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와
아래층 집에 인사를 간 것이었다.
물론 자그마한 선물도 들고.
다행히 아래층도 개똥이 보다 2살 많고, 1살 적은 딸 둘을 키우고 있어 어느 정도 이해 해 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아래층은 한번도 소음을 문제 삼지 않았고,
명절 때 작은 선물이라고 할까 하였으나 “서로 부담”이라는 남편의 의견에 못이기는 척 따로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3년쯤 지났을까?
아래층 사람들이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으로.
섭섭한 마음과 새로 이사 오는 사람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았으나, 계속
되는 야근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사가 임박해서야 부랴 부랴 인사를 갔다.
그 동안 감사했다는 말에 이어 우리 집 소음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 봤다.
“저희야 같이 애 키우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해를 했지만, 애 없는 사람들은 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이런.
그간 층간 소음에 대한 항의가 없었던 것은 우리가 조용한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참아 주었던 것이다.
새로 이사올 사람들은 대학생 아들만 1명 있는 중년 부부라고.
애가 다 커서 이해 못 해 줄 수도 있고, 아들 키웠던 사람이라 이해 해 줄 수도 있고.
그 즈음 회사 후배가 아래층의 지속적인 층간 소음에 대한
강한 항의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터라 더욱 걱정이 되었다.
아래층이 새로 이사 오고 아이를 데리고 작은 선물을 들고
인사를 갔다.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듯 긴장 되었다.
문이 열리고 대학생 아들로 짐작되는 청년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 오셨지요? 저희는 위층 사람 이예요”
“네. 근데, 무슨 일로? ….”
“저희는 아이가 1명인데,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긴 하지만 좀 시끄러울 수도 있어서요”
“아~! 아이 때문에
오신 거예요?”
“네.”
“애들이 좀 뛸 수도 있죠, 뭐. 괜찮아요.”
으흐흐흐.
그간의 걱정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너무 좋아서 입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 뒤로도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수개월) 그 대학생의 아버지와 어머니 되시는 분들과 교대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할 기회가 있었고, 남편과 나는 언제나 우리 집 소음 문제를 제일 먼저 여쭈었는데, 대답은 누구든 언제든 한결 같았다.
“애들이 좀 뛸 수도 있죠, 뭐. 괜찮아요.”
그렇기에 우리 윗집이 조금 시끄러워도 참는다.
아래층에서 한번도 항의를 하지 않는데, 하물며 애 키우는 우리가 어찌 항의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윗집의 소음은 나날이 더해간다.
밤 11시가 넘어서도
머리가 울리 정도로 쿵쿵 소리가 나고, 오늘은 러닝 머신 위에서 달리기라도 하는지 1시간 가량 규칙적인 쿵쿵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위층에 찾아가 항의를 못 하는 것은 우리를 참아주는
아래층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층 사람들에게서도 “애들이
좀 뛸 수도 있죠, 뭐”라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이다.
“애들이 좀 뛸 수도 있죠”라는
말은 아래층 사람들에게만 듣는 좋은 말로 남겨 두고 싶다.
하여 오늘도 나는 참는다.
아래층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꾸~욱! 참는다.
강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