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어찌 하다가 7박 8일, 꼬박 일주일을 시댁에서 보내고 왔습니다.

그 곳은 산 골짜기 외딴집. 핸드폰도 2G만 겨우 터지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그 골짜기에 6-7집이 있었다는데 모두 떠나고

어머님 아버님이 농사 지으실 때만 쓰시는 옛날 집만 남았습니다.

낮에는 햇볕이 뜨거워도 해만 지면 긴팔을 입어야 하고

새벽녘에는 추워서 이불을 꼭꼭 덮고 자야 하는 곳, 이제 곧 군불을 때야 하는 곳이랍니다.

에어컨 없이는 못 사는 도시 사람들이 듣기에는 천국같은 곳이죠.

그 곳에서 보낸 휴가... 형민군 어린이집 방학을 이용해 (형민군만) 아주 알차게 보내고 왔습니다.

 

사진1.jpg » 한 여름에 마당이 있어야 할 이유. 누드 버전도 있으나 자체 심의했음.

 

형민군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다양한 농기계였답니다. 자기도 커서 할아버지가 되어

저렇게 멋있게 농기계를 운전해서 일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진2.jpg » 형민군의 로망, 경운기 운전.

여섯 살 차이 나는 사촌 누나와 이런 저런 놀이도 하구요.

  사진3.jpg » 사촌누나와 미장원 놀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계곡에서의 물놀이가 짱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계곡에

우리 가족들만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찬 물 속에서 더위도 잊고...

거의 매일 다른 계곡과 다리밑을 찾아 다녔네요. 못 가는 날은 마당에서 물놀이~

 

   사진4.jpg » 물에 발만 담궈도 넘 시원했던 계곡.

 

밤에는 바깥에 누워서 별을 보다 잠들기도 하고... 형민군은 좀 시큰둥했지만

은하수가 보이는 하늘을 그리 쉽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어른들에게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답니다.

 

참 좋았던 시간들이지만 저로서는 너무 힘든 휴가였답니다.

처음 3일 동안 그 집에 14명이 북적 거렸고 그 식구들의 세끼 밥 하고 설거지 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 혼자 했던 건 아니지만 며느리는 저 혼자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도와주고 저는 계속 하고 -.-;;

김훈 선생님이 밥벌이의 신산스러움이라는 말을 하셨던가요?

밥 차리기, 밥 치우기의 신산스러움도 그 못지 않았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부엌 근처에도 가기 싫을 정도 였답니다.

그나마 어머님과 다른 어른들이 저보고 고생한다고 따뜻하게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견디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형민군이 잘 놀기는 했지만 아직 다섯살이기에 낯선 데서 엄마를 많이 찾았고

특히 밥 먹을 때 저에게 기대거나 하면 저도 모르게 애한테 짜증이 났습니다.

애 아빠는 다른 차 운전하기도 하고 어디 볼 일도 보고 하면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24시간 애와 같이 있어야 했던 것도 엄청 스트레스였답니다.

애가 귀찮고 짜증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엄마 맞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구요.

호기심 많은 아이가 왜?왜? 하면서 끝도 없이 질문하는데 대답하기도 힘들고

이녀석 빨리 어린이집 보낼 생각만 하게 되었답니다.

 

이건 휴가를 보낸 것도 아니고 안 보낸 것도 아니고... ㅠ.ㅠ

힘든 휴가를 보내고 왔더니 완전 무기력해져서

밥도 하기 싫고 애도 보기 싫고 남편은 더 싫고...

올림픽도 독도도 뭐 그냥 그런가보다. 그냥 힘들다, 무겁다, 싫다... 뭐 그런 생각 뿐입니다.

마음과 몸이 재충전되는 휴가... 아직은 꿈일 뿐인가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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