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1.08.11  esc면



젖먹이와 5살 아이를 둔 30대 중반 ‘직장맘’입니다.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했는데 하는 일에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회사 규모도 작고 제가 연차도 있어서 중간관리자로서 역량을 보여야 하는데, 지금도 보고서 쓰는 데 끙끙거리는 실정이에요. 제 프로젝트가 ‘부실하다’고 지적받아 엎어진 적도 있죠. 최근에도 이런 문제로 상사한테 여러 차례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능력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고 제 생각에도 너무 한심합니다. 큰아이 낳을 즈음 일 감당하기 어려워 그만두려 했는데, 하필 남편이 실직해서 시기를 놓치고 말았어요. 출산휴가·육아휴직에 재택근무까지 많은 배려를 받았는데 이제 와서 회사를 그만두려 하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또 직장 동료는 제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문제를 고치려 하지 않고 사표부터 쓰는 건 비겁하게 도망가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회사에 다니면서 제 문제와 맞서 싸울 수 있을지도 회의적입니다. 저는 머리가 뛰어난 편도 아니고, 게으르고 소심하고 덜렁대는 성격에,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 국민약골 소리를 들을 정도의 저질 체력의 소유자거든요. 직장을 그만두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저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요?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김남훈 - 로프 브레이크로 숨고르기 어때요?

직장맘께서는 참 힘들게 싸워온 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의 능력의 한계가 조금씩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체념과 관성을 이겨내지 못해 계속 ‘고’ 사인을 내게 되죠. 10대와 20대가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과 기대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의 피 냄새를 못 느껴서 그런 겁니다.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는 실전 현장. 격투기 도장에서도 연습생들의 사기가 제일 높습니다. 격투기 시합이 코뼈가 부러지고 갈비뼈에 금이 가며 피멍이 온몸을 뒤덮는 고통의 귀납적 결론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기 이전엔 세상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직장맘께서는 직접 전투를 겪으면서 한계를 느낀 듯합니다. 사연에서 느껴지는 삶의 퍽퍽함, 그리고 10년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황망함, 이 모든 게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좀더 바람직한 결정은 없습니다. 조금 더 자신에게 편안한 결정이 있을 뿐이죠. 회사에 계속 다닌다고 해도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미 직장맘은 자신의 캐릭터를 ‘업무에 맞지 않는 덜렁대며 창의력 없는 인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f58646a9019a0db0671bc4adff0db73c.프로레슬링에 ‘로프 브레이크’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링을 둘러싸고 있는 세 가닥 로프 바깥으로 팔이나 다리를 밀어넣으면 경기가 잠시 중단되고 심판은 두 선수를 일으켜 세워 링 중앙에서 다시 경기를 하도록 합니다. 이 기술은 원래 레슬러의 몸이 로프 바깥으로 나갔을 때 치명적인 부상을 방지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규칙입니다. 하지만 경기 흐름이 불리하다고 느끼거나 위기를 모면할 때 일부러 쓰기도 합니다. 지금 직장맘에게도 이 기술이 필요합니다. 일단 링 바깥으로 몸을 밀어내 로프 브레이크를 쓰되, 정말 자신의 업무능력과 육아 부담이 이 기술을 써야 하는 원인인지는 고민해 보세요. 결국 로프 브레이크를 쓰는 이유는 ‘멋진 경기’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직장맘이 생각하고 있는 멋진 경기는 무엇인지. 다시 링 중앙에서 싸울 자신이 있는지 말이죠. 당신의 시합, 당신의 링이니까요. / 프로레슬러·<청춘매뉴얼제작소> 저자



소기윤 - 객관적인 자기평가 필요한 때

전국의 워킹맘들이 한숨 쉬며 고개를 끄덕일 사연이군요. 그런데 자책이라니요. 출산과 육아, 일 모두를 해내느라 10년을 애써온 주인공은 결과를 떠나 우선 박수부터 받아야 합니다. 일단 사연만 보면 회사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더 커 보이는데요. 그렇다고 그게 결코 비겁해 보이진 않습니다. 육아가 회사 피해서 도망갈 피난처는 절대 돼주지 않을 테니까요. 차라리 육아를 피해 회사로 도망치고 싶다면 모를까. 그러나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자신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균형 있는 판단을 하고 있는지 되짚어보고 결정하길 권합니다.



