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이 지나면서 생활이 바빠졌다.
작년부터 듣고 있는 수업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두 아이 학교, 유치원에 보내고 부랴부랴 9시까지 실습기관으로 나간다.
노인요양기관에서 진행되는 실습이라 어르신들과 일과를 보낸다.
내년이면 100세가 되는 최고령 어르신을 비롯하여
90세 이상 어르신들도 다섯분이 넘는다.
어르신들 평균 연령이 80세 중반이다.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지만
흘러간 노래를 따라 부르시고 종이접기를 배우실 정도로 정정해 보인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을 직접 모셔본 경험이 없어
처음에 낯설기도 했지만
몇 주 지나니 한 분 한 분이 친근하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아흔이 넘으셔서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검버섯이 여기 저기 피었지만
간식을 드리거나 도와드릴 때면
'감사해요'라며 밝게 미소지으며 두손을 꼬옥 잡아주시는
어르신이 왜그리 예뻐보이는지 모르겠다.
멀리서 이리 와보라며 손짓하셔서 가보면
슬그머니 사탕을 손에 쥐어주시고
중국에서 태어나셨다는 어르신은 중국어, 일본어를 술술 하신다.
어릴 적 관가에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는 어르신,
전쟁이 일어나 피난 떠날 때 옷장에 곱게 한복을 개켜놓고 그냥 왔다고,
피난 갈 때 한강 다리가 코 앞에서 끊어졌다며,
위안부로 가는 언니들이 짐칸에 실려가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어르신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생생한 근현대사였다.
해방과 전쟁 격동의 시기를 살아온 어르신들이었다.
아마 집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하루 종일 모신다면
자식이라 할지라도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해서,
그래도 하루종일 꼬박 옆에 계시는 건 아니라서
어르신들을 대하는 게 덜 힘든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어르신들 옆에서 지내면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까 생각하는 시간도 잦아졌다.
실습을 시작하고부터 길가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이
왠지 다르게 보였다.
어르신들을 알아가면서 마을의 소중함도 커졌다.
마을에서 남녀노소 서로 알고 인사나누던 시절엔
그래도 덜 외롭지 않았을까.
갑자기 김춘수의 '꽃' 이란 시가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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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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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곳이 좀 더 열려있는 마을이 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안전하고
어르신들에게는 이야기동무가 더 많아지고
아이 키우는 엄마들도 덜 힘들지 않을까.
독거사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겠지.
올 봄에 많은 어르신들이 내게 꽃으로 다가왔다.
벌써 어르신들과 헤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이 걱정둥이를 어쩌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