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왜냐면]
저는 경남 합천군 산골 마을에 사는 스물두살 ‘청년 농부’입니다. 농번기가 시작되면서 지나가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이때, 올해는 농사일에만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 무상 급식이 중단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욱이, 정한이, 정민이. 삼형제의 엄마인 경선 이모는 유상 급식을 반대하며 우리 면에서 가장 먼저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경선 이모를 만나 ‘무상 급식 중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열한살 정욱이, 여덟살 정한이는 면에 있는 가회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유상 급식이 시작되던 날 경선 이모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 손에 도시락을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왜 도시락을 싸주려 하는지 이야기를 했어. 아이들 의견은 묻지 않고, 어른이 내린 결정이라는 이유로 도시락을 강요할 수는 없었으니까.”

경선 이모는 아이들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자기의 소리를 내는 힘을 기르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홍준표 지사님은 왜 아이들에게 무상 급식을 중단해도 되는지 한번도 묻지 않았을까요? 어른의 스승인 아이들을 잘 섬기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마음대로 목숨을 살리는 밥을 빼앗아도 되는지, 지사님과 그 뜻을 따르는 분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욱이와 정한이는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엄마, 그거(무상 급식) 꼭 해야 하는 일이지요? 그럼 그렇게 해요.” 경선 이모는 아이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눈 다음 마음을 한데 모았습니다.

“하루는 정욱이가 엉엉 울면서 들어오는 거야.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오늘 급식에서 간장치킨이 나왔대. 도시락을 최대한 급식이랑 비슷하게 싸 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그날 급식표를 보니 바나나가 있길래 바나나는 넣어줬는데, 내가 미처 간장치킨을 못 본 거지. 딱 한 조각이라도 먹고 싶었다면서 우는데 어찌나 짠하던지. 정욱아, 너무 힘들면 도시락 그만 쌀까? 그랬더니 자기가 조금 더 버텨보겠다 하더라구.”

경남 양산지역 학부모 30여명은 2일 경남도청 들머리에서 무상급식 중단 사태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어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경남 양산지역 학부모 30여명은 2일 경남도청 들머리에서 무상급식 중단 사태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어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어린 정욱이와 정한이에게 학교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결정한 일이었기 때문에 잘 견뎌 나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게도 경선 이모와 뜻을 같이하는 부모님들이 생겼습니다. ‘유상 급식 반대를 위한 합천 학부모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루는 몇몇 부모님들이 모여 가회초등학교 아이들의 도시락을 다 싸기도 했습니다. 정욱이와 정한이는 도시락을 나누어 먹을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얼마 전, 경선 이모네에 재봉틀을 빌리러 갔더니 기환 삼촌(경선 이모 남편)이 “집에 애들 엄마도 없고, 이제 재봉틀도 없겠네” 하고 농담을 하십니다. 요즘 경선 이모는 유상 급식 반대 집회에 다니느라 바쁩니다. 군수를 찾아가 엄마들의 생각을 담은 편지를 전하기도 하고, 왜 무상 급식이 중단되어서는 안 되는지 알리기 위한 장을 열기도 했습니다. 하루빨리 이 일이 잘 마무리되어, 경선 이모가 이전처럼 아이들 곁에서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무상 급식 중단에도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을 거야. 아이들 밥그릇에조차 정치를 들이밀고 있으니…. 미안하지. 한 사람의 정치적 의견으로 공동체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친환경 의무 급식이 법제화되는 것이 엄마들의 바람이야.”

의무교육을 하는 아이들에게 의무급식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엄마들은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처음엔 경선 이모 한 사람의 행동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바른 분별력을 가진 어른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선 이모처럼 바른 소리를 내는 한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소리 내어 준다면 그 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 땅을 이끌어 가는 것은 작은 소리를 외면하는 ‘정치’가 아니라 작을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바른 소리’라 생각합니다.

“얘들이 처음 도시락을 먹을 땐, 희한하게 딱 자기 것만 먹더라구. 한 엄마가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소시지를 가득 싸줬는데 그걸 혼자 꾸역꾸역 먹고 있더라니까. 늘 급식판에 자기 밥만 받아먹는 버릇이 들어 나누어 먹을 줄을 모르는 거지. 그런데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더라. 서로 반찬을 나눠 먹고, 뺏어 먹는 장난도 치고. 도시락을 먹는 상황이 썩 좋은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이런 때에도 배우는구나 싶었어.”

아이들에게는 어떤 순간에도 가장 좋은 것을 보고, 배우는 능력이 있나 봅니다. 아이들이 달라진 것처럼 어른들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옆 사람에게 밥 한 숟갈 떠먹여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산밭에서 괭이질을 하며 그날이 오길 애써 기다립니다.

김예슬 청년 농부


(*위 내용은 2015년 5월 27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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