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의 찰칵 이벤트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다이어리 형식으로 썼던 내용을 올려볼게요.
아이와 함께 한 첫 여름휴가, 그러나 첫 감기로 기억될 날들.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생후 9개월, 준영이와의 여덟번째 여행,
그리고 우리들의 첫 여름휴가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2013년 7월 마지막 주 금요일.
얼마 전부터 준영이에게 약간의 미열이 있고
자다 갑작스레 구토를 한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이것이 내가 간과했던 첫번째 신호가 아니었나 싶다)
금방 원래대로 잘 놀고 잘 자고 하길래 아무 의심없이, 예정대로,
시댁 식구들과의 여름휴가 길에 올랐다.
무지하게 붐비는 출근 길 지하철을 무사히 뚫고 도착한 용산역, 우리 자리.
약간 땀이 나고, 약간 어지럽고, 약간 목이 마르며 가슴이 뛰는 시간.
이번에도 안 놓치고 잘 탔구나 하는 안도의 시간.
완도.
우리 둘에겐 각기 다른 기억이 서려있는 장소다.
나에게는 업무, 비지니스의 공간이었다.
정책비서로 일했던 첫 의원실의 지역구였던 덕분에
일하는 동안 몇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문인지 몰라도 수려한 풍경이나 정 많은 남도사람에 대한 기억보다는
종국에는 '선거'를 기점으로 틀어지고 배신하고
서로 상처만 주고 끝난 것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반대로 그에겐 꽤나 감성적인 장소인데
생애 최초 바다에 대한 기억이 완도에 있다고 했다.
할머니를 포함한 가족들과 시부모님 동네 친구들이 단체로 갔었다는데
당시 서너살이었던 그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이라고는
해변가에 떠내려온 미역줄기를 들고 서 있던 할머니의 모습뿐이란다.
둘도 아닌 셋이 되어 다시 찾는 완도에서 우린 어떤 추억을 만들어 갈까.
짐을 싸는 손놀림이 즐거웠다.
다음 날 아침, 트렁크 가득 맛난 음식을 가득 싣고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출발~~
처음엔 눈이 땡그르르 하더니
출발한 지 얼마 안돼 코~ 잠이 들었다.
여기가 바로 완도 명사십리, 가 아니고
2009년에 방문했던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에 있는
Coffs Harbour의 Jetty Beach 사진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인상적인데
바로 맨 몸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기어가던 아이와
그 아이 옆에 서 있던 엄마의 모습이다.
태고적 자연을 간직한 호주,
그 중에서도 해변, 바닷속은 단연 호주 여행의 백미인데
수영을 못하는, 아니 물 자체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꽤나 고통스런 날들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매번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마다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일 정도다.
그래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물이 무섭다고 인지하기도 전에
물과 친해지게 만들자!고 생각한 우리 부부는
틈 나는대로 목욕탕에 간이 욕조를 설치해 물놀이를 시켜왔다.
정말 엄마와 같은 트라우마를 갖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아름다운 물에 뛰어들지 못하는 것 만큼 한심스런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성과를 시험해보는 결전의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입히지 말자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수영복과 수영모를 입혀 모래사장으로 저벅저벅 내려갔다.
콥스하버에서 본 그 아이처럼 물 속에 막 기어들어가려면 어쩌지?
여긴 호주 해변처럼 백사장이 넓지도 않은데...
어머, 그런데 이게 왠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물 속을 향해 기어들어가기는 커녕
모래사장에 혼자 앉혀 둔 저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아빠 품에 안겨만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들에 달려들기를 좋아하고
특히나 집에서 하는 물놀이를 무척 좋아하던 아이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상황도 그닥 협조적이지 못했는데
밀물 때였는지 안쪽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마자 물이 금방 깊어졌고,
나도 들어갈 맘이 안 생길 정도로 물이 차가웠으며,
그 날만의 특수한 상황이었는지는 몰라도
대략 3분 간격으로 주최측의 안내방송이 쩌렁쩌렁 온 해변을 울려댔으니까.
"안개가 많이 꼈으니 해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수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원에서 오신 아무개 아버지는 가족들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달 오토바이들은 해변으로 들어오지 마세요. 관광객들이 다칩니다."
"쓰레기는 지정된 장소에 버립시다."
"저희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관광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등등.
특히 모래사장 폭이 좁다보니 파도가 해변 가까이 와서 부서지곤 했는데
준영인 그렇게 파도가 들이닥치는 것을 볼 때마다
저렇게 아빠 품에 쏙 안겨서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급기야 잠이 오거나, 뭔가 마뜩찮을 때, 불안하고 초조할 때 나오는
손빠는 행위를 시작했으니,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그만!
그래도 우리 셋이서 기념사진 한 장은 남겼다.
2013년 7월 28일.
우리들의 첫 여름, 우리들의 첫 바다.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니 곁에는 내가 있어.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룻밤 머문 몽골텐트.
명사십리 해수욕장에는 사방이 천막으로 둘러진 텐트를
침상이 딸린 것은 3만원, 그렇지 않은 것은 2만원에 빌릴 수 있었는데
전기도 쓸 수 있고 해변가 바로 앞에 있어서 하룻밤 캠핑 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본인 텐트를 가져온다면 야영도 가능하다.
