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 신진욱 교수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많이 공감이 됐습니다. 어떤 일을 충분히 잘 겪어내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내 삶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기력감과 상대 비난, 남 탓, 가치 포기 이런 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삶, 한평생 돈만 중요하다, 원래 더러운 세상이다 그러면서 그렇고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잘 겪어내고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니까요. 다음은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긁어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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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치유하는 일을 30년 동안 해오신 어느 영국인 심리학자께서 해주신 얘기가 있다. 상실은 누군가에게 큰 의미를 갖는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경험이다. 사랑하는 사람, 동물, 자기 육신의 일부, 아끼는 물건, 소중한 기억,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표가 되는 어떤 가치, 삶의 환경, 이런 것들 ...

아마도 상실이 큰 충격이 되는 까닭은, 사라진 그것이 단지 외적 대상이 아니라 자기 삶의 유기적 일부였기 때문일 것 같다. 상실은 자기 안에 큰 구멍을 만들고, 그걸 새 살로 채워 삶 전체를 다른 모양새로 재건할 때까지 사람은 비틀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실의 경험을 하면 사람은 대체로 네 단계의 과정을 밟아간다고 한다. 첫 번째 반응은 부정이다. 이건 현실이 아냐, 믿을 수 없어, 되돌릴 수 있어! ...절규한다. 신체의 일부를 잃었는데 여전히 붙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환상지(phantom limb) 현상 같은 것이 정신적 상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분노한다. 소중한 그것을 빼앗아간 그 누군가를. 만약 약탈자가 분명하다면 그에게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사람은 범인을 찾는다. 하느님, 운명, 사회라는 괴물, 불특정 다수, 가까이 있는 어떤 사람 등.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소중했던 그것의 부재를 현실로서 받아들인다.

마지막에 오는 것이 슬픔이라고 한다. 부정의 슬픔 다음에 한 번 더 찾아오는, 인정의 슬픔. 잔잔하지만 더 깊은 슬픔이다. 그때 흘러내리는 눈물이 비워내는 빈 자리가 바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힘이 들어오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분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모든 과정을 "충분히 겪어야" 건강한 치유와 재건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었다. '괜찮아', '힘내', 이런 공허한 말, 어줍짢은 조언보다 '그래, 많이 힘들지'라는 공감이 더 큰 힘을 주는 이유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엔 그저 감정에 충실한다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충분히 겪는다"고 옮긴 얘기를, 그 분은 반복해서 "work through"라고 표현하셨다. 그냥 일상용어는 아닐 듯 싶어 찾아보니 프로이트 임상심리 이론의 핵심 개념이라 한다("durcharbeiten"). 그것은 당사자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어떤 정신적 내상을 말, 글, 그림, 음악 등,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소통하는 과정, 그렇게 해서 그 체험의 '의미'에 대한 언어화된 해석을 다듬고 풍부히 하는 과정을 뜻한다고 한다. 이 과정을 겪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은 정신적 내상이 새로운 자아의 일부로 고착된다고 한다.

언젠가 블로흐라는 독일 철학자의 정신분석 논문에서 이런 얘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왜곡된 자아는 내상적 체험을 건강하게 치유하지 못한 결과가 무의식으로 침전된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그 기원을 망각하고 본래적 자아인양 착각하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지성화 과정을 밟게 된다고. "working through" 여부는 먼 미래까지 우리 내면의 일부로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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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와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무슨 대단한 분석과 제언 이전에, 나 자신의 상처를 건강하게 치유해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떠올랐던 이야기들이다. 2012년은 상처투성이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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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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