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의 똥 이야기

가족 조회수 13492 추천수 0 2013.05.06 12:07:30
영화 <광해>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 
그 중에 특히 내가 빵 터졌던 부분은 임금 노릇을 하게 된 하선이
여러 궁녀들 앞에서 똥을 누는 장면이었다.
육아휴직 중이긴 하지만, 
직업이 역사 교사이다 보니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면 직업 의식이 발동한다. 
영화를 재미로 보면서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이 영화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혹시 수업에 쓸 만한 영상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광해>를 볼 땐 임금이 똥 누는 장면도 그 중 하나였다.
임금의 똥은 매화라 불렀고,
이동식 변기인 매화틀에 임금이 똥을 누면
궁녀가 비단이나 고운 천으로 뒷처리를 해주었다.
그리고 임금의 똥은 왕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내의원으로 보내졌다.
<광해>에서는 갑작스레 임금이 된 하선이 수많은 궁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쩔쩔매며 똥을 누어야 하는 수모를 매우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광해 똥 누는 장면.jpg
(사진은 인삼공사 블로그에서 다시 퍼온 것입니다.)

우리 집 세 아이의 똥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광해>의 똥 누는 장면이 생각이 났다.
올해 네 살인 둘째 선율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직 유치원 변기가 익숙치 않아 집에서 쓰는 유아 변기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유치원 갈 때 변기를 가져가고, 집에 올 때 가져오기를 한 달 넘게 계속하고 있으니
이동식 변기인 셈이다.

똥 이야기의 첫 번째 사연은 선율이가 세살 때인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막내 수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와 수현이가 처가에 있었던 
작년 4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유치원에 간 첫째 신영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둘째 선율이가 곤히 낮잠이 들었다.
집에서 유치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4분으로 바로 코 앞이다.
'얼른 다녀오면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잠든 선율이를 두고, 집을 나섰다.
'혹시 깨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
아이가 쌕쌕거리며 곤히 자고 있었기에 
빨리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영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와 현관 문을 열려 하자
선율이가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선율이가 울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가오는데, 
걸어오는 자세가 좀 이상했다.
얼른 뛰어들어가 보았을 때 선율이는 울음으로 얼굴이 범벅이 되었고,
바지는 무릎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바지 안에는 똥이 있었다.
얼른 화장실에 데려가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안아서 달랬다.
한참을 달랜 뒤에 얘길 들어보니 
일어났는데 아무도 없어서 울다가 똥이 마려워 바지 내리고 변기에 똥을 누었는데
뒷처리를 하지 못하고, 문 여는 소리에 걸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인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랴'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잠에서 깼는데, 아빠가 안 보였으니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을까?
선율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아이를 두고 나간 일이 후회되었다.
그 뒤로 선율이는 내가 마당에 잠깐만 나가도 울었다.
혼자 남게 되는 상황에 아주 예민해진 것이다.
지난 겨울에 수도가 동파되어 물이 새는 걸 막으러 마당에 나갔는데,
선율이가 울기 시작해서 진땀 뺀 일도 있었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일 년이 넘게 지났다.
지금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가신 것 같다.
똥도 어찌나 잘 누는지
한 번은 실내 놀이터 체험 활동 다녀온 날 유치원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님, 선율이가 잘 놀고 오더니 유치원에서 한 달치 똥을 누었어요."


선율이는 몸집도 통통하고, 잘 먹는다.
그래서 똥 양도 많고, 자주 눈다.
반면 첫째 신영이는 밥 먹는 양이 적고, 체구도 마른 편이다.
그에 비해 뛰어놀거나 공놀이하는 일 같은 신체 활동이 많다.
신영이는 일곱 살이라 화장실 변기를 이용하는데,
화장실 들어가서 1분 정도 밖에 안 되어 외친다.
"똥 닦아 주세요."
'벌써 다 누었어?'하며 들어가보면
황금색 가래떡 같은, 반죽이 잘 된 건강한 똥을 누고 앉아있다.
아마 조선 시대 내의원 의원들이 보았더라면 
'더 할 수 없이 건강한 똥'이라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막내 수현이는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뒤로 고체 똥을 누고 있는데,
누나들 중 큰 누나 신영이 쪽에 가깝다.
똥 눈 뒤, 면 기저귀를 살짝 흔들면 변기에 똥이 '똥!' 하고 떨어진다.
분유 먹을 땐 면 기저귀 초벌 빨래 하는 게 성가신 일이었는데,
요샌 잘 반죽되어 찰진 똥을 싸니 크게 일이 될 게 없다.

조선 시대 내의원 의원도 아니지만 난 아이들 똥에 관심이 많다.
예전에 동네 할머니께서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거 하고,
아이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거 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난 이 말씀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고 싶다.
"아이가 건강한 똥 누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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