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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서 좋은 지금
박소유
처음 엄마라고 불러졌을 때
뒤꿈치를 물린 것 같이 섬뜩했다
말갛고 말랑한 것이 평생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니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너무 뜨거워서
이리 들었다 저리 놓았다 어쩔 줄 모르다가
나도 모르게 들쳐 업었을 거다
아이는 잘도 자라고 세월은 속절없다
낯가림도 없이 한 몸이라고 생각한 건 분명
내 잘못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복음이었나
앞만 보고 가면
뒤는 저절로 따라오는 지난날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깜깜 무소식이다
그믐이다
어둠은 처음부터 나의 것
바깥으로 휘두르던 손을 더듬더듬 안으로
거두어들였을 때 내가 없어졌다
어둠의 배역이
온전히 달 하나를 키워내는 것,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좋은가, 지금
밤새 아이와 함께 서너번 깨다 눈뜬 새벽, 이 시간이 정말로 좋다. 못 읽었던 책도 다만 몇 장이라도 읽고, 글도 쓰고, 커피도 마신다. 일찍 깨어날수록 이 시간이 길어진다. 어두워서 좋은 지금이라는 제목이 내 상황과 딱 맞아떨어져 이런 새벽에는 꼭 이 시를 다시 한 번 읊어본다. '어두워서 좋은 지금'이 사라지고 날이 밝으면 '밝아서 좋은 지금'이 절로 찾아온다. 그리고 아침을 맞으려 눈 뜬 아가를 더 꼭 안아줄 수 있다. 내 어둠의 배역이 키워내는 '달'은 우리 '딸' 뿐 아니라 육아에 지쳐 잊혀지고 있던 내 마음 속 서늘한 '달'이기도 하다. 딸아이와 같이 산지 15개월째, 같이 한 어둠도, 홀로 맞는 어둠도 켜켜이 쌓여 따뜻하게 '달' 하나 키워내고 있다.
- 아이 돌잔치 때 나중에 아이랑 함께 읽으면 좋을 시를 모아 아이 사진과 함께 시집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시를 읽기 시작했는데, 참 많은 위안과 힘을 받습니다. 중학교 때 줄치며 은유법이니 직유법이니 하며 괴롭게 외워야 했던 시들이 이제 다시 읽으니 마음을 탁탁 치고 가네요. 오늘도 어두워서 좋은 지금을 보내고 있을 아기 엄마들과 함께 나누고파 여기 옮겨봅니다. ^^
우리, 그래도 좋죠?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