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농장 방문기 다섯번째입니다.
감자캐러 다녀온 후 8월 무더위 기승 소식에
7월말, 농장을 한번 더 찾았습니다.
물론
백순이, 칙돌이라는 태어난 지 한달 된 강아지를 데려왔다는
외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아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강아지를 보러가고 싶어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과 강아지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 성격이 다 다르듯이 두 마리 강아지의 외모와 성격도 달랐습니다.
백순이
하얀색 털의 암컷, 누구에게나 반갑게 달려와 인사함, 주는 건 무엇이든지 잘 받아먹음.

칙돌이
칙칙한 갈색 털의 숫컷, 얼굴한번 보는데 꽤나 오려 걸렸음. 아주 샤이한 성격인듯, 먹이를 주어도 반응이 없음.

첫만남에서 당연히 아이들은 백순이와 더 친해졌습니다.
아이들은 무더위도 잊은 채 강아지와 주변을 뛰어 놀았답니다.

백순이와 짝이 된 둘째 아이. 줄을 잡고 뛰고 싶어했으나 목줄이 없어 긴 나무를 들고 뛰었답니다.^^

칙돌이와 짝이 된 첫째 아이, 만난지 얼마 안되었지만 호흡이 척척 맞아 보이네요.
백순이, 칙돌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강아지 용품 파는 곳을 지날 때 마다
백순이, 칙돌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더니만 저도 모르게 강아지 목줄을 사다 놓았더군요.
근처 공원에서 목줄을 잡고 애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었나봅니다. 저는 시골개인 백순이, 칙돌이에게는 목줄이 굴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지만 목줄을 잡고 같이 뛰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더군요.
여름휴가를 맞아 8월 중순에 다시 백순이, 칙돌이를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두 배 정도로 커진 칙돌이와 반대로 백순이는 몸이 반쪽이 되어 힘들게 숨을 쉬며 누워있었습니다. 순간 백순이가 잘 안먹고 비실대니 오래 못살 것 같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무심코 흘려 들은 일이 기억났습니다.
"엄마, 백순이가 왜 저래?"
"음... 몸이 아픈가봐..."
"......"
제가 보기에도 백순이의 상태는 이미 손쓰기 어려운 상태로 보였습니다.
아마 아무거나 잘 주워먹던 백순이가 농약 묻은 무언가를 먹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지요.
아픈 백순이를 뒤켠에 데려다 뉘였습니다.
선물로 가져온 목줄 2개는 하나로 길게 이어 칙돌이 목에 채워졌습니다.
목줄을 채운다니 안쓰러웠지만 텃밭을 헤집고 다녀서 목줄을 채워야 겠다고 하시더군요.

건강하게 자란 칙돌이. 아이들이 선물한 애완용 강아지 목줄을 매고 밥을 먹고 있습니다.
혼자가 되어서였을까요.
칙돌이는 예전같지 않게 잘 따라다니며 쓰다늠는 손길에 벌러덩 눕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삶아주신 찰옥수수를 먹으며 칙돌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답니다.
하지만 백순이는 그날 저녁 숨을 거두고 말았지요.
'진작에 병원에 데려가 보시지...' 라는 원망석인 말에
아버지는 '다 지 운명이지...' 라며 백순이의 타고난 명을 탓하셨지요. 하지만 백순이와 두달여를 지낸 아버지 마음도 편치 않으셨겠죠. 아버지는 남모르게 삽을 들고 뒤켠의 산 밑에 백순이를 묻어주고 오셨습니다.
집으로 오는 기차에서 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외갓집에서 놀아서 즐거웠어?"
"응.. 그런데 안좋은 점도 있었어..."
"뭔데?"
"백순이가 죽어서 슬펐어..."
잊은듯 보였는데 아이 마음속에 백순이의 죽음은 충격과 슬픔으로 자리 잡았나봅니다.
"백순이가 하늘 나라 갔기 때문에 더이상 아프지 않을꺼야"
"그래?"
"그럼..."
아이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도 마음이 아프더군요.
두 아이를 키울때까지도 경험 해 보지 못한 강아지와의 이별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시골 강아지와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이별의 슬픔만 겪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 후회가 되더군요.
이별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지만 아이의 마음을 더 크게 해 줄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꼬옥 안아주었답니다.
몇일 뒤 아버지는 칙돌이 집을 짓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곧 토끼랑 닭도 키우신다니 칙돌이가 외롭지는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