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봐도 좋아’…재개봉 바람 분다
“내게 특별한 영화를 묻는다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 볼 때마다 늘 비슷한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 주인공 소피의 뒷모습에서 나는 나의 20대를 보았다. 나는 혼자 공터에 앉아 스스로를 달래던 외로운 시절의 나를 반복 탐구해 왔던 것이다. 10년 동안 수십번을 보고 난 후에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박소진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대표

10년 만에 재개봉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10년 만에 재개봉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영화 <빽 투 더 퓨쳐> 속에서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날아갔던 미래의 그날, 2015년 10월21일을 맞아 전세계적으로 <빽 투 더 퓨쳐>가 디지털 리마스터링 판으로 재개봉했다. 4일 기준 한국에서 <빽 투 더 퓨쳐 1, 2> 재개봉작을 본 사람은 모두 2만4000명이다. 최근 다양성 영화의 평균 성적을 훌쩍 넘는 수치다. 5일 10년 만에 재개봉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예매율 2위에 올랐다

오래된 영화들이 다시 스크린에서 기지개를 편다. <빽 투더 퓨쳐> 외에도 <아마데우스> <맨 온 와이어> <이터널 선샤인> 등 30여편이 10월말에서 11월초 사이에 재개봉했다.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마당을 나온 암탉> <도가니> 등 한국 영화도 가세했다. <피아노의 숲> <시간을 달리는 소녀> <쇼생크 탈출> <록키 1> 등도 11월 이후 재개봉된다. <이터널 선샤인> <렛미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멀티플렉스인 씨지브이(CGV) 극장에서도 상영한다.

예전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유행의 시작은 2013년 4만5000명을 모은 <러브레터> 재개봉으로 꼽힌다. 같은 해 4월 재개봉한 <레옹>도 160여개 관에서 4만2000여명을 모았다. 그러다 올 5월 재개봉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5만7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재개봉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2008년 개봉 당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봤던 관객은 10만명 남짓했는데 50%가 넘는 관객을 다시 모은 것이다. 뮤지컬에서 같은 작품을 반복 관람하는 것을 ‘회전문 관람’이라고 부른다. 극장가에서도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회전문 관람’이 자리잡는 것일까?

빽 투더 퓨쳐 등 30여편
10월말~11월초 사이 재개봉
이터널 선샤인은 예매율 2위 ‘기염’
과거 영화 봤던 중장년층뿐 아니라
DVD로 본 20대도 ‘반복 관람’

12월 재개봉하는 영화 <렛미인>.
12월 재개봉하는 영화 <렛미인>.
재개봉 영화가 하나의 장르처럼 정착하는 현상에 대해 씨지브이 홍보팀 김대희 과장은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에 상영했던 명작을 디지털로 다시 보는 반복 관람 행위가 자리잡는 분위기와 충성도 높은 고정 수요층이 존재한다는 두가지 이유”를 꼽는다. 다만, 개봉 당시 인기가 있었다고 해서 재개봉 때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장르 성격이 강한 영화, 아날로그 느낌이 강한 영화들이 재개봉 물망에 오른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로맨스물의 고전으로 꼽히지만 2004년 한국 개봉 때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20만명을 넘지 않았다. 12월 재개봉하는 영화 <렛미인>은 2008년엔 8만명밖에 보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꼽힌다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층이 재개봉 영화에 몰린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씨지브이리서치 센터에서 조사해보니 <러브레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이 재개봉했을 때 20대 관객 비중이 가장 높았다. 특히 <러브레터>와 <말할 수 없는 비밀> 관객은 각각 52.6%와 50.5%가 20대 여성들이었다. 30년 만에 재개봉한 <빽 투 더 퓨쳐>조차도 20대 여성이 39.1%로 다수를 차지한다. 10월29일 재개봉한 <아마데우스> 국내 배급을 맡은 드림팩트 김학종 대표는 “원래 재개봉 영화 예매를 주도하는 이들은 과거 영화를 봤던 중장년층이었지만 최근엔 개봉 당시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던 젊은이들도 함께 보는 추세”라며 “신작에서는 세대별 취향이 뚜렷이 나뉘는 경우가 많은데 재개봉 영화는 세대가 함께 공유하는 영화가 됐다”고 말했다.

