 살 수 있다.
하교한 아이와 퇴근한 남편도 충격을 받았다.
진상조사에 나섰다. 빈둥지도 살펴보고,
창고 지붕위 등 사방을 살펴보았다.
이웃집 아저씨 말씀으로 까치의 짓일 것이라 했다.
며칠전 지나가다 까치를 보고,
아이에게 까치까치 설날은 노래까지 가르쳐주며
한국에서는 까치가 길조라 말해줬는데
오늘은 까치가 미웠다.
엄마새가 돌아왔다.
둥지를 잠깐 들렀다 다시 날아갔다.
남편과 아이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엄마아빠가 살아있으니, 또 알을 낳지 않을까. 기대하며.
남편은 행여라도 다시 엄마아빠새가 돌아와 알을 낳으면
대책을 세우겠다 하였다.
아이는 새총을 들고 감시를 하겠다 하였다.
아이는 저녁식사로 나온 닭고기가 무섭다고 했다.
불쌍한 아기새가 생각난다고 먹기 싫단다.
나도 하루종일 입맛이 없다.
살 수 있는 날이 훨씬 더 많았기에, 날갯짓 한번 못해봤기에,
어른새가 되어 아름다운 노래 한소절 못 불러봤기에,
더욱더 슬프고, 더 더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