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춤 판, 노래 판, 술판의 삼위일체가 이뤄지는
자유로운 영혼의 나라 쿠바.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쿠바의 트리니다드에서의 일이다.
비냘레스에서 같은 택시를 타고 이동한 것이 인연이 된
헝가리 오빠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좁은 골목 안쪽에서 가느다란 음악이 새어나왔다.
달빛을 조명삼아 어른과 아이들 몇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생활 속의’ 진짜 살사 판이다!
'카사 드 라 뮤지카'에서의 정형화된 쇼에 다소 감흥이 없었던 나는
흥분한 나는 먹이를 눈앞에 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갔다.
방해가 안 되게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러댔지만
조명이 거의 없다보니 건질만한 것도 없었다.
그냥 구경이나 하자.
그 때 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구경만 하지 말고 나랑 같이 춥시다.’
‘안돼요, 전 춤을 진짜 못 춰요. 그냥 조용히 있다 갈게요.’
엉덩이를 쭉 빼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손사래를 쳤다.
그게 흥미로웠는지 헝가리 오빠도 자기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부추기고 나섰다.
이 눈치 없는 중생아, 난 진짜 추고 싶어도 춤을 못 춘단 말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손을 잡고 조명도, 무대도 없는 그들만의 무대에 올라서고 말았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나만 따라와.” 하는 눈빛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긴장해서 발이 허공에 뜬 느낌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심약했더라면 오줌이라도 지렸을 것이다.
동양의 어린 여자와 쿠바 할아버지의 조합이 신기하기도 했을 텐데.
멋쩍어 하는 나에 대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내가 하도 춤을 못 추니까 관심이 사라진 걸까.
자유자재로 허리를 놀리는 그들 틈에 묻혀서
마치 나도 원래 그들의 일행인양 한참을 허우적댔다.
지금도 생생하다.
투박하고 뭉툭한 그의 손을 잡고 어색하게 살사를 추던,
아니 발을 움직이던 그 날 밤의 나를.
그것은 난생처음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와 비견될 만큼 짜릿한 순간이었다.
춤을 배우자.
아니,
몸 움직이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자.
쿠바에서는 정말, 누구든 춤을 추게 된다.
2006, 스물여섯되던 해
쿠바, 트리니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