여행이 별건가.
먹고 자고, 이동하고 또 먹고 자고의 연속이지.
캠핑 여행자로서 무사히 하룻밤을, 그것도 싼 값에 해냈을 때만큼 뿌듯한 것도 없다.
- 준비중인 호주 캠핑일주 책의 한 대목
땅끝마을과 강진을 거쳐 다시 광주.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평소보다 반이나 남기고 칭얼대다가 곧 자길래
그래, 숙소도 불편하고 삼일 연속 오래 이동해서 피곤했겠지
하고는 나도 옆에서 같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뒤로 한시간이 채 못돼서였다.
무심코 만져진 아이의 다리가 유난히 뜨겁다고 느껴져서
체온을 재보니 어머, 38.9도나 된다.
모든 시작은 열이 나는 거라던데..
8시 25분.
마치 준영이를 낳기 전 진통 간격을 기록할 때처럼
휴대폰에 10분마다 체온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고열이 나는 것은 아기가 잘 싸우고 있는 거라고 했지.
바로 해열제를 먹이는게 도움이 안 된다는 육아책의 문구를 기억하며.
제발 여기만큼만 해라, 주문을 외우며.
그리고 그날 밤 9시 15분.
39도가 훌쩍 넘었고 우린 병원갈 차비를 했다.
도시의 장점 중 하나, 야간에도 운영하는 소아과가 있다는 것.
문득 다음 달 시골로 내려갔을 때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다.
우리 부부가 정신이 없어 보였는지 아버님이 운전해 주신다고 같이 나섰다.
병원가는 길.
겨우 열이 나는 것 뿐인데,
고작 감기일텐데...
그런데도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사실 내 심장은 미친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겪겠지 했지만 막상 상황에 닥치자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지갑도 제대로 못 열었다.
경주, 부산, 일주일 여행도 거뜬하길래 완도쯤이야 했는데,
몸이 아파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은 거였는데,
엄마가 돼서 아무것도 감지 못하고 그냥 두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모든 게 내가 자초한 것만 같아서...
목, 열 감기.
상태에 비해 아기가 평온하다는, 잘 견디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와중에도 엄마아빠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깍꿍을 하는데
그 모습이 더 애잔했다.
"몇 시간 간격으로 몇 시시를 먹이세요." 하는 (참 간단하기도 한)약사의 말이 너무 빨라
"처음이니까 천천히 말해주세요." 하는데, 짜증이 왈칵 났다.
이 시간에 아기를 업고 약국에 오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는 없나 싶어서.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목감기에는 배를 달여먹이는게 좋다길래
슈퍼에 가서 부랴부랴 배를 사와 냉장고에 넣었다.
그르렁 거리며 힘겹게 숨을 내쉬는 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엄마아빠가 옆에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눕는 너를 안고
머리부터 귓등, 볼, 목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너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 모두 옮겨 붙기를,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저 이 시간이 너에게 약이 되기를...
그래서 앞으로 니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난관도 거뜬히 이겨내는 버팀목이 되기를 기도하며 깨어 있었다.
숨소리가 편안해졌다.
창문 너머 매미소리가 들렸다.
아침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첫날 밤, 둘째 날 밤도 무사히 넘겼고
다행히 삼일 째 밤부터는 다행히 더이상 열은 나지 않는다.
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저 빨간 액체가
약이란 걸, 본인이 싫어하는 것이란 걸 어떻게 알았을까.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그렇게 3주가 흘렀다.
그동안 아이는 짜증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안아주고,
배를 갈아 먹이고, 젖도, 물도 자주 먹이고 있다.
덕분에 하루 2번 먹이다 단유를 하려던 계획에도 약간 차질이 생겼고,
제 역할을 다 하고 쭈글쭈글 해져가던 내 가슴에도 다시 봄날이 왔다.
약을 먹여야 하는 우리에게도 요령이 생겨서
아기가 팔을 휘저어 약병을 떨어뜨리는 일은 더이상 없고
준영이도 맛있게, 잘 먹는다.
언제 다 나을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
의사도 그저 온도 관리에 각별히 신경써주라는 말 뿐이다.
* 글을 올리는 오늘(8월 21일) 기준으로
준영인 더이상 약을 먹지 않는답니다^^
열이 나던 첫 삼일은 아이도, 나도 힘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너의 고통을 내가 지고만 싶었다.
그러다 며칠은 정말 나도 목감기를 앓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엄마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니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고 안아주고
걸걸거리는 니 목소리에 가슴 저미며, 기도하며, 옆에 있어주는 것 뿐이란 것을.
모든 것은 아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이너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리란 것을.
아이도 부모도,
이렇게 오늘도 함께 성장해간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절실히 깨달아 간다.
2013년 여름.
우리에겐 너의 첫 감기와,
어쩌면 서울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으로 기억되겠구나.
준영아, 잘 버텨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 딸!
* 고작 단순한 감기 하나에도 이럴진데...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보며 가슴을 쥐어뜯고 있을 부모들을 떠올려보는 밤입니다.
감히 그 심정 이해한다는 말은 하지도 못하겠습니다.
내가 준영이에게 그러했듯 부디 모두 잘 이겨내길 기도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