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면옥 돼지고기 수육.

[esc] 요리 
서울시내 인기 평양냉면집의 냉면보다 개성강한 별미 메뉴 수육 맛 비교

을지면옥 ‘껍데기’
아는 사람만 찾는 메뉴
평래옥 제육은 부드럽고 따뜻
필동면옥 것은 차갑고 탱탱한 맛

직장인 박 차장은 비가 퍼붓는 날에도 냉면집을 찾는다. 그의 단골집은 ‘을지면옥’(서울 중구 입정동)이다. 냉면 맛도 맛이지만 특별한 메뉴 때문이다. 그는 을지면옥을 찾으면 “껍데기 주세요”라고 종업원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옆 식탁의 손님이 혹여 들을까 조바심내면서 모기소리를 낸다. 종업원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네” 하고는 접시에 납작한 수육을 담아 온다. 차림표에는 ‘수육 한접시(소고기)’, ‘편육(돼지고기)’만 있다. 어디에도 ‘껍데기’는 없다. 도대체 이 고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추운 겨울날 먹었던 냉면은 이제 여름날 대표 먹을거리다. 서울 시내 내로라하는 냉면집들은 열렬 팬 군단을 거느리고 있다. 긴 줄은 예사다. 오래 기다려 들어간 냉면집에서 면 한 그릇만 후딱 해치우고 나오는 이들은 없다. 냉면을 정중히 모시기 전 의전행사인 양 수육 한 접시와 소주를 주문한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고 했다. 술안주로 고소한 고기 한 점만한 것도 없다. 박 차장처럼 오로지 수육 맛 때문에 단골집을 정한 이도 있다. 주연보다 조연이 빛나는 시대, 냉면집의 조연인 수육을 찾아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이자 한양대 경영학과 예종석 교수가 서울 시내 냉면 명가 탐방에 동행했다. 그는 타고난 식도락가이자 내공 깊은 음식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하다.

평래옥의 도톰한 돼지고기 수육.
지난 12일 장맛비가 쏟아지는 난리에도 을지면옥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껍데기 주세요.” 이윽고 작은 접시에 나온 수육은 정체가 돼지고기다. 아주 얇고 길쭉하다. 섭취하는 순간 피부를 재생의 길로 인도할 것처럼 껍질이 탱탱하다. 껍질 안쪽은 얇은 지방이 딱 붙어 있고, 쫄깃한 살코기가 이어진다. 구조가 흔한 제육(돼지고기)과 다르다. “유난히 비계가 적네요.” 세상 다채로운 음식을 두루 맛본 예 교수조차 처음이라고 반색한다. 그는 겨자, 식초, 고춧가루를 양념장에 팍팍 넣어 자신만의 소스를 만든다. 노란빛 도는 뭉클한 양념장이 완성됐다. 왕의 즉위식에서 볼 법한 우아하고 느린 손놀림으로 고기 한 점 집어 양념장에 폭 담갔다가 입에 가져간다. “아주 일품이네요. 독특하고 맛납니다. 보통 제육은 오겹살로 많이 만들죠. 이건 삼겹살이군요.” 그의 평가는 5점 만점에 5점이다. 접시는 금세 바닥을 보인다. 차림표의 ‘편육(돼지고기)’은 확실히 이것과 다르다. 오도독뼈가 박혀 있고, 지방과 살집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다. “‘필동면옥’(서울 중구 필동)과 비슷한 차가운 수육이네요.” 을지면옥, 필동면옥은 모두 한집안이다. 1970년에 의정부에 ‘평양면옥’을 연 고 홍영남씨의 자녀들이 운영한다. “같은 집안이라도 맛은 약간씩 달라요. 나름의 노하우들이 생긴 거죠.”

