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때는 바야흐로 요가의 시간. 오늘 수행할 요가는 핫요가로 알려진 비크람 요가. 인도의 수행환경을 그대로 재현하여 적정 온도는 38도, 습도는 60도. 먼저 파딩구스타나사나 자세를 취한 다음 남은 한 다리에 30cm 높이의 타원형 방석을 끼운다. 다리를 교체하여 방석을 양 다리에 마저 끼운 후 취할 자세는 흔히 의자자세로 불리는 우트카타사나. 이때 주의할 점은 방석이 엉덩이를 지지하고 있으므로 굳이 일어서려해서는 안된다는 점. 앉고 보니 38도 온도에 땀이 쉽게 나고 온 몸의 근육이 이완되어 편안해지는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앉은 김에 눈 앞에 주렁주렁 달린 고추를 따는 거지.
거듭 강조하지만 '앉은 김에'다. 고추를 따는 일은 요가를 하는 '김'에 심심한 손을 놀리기 뭣해 딴다거나 라디오를 듣는 '김'에 트로트 박자 맞춰 손을 놀리는데 하필 고추가 걸렸다거나 식으로 스스로를 세뇌시키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지난한 노동이다. 8월의 볕은 뜨겁고 줄기며 잎이 우거진 고추밭에는 바람 한 점 없는데 이미 붉어진 고추를 따낼 사람은 우리 식구뿐. 상호네는 상호네 고추를 따느라 바쁘고 대수형님네는 형님네 고추 따기가 바쁘다. 따도 따도 고추는 많고 따낼 손이 늘 부족한 것은 농가마다 고추 한두 마지기쯤 기본 사양인 때문.
고추 한 마지기는 살뜰한 살림밑천. 말린 고추 열 근은 식용유로도 바꾸로 계란으로도 바꾸고 더러 삼겹살로도 바꿀 수 있는데 그러고도 만원짜리 한두 장이 남는 알찬 현금. 가격 파동을 덜 겪는 그나마 안정적인 작물이며 제주부터 철원까지 다 무난하게 재배 가능한 전국구 작물. 식탁 김치 자리를 피클이나 우메보시가 대신하지 않는 한 고추의 수요는 자자손손 이어질 것이어서 자자손손 이맘때면 농가마다 고추밭에서의 요가수행을 각오해야하는데.
우트카타사나 자세에서 곧바로 사바사나 송장자세로 누워 하늘 보고 욕을 좀 하고 싶게 작황이 엉망이다. 비를 좀 주시지. 고추 꼬락서니가 이게 뭐냐고. 고추 수확을 포기한 이웃도 있다. 가물어 자라지 못한 고추를 바이러스병이 덮쳤는데 그나마 남은 고추도 꿩이며 비둘기가 다 쪼아버렸다지. 올해는 고라니도 극성이고 병해충도 유난스러운데 이 모든 게 한창 자라야할 6,7월에 비가 오지 않은 때문. 전국적으로 고추수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대란을 우려해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는데 어이쿠, 중국산 수입하는 걸로 결론날 게 뻔한 대책회의 따위 고라니나 줘버리라구.
아, 아, 진정 진정. 요가수행의 진정한 목적은 마음을 다스리는데 있는 법. 후읍후읍. 심호흡 길게 두번. 이번 시간에는 고추밭에서의 수행에 대비하는 요기의 마음가짐에 대해 알아봤고 다음 시간에는 본격적으로 수행에 들어갈테니 다들 방석 준비 철저히 하시고. 자, 다 같이 카팔바티 호흡으로 마무리. 후읍후읍.
- 농부 통신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