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린 것들
유홍준
배추밭에는 배추가 배춧잎을 오므리고 있다
산비알에는 나뭇잎이 나뭇잎을 오므리고 있다
웅덩이에는 오리가 오리를 오므리고 있다
오므린 것들은 안타깝고 애처로워
나는 나를 오므린다
나는 나를 오므린다
내가 내 가슴을 오므릴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내가 내 입을 오므릴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담벼락 밑에는 노인들이 오므라져 있다
담벼락 밑에는 신발들이 오므라져 있다
오므린 것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
숟가락은 제 몸을 오므려 밥을 뜨고
밥그릇은 제 몸을 오므려 밥을 받는다
오래 전 손가락이 오므라져 나는 죄 짓지 않은 적이 있다
한 달 전에 자다가 손가락이 오므라져 잘 펴지지 않아 몇 번 깬 적이 있다. 겁이 덜컥 났다. 어디 몸에 탈이 났나 싶어서. 괜찮아진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때쯤 마음에 바람이 불어 무거운 유모차를 온종일 밀고 쏘다녀서 그랬나보다. 새벽에 아이랑 같이 일어나면 그대로 안고서 뒷산 둘레길도 왔다갔다 했으니. 내 목에 손을 두르고 몸을 오므린 아이를 안으려면 내 손도 꼭 오므려야 했다. 내리막길에서, 오르막길에서 유모차를 내 발걸음과 맞추려면 두 손을 꼭 오므려 유모차를 쥐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딸아이랑 지내는 시간동안 내 두 손은 온종일 오므라져 있다. 밥하느라, 야채 써느라, 밥 먹이느라, 안느라, 작은 손 잡고 걸음마 연습하느라, 작디 작은 얼굴 어루만지느라...
오므라진 내 손가락을 펴 보면 그 안이 참 따뜻하고 촉촉하다. 꼭 우리 아기 손처럼. 오늘 새벽, 자다가 눈을 떠보니 벽에 붙어 오므리고 자는 아이 곁에 내가 꼭 같은 모습으로 오므리고 자고 있다. 나를 꼭 닮은 아이를, 거꾸로 내가 점점 닮아가고 있다.
나도 아이처럼 오므릴 수 있어서 좋다.
매번 멋진 사진 올려주셔서, 이번엔 제가 한 번 올려봤습니다. 아가 돌 즈음에 찍은 사진인데, 다시 보니 참... 작네요, 아가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