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밥

[나는 농부다] 숨쉬는 제철밥상

단풍철이다. 여기서 퀴즈 한 가지.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곳은? 높은 산? 아니다. 정답은 논이다. 벼 잎이 누렇게 단풍 들어 들판을 물들인다. 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면 논은 비고 햅쌀이 부엌에 놓인다.

날이면 날마다 짓는 밥이지만 햅쌀이 나오면 밥을 다시 보게 된다. 어느덧 밥 짓기가 타성에 빠져 있구나. 밥은 ‘짓는다’고 한다. ‘짓는다’는 밥, 옷, 집과 같이, 살아가는 데 소중하면서도 정성이 많이 드는 일에 쓰는 말이다. 햅쌀 기념으로 밥 짓기 공부를 하자.

가장 맛있는 밥을 짓는 이웃한테 청했다. “밥 한번 지어 줘!” 그이가 일을 마치는 저녁에 세 칸 오막살이를 찾아갔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이웃은 “현미를 미리 물에 불려 놓았어요” 하며 쌀을 보여준다. 현미 4할에 찹쌀현미를 6할의 비율로 섞고 거기에 찰수수와 찰흑미를 15% 정도 더 얹었단다. 이걸 물에 4차례 씻고 밥물을 손등까지 오게 잡은 뒤 10시간을 불렸단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여기에 풋팥과 풋콩을 넣고 여기서 물이 나올 걸 계산해 밥물을 약간 덜어내고 압력솥에 불을 때기 시작했다. 센 불로. 조금 뒤 칙칙칙 하고 추가 돌아가기 시작하니 5분을 그대로 둔 뒤 약불로 줄여서 15분을 더 둔다. 이렇게 하면 누룽지가 잘 만들어진단다.

고구마대들깨조림, 호박순된장국, 애호박지짐나물, 시금치나물에 채소 모음 샐러드. 서리 내리기 직전의 제철 반찬이 모두 모였다. 여기에 아침에 담근 겉절이와 가죽장아찌까지 곁들이니 밥상이 넘친다. 불을 끈 뒤에도 뜸을 들여 압력이 거의 다 빠졌을 때 솥뚜껑을 열었다. 까무잡잡한 밥 위에 풋콩이 드문드문 보이는 구수한 현미밥이다. 주걱으로 밥을 한 차례 고루 섞은 뒤 밥을 뜬다. 한 그릇 두 그릇. 눌은밥만 남겨 물을 붓고 누룽지를 안쳤으니 밥 먹을 차례. 하지만 오늘 밥은 사진을 찍어야 먹을 수 있다. 방안 불빛을 모두 켜도 안 돼, 스탠드로 보조조명을 하고 반사판까지 들이대느라 모두 수고해 주었다.

밥이 향긋하면서도 구수해 밥만 먹어도 맛있는데 그 많은 반찬까지 싹싹 비우고 이번에는 누룽지 차례. 구수한 누룽지를 훌훌 들이켜니 마무리까지 좋구나!

공부한 김에 현미밥 짓기 메모. 현미는 쌀의 껍질만 벗겨 쌀의 생명이 살아 있어 몸에 좋지만, 물을 잘 흡수하지 않아 미리 불려야 한다. 짧으면 2시간에서 길면 10시간. 현미밥은 현미만 넣기보다 찹쌀이나 다른 잡곡, 콩과 팥은 물론이고 다시마나 구기자 열매를 넣어 지을 수도 있다. 현미는 꼭꼭 여러 번 씹어 먹어야 소화 흡수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 소금(쌀 한 컵에 천일염 1그램)을 약간 넣고 밥을 지으면 좋다. 누룽지를 만들기 싫으면 센 불로 칙칙칙 1분에 약불로 10분을 조절한다. 현미가 몸에 좋은 줄은 알지만 거칠어 꺼렸다면, 현미와 다시 만나기 좋은 철이다. 논에서 갓 들어온 현미는 새댁처럼 부드럽다.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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