첫째, 이게 과연 자신의 능력 탓만 해야 하는 문제인지는 짚고 넘어가야겠죠. 솔직히 혼자 힘으로 둘 다 완벽히 잘해내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요? 출산과 육아를 잘해내는 것 하나만도 세상 어느 커리어보다 얻기 힘든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10년의 세월 동안 최선을 다해왔다면, 일과 육아에서 느끼는 부족한 만족감이 자신의 능력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둘째, 그간의 회사 생활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엎어진 프로젝트나 부실한 보고서 등 자신의 부족한 부분만 부각하고 계신데요. 주인공이 그만두는 것을 말리고 있는 동료와 더 높은 성과를 요구하면서도 주인공의 실수를 메우고 있는 상사의 태도로 미뤄보았을 때 회사에서 10년이나 주인공을 필요로 했던 장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평가 뒤에도 회사에서 해야 할 역할과 능력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면, 이건 육아에 대한 부담 문제를 떠나서 그만두는 것이 계속 다니는 것보다 과연 회사에 더 미안한 일인지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은 가족과 회사라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 즉 배우자, 부모형제, 직장 동료, 심지어 아이들 또한 각자의 몫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환경적인 여건을 잘 살펴서 각자에게 필요한 요구도 하고 자신에게는 어떤 역할이 가장 효율적일지도 가늠해보기 바랍니다. / 정신과 전문의·미소정신과 원장 



 

심영섭 - 긍정적 자기암시로 인생 바꿔요  

제 지인 중에 외모도 썩 잘생긴 편이 아니고, 소위 말하는 ‘스펙’이라는 것도 그냥저냥인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머스매’가 있답니다. 살짝 비결을 물으니 “모든 일에는 자신감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라며 씩 웃더군요. 사실 자만을 비껴가는 적당한 자기암시는 인간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광택제인 셈이죠. 인간이란 그냥 두면 녹이 스는 은수저 같거든요.



미국의 심리학자인 W.C. 렉스 박사는 슬럼가의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주위에서 문제아로 취급받은 그룹과 착실한 소년으로 취급받은 그룹을 조사했습니다. 문제아로 취급받던 그룹은 “우리는 어차피 틀렸어. 언젠가 경찰 신세를 질 거야”라는 강한 자기암시에 걸려 있었다고 해요. 5년 뒤, 이 두 그룹을 추적조사한 결과, 실제로! 별다른 부정적 자기암시가 없던 소년 그룹에 견줘, 강한 부정적 자기암시를 하던 그룹은 39% 이상이 평균 3회 소년원 신세를 졌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권투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고 공언하며 상대방을 케이오시킨 에피소드나,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야구방망이로 스탠드를 가리키면 실제로 거기에 홈런을 쳤다는 일화는 ‘자기암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이렇게 ‘자기선언’을 해버리면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집중력과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겁니다.



우리 직장맘님의 사연을 보면, 긍정적인 자기암시가 단 한 줄도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를 꼭 부정적인 자기암시로 도배를 하셔야겠어요? 이건 직장을 그만두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이건요, 당신 안의 가능성을 발휘하면서 사느냐, 가능성을 써보지도 못하고 살다 죽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 이제 자기암시를 바꾸세요.



“오냐, 할 수 있어. 직장을 굳이 옮기겠다면, 지금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뒤에 옮기겠다. 내 잠재력은 직장생활을 통해서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발현될 수 있어. 아직 내 잠재력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  대구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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