필동면옥의 제육.
냉면의 조연으로서 돼지고기의 흔적은 고서에 곧잘 등장한다. <동국세시기>, <부인필지>, <규곤요람> 등에는 ‘저육(돼지고기)을 잘 삶아 썰어 넣는다’는 기록 등이 있다. 식품사학자 고 이성우 교수는 그의 책 <한국요리문화사>에서 냉면에 관해 ‘국수에 꿩탕과 동치미 국물을 붓고 삼겹살 돼지고기, 무채김치, 배를 위에 얹고 나서 반숙달걀을 가늘게 실처럼 썰어 살살 덮은 다음 다시 잣, 실고추, 겨자, 초 등을 약간 치는 것’이라고 적었다. 과거 구황식품이었던 메밀의 부족한 영양을 돼지고기가 채워준 것이다.

을지면옥의 일명 ‘껍데기’는 육수를 낼 때 들어가는 돼지 삼겹살이다. 특별한 돼지고기가 아니라 써는 방식을 달리해 내는 수육이고, ‘껍데기’란 이름은 언제부터인가 단골들이 붙였다고 한다. 박 차장은 “점심 이후 너무 늦게 가면 먹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평양면옥의 돼지고기 수육에는 오도독뼈가 박혀 있다.
예 교수는 식도락가답게 약 6년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특보로서 북한을 방문해 맛본 북한 냉면에 대한 얘기를 풀어낸다. “고려호텔 내 식당, 청류관, 민족식당 그리고 이후 나중에 간 옥류관까지 이른바 평양 4대 냉면집 맛을 다 봤죠.” 북쪽에서 시작한 냉면, 그 맛이 궁금하다. “깜짝 놀랐어요. 너무 맛이 형편없어서요. 메밀도 별로 없고, 찾는 이도 없어서 그런다고 하더이다. 간혹 북한에서도 나이가 많은 이들은 저와 같은 얘기를 하기도 한다고 해요.” 그는 음식은 역시 찾는 이가 많아야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소고기 수육도 한 접시 식탁을 차지했는데, 별 감흥은 없다. “역시 냉면집 고기는 제육”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평래옥’(서울 중구 저동)의 돼지고기 수육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도톰하고 부드럽고 따스하다.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혀 안에서 같이 장단을 맞춰 논다. 김장철 땀 흘린 뒤 김치에 싸 먹는 수육이 저절로 생각난다. “음식은 인품입니다. 요리사나 주인의 인품이 중요하죠.” 평래옥은 5년 3개월 전에 문을 닫고 2년간 공사를 했다. 약 3년 전 다시 문을 열었다. “예전(약 5년 전)에 일한 종업원을 다시 봤어요. 사람관리를 잘하는 곳이라 생각했죠.” 초계탕으로도 유명한 평래옥은 수육만 주문했는데 반찬으로 닭고기무침이 나온다.

필동면옥의 제육은 평래옥과 천양지차다. 차갑고 탱탱하고 얇기로 소문나 있다. “평래옥은 얇게 썰래야 썰 수 없어요. 이곳 제육은 부드러운 맛보다는 탄력 있는 식감 때문에 먹죠.” 삶은 다음 한동안 식혀서 탱탱함을 만든다고 한다. 평소 필동면옥의 수육을 좋아한다는 그는 “여느 때와 조금 달라 오늘은 조금 실망스럽다” 소리를 한다. “아주 얇게 썰어 나오죠. 오늘은 좀 도톰하고 크게 썰었네요.” 써는 방법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진한 캐러멜색의 소고기 수육이 등장한다. 쫄깃하다. “하지만 역시 냉면집은 제육입니다. 별 매력이 없어요.”

평양면옥(서울 중구 장충동)은 따끈하긴 하나 아주 부드럽지도, 씹히는 식감이 뛰어난 것도 아닌, “평범한 수육”이 나온다.

‘봉피양’은 방이점에는 수육이 있으나 마포점이나 통의동지점 등에는 없다. “봉피양은 돼지갈비를 먹는 곳이죠. 지점마다 맛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엔 좀 아쉬운 곳도 있어요.” ‘우래옥’(서울 중구 주교동)도 차림표에 수육이 없다. ‘을밀대’(서울 마포구 염리동)는 제육이 없고, 차돌박이 수육이 있다. 그는 미식의 정점에는 냉면이 있다고 말한다. “냉면 맛을 알면 음식을 좀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면에게 수육이란 무엇인지 그에게 물었다. “면을 부르는 것”이라고 말을 맺는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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