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향수는 꽃향기를 바탕으로 한 제품이 인기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끌로에 ‘로즈 드 끌로에’. 조 말론 런던 ‘사쿠라 체리 블로섬’. 살바토레 페라가모 ‘이모지오네’. 아닉구딸 ‘릴 오테’. 지미추 ‘블로섬’. 불가리 ‘아쿠아 디비나’. 에르메스 ‘자르댕 무슈 리’. 구치 ‘플로라’. 이세이 미야케 ‘시티 블로섬’. 프레데릭 말 ‘로 디베’.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스타일 
봄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향수들…귤, 복숭아 등 과일향으로 청신함 더해
페닐에틸알코올에 헬리오트로핀을 섞으면 초여름 흰 라일락이 된다. 페닐에틸알코올에 벤질살리실산염과 안트라닐산메틸을 넣으면 백합이, 초산벤질과 갈바눔을 넣으면 히아신스가 된다. 딸기는 프룩톤과 에틸말톨을 섞어 만들고, 여기에 안트라닐산메틸을 더하면 산딸기가 된다.

향수는 이렇게 화학원료가 섞여 탄생한다. 현대의 연금술이랄까. 향수가 재현하고자 하는 향, 향수의 느낌을 시각화한 광고 이미지는 모두 꽃, 풀, 바람, 물 같은 자연인데, 실은 이것이 인공적 화학원료를 합성해 만든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사막 위에 지상 최대의 빌딩숲을 지어 쇼핑 천국으로 거듭난 두바이가 상징하듯,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능가하려는 욕망과 그 욕망을 충족시킬 능력을 가진 존재다. 자연이 선사하는, 매혹적인 찰나의 향을 유리병 속에 가두고 싶은 욕망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에르메스의 전속 조향사 장클로드 엘레나는 자신의 수필집 <나는 향수로 글을 쓴다> 출간을 기념해 지난 26일 서울에서 열린 저자 간담회와 책에서 “자연향료는 조합을 통해 다른 향을 만들어낼 수 없지만, 인공향료로는 상상력을 더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향을 만들 때) 자연에서 떨어져 나왔다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간다”고 강조했다. 향수의 역설만큼이나, 향수를 만드는 그의 생각도 흥미롭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서 있는 명품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신제품 론칭을 위해 찾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홍차를 마시다 자본주의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을 떠올린다. 유행을 창조하는 뷰티업계의 일원이면서도 그는 “유행은 블로거들이나 이야기꾼들이 모이는 작은 세계에 둘러싸인, 일종의 미인대회와 같은 것”이라며 “사람들은 유행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혹은 냉소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향수는 추억 또는 기억이기도 하다. 회사원 박혜민(가명·38)씨는 에스티 로더의 ‘플레저’를 볼 때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96년작)이 떠오른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개봉한 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프로모션 상품으로 ‘플레저’의 샘플을 받았는데,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그 향이 영화 속 줄리엣(클레어 데인스)의 청순함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뒤 20년 가까이 박씨는 “여성스러워 보이고 싶을 때마다” 이 향수를 사용한다. 샤넬의 ‘넘버5’는 이 향수만 입고 잔다고 했던 마릴린 먼로로, 최초의 남녀공용 향수 ‘시케이원’(ck1)을 선보였던 캘빈클라인은 남녀공용 향수의 대명사로 기억되기도 한다.

시향지가 아니라
피부에 직접 뿌려
체취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지속력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골라야

꼬마 자동차 붕붕이 아니라도 꽃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름은 태양, 가을은 낙엽, 겨울은 눈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처럼 봄의 단짝은 꽃,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오는 봄답게 봄철 향수도 꽃향기가 기본이다. 패션전문 월간지 <데이즈드>의 오다혜 뷰티 에디터는 “사향, 나무 등의 향이 기본인 겨울 향수와 달리 봄 향수는 살갗에 스치는 것처럼 가볍고 여성스러운 꽃향기가 어울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향수업체들은 꽃향기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봄 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장미, 재스민, 벚꽃, 작약 등의 향에 베르가모트 같은 허브와 감귤류(시트러스), 귤(만다린), 복숭아 같은 과일향으로 달콤하고 청량한 느낌을 더한 제품들이 쏟아진다. 이달에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아이리스와 작약, 불가리안 장미 등의 향을 낸 ‘이모지오네’를, 에르메스는 재스민, 금귤, 대나무 등의 향을 조합한 ‘자르댕 무슈 리’를 선보인다. 아닉구딸은 제주도의 감귤과 녹차 향에서 착안한 ‘릴 오테’를, 불가리는 감귤류, 목련, 베르가모트 향을 조합한 ‘아쿠아 디비나’를 출시한다. 5월엔 조 말론 런던에서 벚꽃 향을 기본으로 한 ‘사쿠라 체리 블로섬’을 내놓을 예정이며, 구치는 봄철 향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인 ‘플로라’의 병 디자인을 바꿔 새롭게 선보인다.

이렇게 많은 향수들 가운데 나한테 맞는 향을 고르는 요령은 뭘까? 장클로드 엘레나는 “광고의 이미지만으로 향수를 선택하면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첫째, 향수 샘플을 요청한다. 둘째, 향기를 맡아 본다. 셋째, 마음에 드는 향을 선택한다. 단, 향기를 맡을 땐 시향지가 아니라 피부에 직접 뿌려 자신의 체취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지속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포인트다. 임원철 한불화장품 수석연구원은 “굳이 명품 향수라고 따라 쓸 필요가 없다”며 “부담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향을 쓰면 된다. 어떤 향을 좋아하는 건, 그 향에 그 사람의 체취를 부각시켜주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좋아하게 된다는 걸 분석해놓은 논문도 있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위 내용은 2015년 4월 1일자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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