젊은층이 몰리는 이유 또한 ‘회전문 관람’으로 볼 여지가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터널 선샤인> 홍보를 맡은 올댓시네마 김태주 실장은 “이십대라고 하더라도 개봉 십년이 넘은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든 세대는 극장에서 봤던 경험을 재현하고 젊은 세대는 아이피티브이(IPTV)나 디브이디(DVD)에서 봤던 영화를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억 때문에, 명성 때문에 재개봉 영화가 늘어난다. 영화의 수명은 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운명처럼 끌렸다…나의 ‘반복관람기’

‘추억의 영화’ 재개봉 열풍의 한 배경으로 ‘보고 또 보는’ 회전문 관람 효과를 꼽는 시각도 있다. 올레티브이 한 시청자는 1948년 나온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를 무려 1414번을 보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왜 영화를 반복 관람하는 걸까. 영화 많이 보기로 소문난 사람들의 입으로 호기심의 세계에 대해 들어본다.

■ 50번을 넘게 본 영화들

오승욱 <무뢰한> 감독
오승욱 <무뢰한> 감독
내가 적어도 열번 이상 본 영화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감독의 생각에 존경이 우러나는 영화들이다. 그런 영화들 중 첫번째를 꼽는다면 존 포드의 <아파치 요새>와 데이비드 린의 <밀회>다. 영화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존경스런 영화다. 두번째로는 코언 형제의 <파고>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이다.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정이 생긴다. 50번 이상, 셀 수 없이 많이 본 영화들은 걸작은 아니다. 오로지 취향과 추억 같은 개인적인 애정으로 보는 것이다. 세르조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와 <석양의 갱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와 리샤오룽(이소룡)의 <맹룡과강>, <용쟁호투>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극장 또는 티브이 <주말의 명화>에서 본 이후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두어번 이상씩 보는 영화들이다. 어린 시절 나는 이 영화들을 가지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보고 또 보아서 머릿속 기억으로 소유할 수 밖엔 없었다. 끔찍한 이 세상에서 위안 또는 휴식을 주는 영화들이다. 어린 시절 이 영화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오승욱 <무뢰한> 감독

■ 영화 <황해> 15번 재관람기

 주원규 <열외인종 잔혹사> 작가
주원규 <열외인종 잔혹사> 작가
나홍진 감독의 영화 <황해>는 모두 15번을 다시 봤다. 극장에서 3번, 브이오디로 7번, 디브이디방에서 5번 봤다. 재관람의 이유로는 제법 높은 영화의 완성도나 충격적 인상 탓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보면 볼수록 장르의 특성이 바뀌는 재미 때문이다. 이러한 재관람기의 역사를 1, 2, 3차 시기로 구분해 말해보겠다. 우선 1차 시기. 하드고어의 시대다. 칼 한 자루로 피가 튀기고 비명이 폭발한다. 잔인의 미학으로 따지면 전작 <추격자>를 넘어서며 한국 영화 사상 하드고어 베스트에 꼽을 정도라고 본다. 2차 시기는 스릴러로 바뀐다. 쫓고 쫓기는 자의 관계가 복잡한 실타래처럼 뒤엉키며, 이에 따라 복수의 대상마저 모호해진다. 스릴러의 묘미가 느껴졌다. 그런데 마지막 3차 시기는 좀 엉뚱하다. <황해>가 휴머니즘 드라마로 변해 있는 게 아닌가. 살아있는 것, 그 처절함에 대한 고백으로 읽히는 최종적 변화가 <황해>의 재관람기 특징이라고 이 또한 고백해 본다.

주원규 <열외인종 잔혹사> 작가

■ 10년 동안 반복 관람한 이유

박소진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대표
박소진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대표
오랫동안 <데드 맨 워킹>이란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캄캄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런데 막상 그 영화를 다시 봤을 땐 어디서도 그런 장면을 찾을 수 없었다. 어두운 밤 총성이 울리던 장면을 나는 폭풍우가 치던 밤이라는 이미지로 착각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심리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과 같을 수 있다. 단기기억 상실자인 <메멘토> 주인공은 아내를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를 위해 살인을 하고 그 기억이 사라지면 다시 복수를 꿈꾼다. 우리의 지각과 인지 과정은 그토록 왜곡이 쉽다. 많은 영화를 수없이 보고 또 보았던 내게 그중 특별한 영화를 묻는다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만화영화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른 채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비슷한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느날 갑자기 그 답이 찾아왔다. 주인공 소피의 뒷모습에서 나는 나의 20대를 보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두근거림을 볼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 공터에 앉아 스스로를 달래던 외로운 시절의 나를 반복 탐구해 왔던 것이다. 이 영화는 2004년에 처음 개봉했지만, 10년 동안 수십번을 보고난 후에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박소진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대표


(*위 내용은 2015년 11월4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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