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이야기 3

자유글 조회수 5681 추천수 0 2014.09.26 06:11:51

고추를 따면서 드는 생각. 어쩌다가 우리는 이 맵고 자극적인 고추를 삼시 세끼 김치로 먹고 고추장으로 먹고 하다못해 콩나물무침에도 넣어 먹게 되었을까. 임진왜란을 전후해 들어왔다는데 우리 구미에 맞는 뭔가가 없었다면 세종대왕 잡숫던 백김치가 이다지도 시뻘겋게 바뀌진 않았을 터. 남아선호 때문인가? 외제품에 대한 뿌리깊은 선호?

 

가을이라지만 한낮의 바람 없는 고추밭은 건식 사우나. 엉덩이에 30cm 방석을 깔고 앉아 뭉기적뭉기적 고추를 따노라니 저절로 답이 알아진다. 사는 일이 팍팍해서겠지. 부귀영화는 남의 일, 내 앞에 놓인 건 그저 자갈밭이어서 걷기만 해도 발이 아픈데 그 밭을 갈아 콩도 심고 팥도 심어야 하는 생이어서겠지. 자갈밭을 갈다 돌아와 밥 한술 뜨려니 찬이라고는 달랑 고추 몇 개 된장 한 보시기. 밥에 물 말아 후후룩 넘기는 중에 매운 땡초 된장 찍어 찬을 삼노라면 혀도 아리고 속도 아려서 자갈밭 생 따위 그나마 잠시 잊을 수 있어서겠지.

 

몰래라도 미국으로 넘어가기가 소원인 멕시코 사람들이나, 폐지되었다는 카스트 아래 불가촉천민이 엄연한 인도 사람들을 보라구. 유독 매운 맛을 좋아하잖아. 스웨덴 사람들이 닭고기 스프에 칠리 넣어 먹는단 소리 들어봤어? 핀란드 사람들이 자기 전에 자일리톨 대신 고추를 씹지는 않잖아. 살기 팍팍할 수록 매운 맛을 즐긴다는 내 '고추선호 이론'은 나름 근거가 있다니까.

 

하기야 굳이 멕시코, 인도, 대한민국일까.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팍팍하고 퍽퍽하지. 브라질의 고추는 커피일 테고 독일의 고추는 맥주일 테지. 고단한 생을 위무하는 커피거나 맥주거나 담배 따위의 사소하지만 대체불가능한 것들. 고추를 다 따고 커피수확을 마치고 보리 타작을 끝내놓고 태우는 한 개비 담배의 맛이라니. 그런 담배의 값을 인상한다지. 정치며 위정자로 인한 스트레스가 담배보다 백배는 해롭게 느껴지는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일도 팍팍하기 짝이 없는데,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대통령에게는 아쉽고 안타까운 소식 하나. 나도 담배를 끊었다.

 

-농부 통신 42

 

농부통신 4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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