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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는 얼굴이 작다.
꼬마는 키는 보통이지만, 말랐다.
그렇다. 꼬마는 많이 왜소해 보인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해보면, 키는 60%이상, 몸무게는 30%, 머리둘레는 10%가 안 된다.
마른데다 얼굴이 작아서 같은 키의 다른 아이들과 서있으면 오히려 작아 보인다. 꼬마가 많이 안 먹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식도락이 남들에 비해 부족할 뿐, 먹는 양에서는 보통의 아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아마도 체질상, 그리고 끊임없이 에너지 발산을 하기 때문에 더욱 살이 찌지 않는 듯 하다.
지금까진 마른 것이 예뻐 보이지 않아서, 혹여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일까 봐 하는 걱정이었는데, 여섯 살이 되자 마자 다른 걱정 하나가 더 붙었다.
왜소한 것이 핸디캡으로 작용하여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일들이 있었다.
꼬마가 여기저기서 치이고 다닌다는 것.
1. 놀이방이 있는 식당에서 외식을 하다 한 살 어린 녀석에게 맞은 일.
유난히 몸으로 대화하는 스타일의 아이였던 것 같은데, 우리 꼬마에게 덤비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피하려고 해도 쫓아오며 팔과 다리를 휘둘렀고, 꼬마는 그 아이가 동생이라 어쩌지 못했다.
2. 초등학교 다니는 형과 놀다가 “나쁜 놈” 역할을 맡아 친히 이지메의 대상이 되었던 일.
이 경우에는 폭력의 정도가 너무나 잔인했다.
우리 꼬마를 벽 쪽으로 거칠게 밀어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한 아이에겐 발로 배를 찍어 차게 했다.
그저 역할놀이인 줄로만 알았던 꼬마는 그만 두려움에 울음이 터졌고,
다행히 바로 내가 뛰어가서 더 큰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꼬마는 형이라 어쩌지 못했다.
가해자(?)들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그런 일을 겪고도 가해자 녀석들과 놀고 싶어하는 우리 꼬마의 감정상태 때문에 기절할 뻔 했다.
아, 어처구니 없었던 것도 있다.
주변에 있었던 어른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때린 아이가 잘못했네”라기 보다 “저 꼬마가 맞았네” 였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전학을 다니며 이중으로 고통 받는다는 아이러니함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진저리가 쳐졌다.
때리는 쪽이 비난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에선 맞은 쪽이 업수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련의 사태들을 겪고 나니, 꼬마가 왜소한 것이 정말 슬펐다.
이런 것도 “폭력”이라고 하면 유난 떠는 것일까?
남자들의 세계란 그런 것일까?
체구와 힘에서 밀리면 우리 꼬마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맞는 쪽’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섰고, 그보다 먼저 슬프고 안타까웠다. 자신이 맞긴 했지만, 다 노느라 그런 거니까 계속해서 더 놀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꼬마가 안쓰러웠다. 아.. 사람이 고픈 아이인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래도 이건 아니어도 너무 아닌 상황이었다. 남자들의 생태계 속에 존재하는 ‘센 놈 순으로 서열 매기기’가 여섯 살 꼬마의 인생에도 어느 샌가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우선, 누군가가 신체에 고의적인 힘을 가하는 것은 “폭력”이고,
그럴 경우엔 기분 나빠하며 화를 내고 너의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마침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단단해졌으면 한다고.
싫은 것은 당당하게 단호하게 싫다고 말해야한다고.
그리고, 중요하고 결단적으로 나의 생각(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나쁘고 행해선 안되는 일이라는)을 수정했다.
앞으로도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두 번까지만 참고, 세 번째에는 참지 말라고..
그 다음엔 엄마가 책임질 테니 맞서서 너를 지켜내라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상황은 정리가 되었지만 솔직히 아직도 그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꼬마보다 오히려 엄마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라는 것. 앞으로도 일어나기 쉬울 것이라는 점이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결국, 나는 “너도 때려!”하는 엄마가 되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가르쳐주실 건가요?
폭력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라고 말해주실 건가요?
여론 조사라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