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노래 가사와 다르지
않았다.
<품케어>YB&OB 7월
정모에서 8월1~3일 오전보육 책임자를 자청한 것이다.
맥주 500cc로 충분한 사람이 1000cc를 마신 게 화근이었겠지만,
지난 2년반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기부할 재능이 없다면 휴가라도 기부 해 보자 생각한 것이다.
우리 마을(1천여세대 아파트 단지) <품케어>는 일부 입주민에 의해 결성된 협동조합이 시청(성남)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보육사업으로 운영주체는 학부모였다가 작년부터 주민지원센터로 최종 조정되었다.
. 보육대상은 5세 ~ 초등학교 2학년.
. 운영시간은 14시 ~ 19시.(18시 저녁식사, 19시~20시 도서관에서 보호)
. 전담교사 1명 외 커뮤니티센터
책임자와 마을 도서관 선생님 등 2명이 유치원생 픽업 등을 지원한다.
이것도 사업인지라
계속 운영을 하자면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해서 월보육을 기본으로 하지만 일보육도 가능하다.
시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사업이라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는데, 감사 나온 시청 직원들 조차 부러워한다고.
방학이면 기존
보육 외 오전보육 등 신청을 받는데, 정원 초과로 신청자 모두를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오후시간은 대부분
학원에서 보낼 수 있지만, 오전시간과 점심 식사를 아이 혼자 해결을 해야 하는데 바로 <품케어>가 이런 부분을 해결 해 주기 때문이다.
방학을 앞두고
공지된 내용을 보니 8월1~3일 오전보육은 없단다.
개똥이는 유치원
방학이어도 종일반 방학기간과 겹치지 않았고, 어차피 내가 휴가이니 상관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다른 대책이 있느냐 물었고, 당연히 없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각 유치원 종일반
방학기간을 피해서 정해진 기간이라 유치원생은 문제가 없었고, 초등학생 정도면 제법(?!) 컸겠다 오전 몇 시간 정도야 내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럼 제가 휴가 기부하지요”라를 용감한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단, 비공식적으로 최소인원으로.
편협하다고, 진정한 공동육아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으나, 다수의 아이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내가 하루 해 보고 못하겠다 뻗으면 그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건 내겐 다소
무모한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위험요소는 최대한 배제해야 했다.
확정 인원은 세
집 각2명 총 6명 그리고 유동적인 1명.
거기에 개똥이가
더해지면 8명.
먼저 <품케어>운영자 측에 이런 계획을 공유하고 문의를 했다.
. 이 계획을 실행해도 되겠는가? Yes!
. 8월1~3일 오전보육만 방학이고, 오후보육은 기존대로 운영되는가? Yes!
. 공간 이용은 가능한가? Yes!
. 점심 식사를 위해 반찬을 제공하는 기존 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Yes!
내가 조카들을
돌보겠다 계획했을 때도 나를 잘 아는 큰올케가 휴가를 내더니,
<품케어>OB 엄마 중 한
명도 같은 걱정을 했는지 큰딸인 ‘A언니’에게 제안을 했다.
“개똥이 엄마는 휴가를 기부하겠다는데, 너도
뭔가 힘을 보태야 되지 않을까?”
원래 확정 인원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야무진 5학년이라 동생과 둘이서만 집에
있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는데, 흔쾌히 <품케어>합류를 결정했다.
이 결정 덕택에
수많은 걱정에 둘러싸여 전전긍긍하던 나는 비로소 평온해질 수 있었다.
09시~14시.
5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일부
아이들이 8시 30분부터 올 거란다.
휴가기간 늦잠에
길들여진 몸부터 깨워야 했다.
8시 45분. 그게 타협안이었고 부랴부랴 시간 맞춰갔는데 이미 3명이 문 앞에서
대기 중.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지하공간의 습기를 다스리기 위해 바닥에 열을 올리고 에어컨을 켜고 아침에 휘트니스센터로 배달된 반찬을 챙겨오는 등 나름 분주했다.
9시가 되기 전에 모든 아이들이 모인다.
모이자마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게임을 한다. 난감하다.
일부 아이만이
숙제를 한다.
개똥이도 혹시
몰라 유치원 방학숙제를 챙겨왔는데, 게임에 눈이 팔려 숙제는 뒷전이다.
A언니가 한마디 한다. “니들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모든 아이들이
바로 게임을 중지하고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기 시작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15분 만에 자리를 뜨는 아이도 있고, 1시간
가까이 혼자 꿋꿋하게 하는 아이도 있다.
마지막 아이가
숙제를 다 할 때까지 나머지 아이들은 최대한 조용히 논다.
“야 공부하고 있는 거 안보여? 조용히 안 하면 이따 안 놀아 준다!!!”는 A언니의 불호령 덕택에.
꿋꿋하게 홀로
남아 숙제를 하던 마지막 1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놀이가 시작된다.
남아/여아 가릴 것 없이 그렇게도 A언니의 말에 복종하는 것은 하는 말이
타당하기도 하지만 바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놀이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고, 나에게 하소연하러 오는 아이도 없었다.
투명인간처럼 있었다고나
할까?
심지어 아이들끼리
놀다가 울음 소리가 들려 누가/왜 우는지 궁금하여 들여다 보고 개똥이인 것을 확인 했으나 녀석이 내게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으므로 모른 척 했고, 그 안에서 잘 해결이 되었다.
첫날은 물량 조절
실패로 밥도 별로 맛이 없었고 반찬도 김치 외 2가지로 부실했으나
둘째 날부터는
밥도 잘되고 반찬도 김치 외 4가지로 애들도 잘 먹었다.
식사 전에는 A언니 인솔하에 모든 아이들이 나가서 각자 먹을 아이스크림을 골라 왔고, 식사
후에는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드디어 마지막
날.
최다인원인 9명의 아이들이 모였고, A언니는 피곤했는지 단체놀이를 피했다.
애들은 내가 좀
편해졌는지 밥 먹을 때는 “이거 더 주세요”, “저거 더
주세요”라는 요구사항을 활발하게 얘기하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사소한 마찰 후 이르러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게는 나름 가까운
아이들이었는데, 녀석들에게 나는 가끔 보는 어떤 엄마였던가 보다.
2시가 되기 전 아이들은 학원을 향해 바람같이 사라지고.
아이들로 들썩거리던 <품케어>에는 정적이 흐르고 개똥이만 남는다.
오후보육 유치원생들이
올 때까지 각각 태권도장과 미술학원에 간 형/누나가 돌아올 때까지.
그렇더라고 엄마를
따라 집에 가겠다고는 안 한다.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나면 신나게 같이 놀 수 있으므로.
기부할 재능이
없다고 항상 뒤로 빠져있었는데, 누군가가 재능을 기부한다는 것은 재능 외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도 함께
기부한다는 것임을, 그 당연한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뒤늦게 깨달았다.
얼굴 보면 인사를
하는 아이들이지만 대화를 하려면 보다 많이 가깝게 지내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도.
무엇보다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낸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A언니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강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