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처리’된 남양유업 30대 영업직원>
오랜만에 이곳 찾습니다. 다들 안녕하시지요? 술 깨고 집에 가려고 커피숍에서 글 하나 써봅니다. 아래 링크한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면서,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부은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일으킨 죄로 회사에서 잘린, 30대 후반의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문득 떠오르네요. 이 사람은 ‘분노하는 을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요?
남양유업 사태가 심상치 않다. 을을 괴롭히는 갑의 화신으로 찍혔다. 사태를 슬기롭게 수습하지 못하면 이 회사 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 무서워졌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하자가 아닌 이유로 50년 역사의 대기업이 이처럼 큰 위기를 맞는 사례가 있던가. 발단과 마무리를 갈무리하면 재미있는 기사, 논문 쏟아지겠다 싶다.
언론들은 신난 듯이 한... 악덕기업의 악덕관행에 뭇매를 때린다. 교훈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일텐데, 다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아래 한겨레신문 기사처럼 악덕관행에 물든 조직 내부의 갑을 관계,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많은 우리 ‘을들’의 얘기다.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붇고 할당된 제품 밀어내기하고, 때되면 뒷돈까지 갈취한 남양유업 영업직원은 밖으로는 싸가지 없고 무자비한 갑이지만 내부에선 아득바득 버티며 살아야 하는 을이다. 남양유업 공시자료를 대충 보더라도, 을이면서 갑의 횡포에 줄서기하도록 내몰리는 그들의 모습이 선하다.
남성 영업직원 근속연수가 평균 5년, 2012년 급여총액이 평균 2515만원. 업력 50년의 회사에서 평균 근속연수가 5년이면, 수시로 잘린다는 얘기일 터. 한해 매출 1조원이 넘고 무차입 경영에다 해마다 수백억원씩의 이익이 쌓여 순자산만 자기자본의 20배인 8658억에 이른다. 증시에선 주가가 100만원을 넘어 식품기업에서는 황제주로 꼽힌다. 이런 탄탄하고 돈 잘버는 회사가 영업직원들한테는 우리나라 5인 이상 기업 전체의 평균임금(2012년 3996만원)에 한참 못미치는 임금으로, 그것도 실적 채우지 못하면 언제든 쫓겨날 처지에서 부려먹고 있다. 여성 영업직 사정은 더 놀랍다. 전체 직원 647명 중 88%가 계약직이다. 연간 급여는 평균 1378만원. 3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2012년 1464만원)에도 못미친다. 이런 남양유업 영업직원들은 지금 공분의 대상일 뿐 전혀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윤리경영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회사 안에서 을의 지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갑을의 수직적 권력관계에 갇힌 조직에선 윤리나 인격,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밀려난다. 6일치 한겨레신문 1면을 보면,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불붙은 ‘을들의 반란’을 두고서 여러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온다. 황치호 변호사는 “생존권을 위협받는 수준까지 내몰린 하도급 기업이나 대리점주 등 이른바 ‘을들’이 마땅한 대항 수단이 없기 때문에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물질적인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받으려 하는 이른바 ‘인정 투쟁’이다. 동등한 인격체로 평가받고자 하는 욕구가 최근의 사회적 공분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남양유업 안의 수많을 ‘을들’은 ‘갑의 유죄’를 선고받고 숨죽여 지내고 있다. 반란은커녕 설움과 분노를 표출할 마땅한 수단도 없어 보인다. 을들의 반란에는 이들도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