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남성 육아휴직자의 수는 1790명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많아서 좀 놀랐다. 
휴직 제도가 있지만 실제로 휴직을 쓸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걸 감안하면 1790명이라는 숫자도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남성의 수가 2000명 가까이 된다니 든든했다. 
육아휴직한 뒤로는 우연히 육아휴직한 남성을 만나기라도 하면 
반가워서 일부러 찾아가 인사를 하게 된다.

1790명은 전 해에 비해 300명 정도 늘어난 숫자이고,
최근엔 육아휴직하는 남성의 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육아휴직하고 집에서 아이 돌보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신기해 하고, 호기심을 보인다.

2009년과 2012년, 그리고 올해, 이렇게 3년을 육아휴직하면서 보내는 동안 
주변에서 육아휴직한 아빠를 바라보는 많은 반응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그 반응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홍삼스파 사진 (1).jpg


1. "아니,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을 한다고 그래?"

학교에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하자 당시 교감 선생님이 보인 첫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새 학교로 전근가자 마자 육아 휴직계를 냈으니 
교감 선생님으로선 황당하셨을 것이다.
이때가 2009년이었으니 벌써 4년 전 일이다.
당시엔 교감 선생님께 남자인 내가 육아휴직하게 된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교감 선생님의 반응이 '남자가 무슨?'
하는 식으로 나오자 
나 또한 욱 해서 '남자가 뭐 어때서?' 
하는 마음으로 대응했던 것 같다.

요즘도 가끔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게 된다.
하지만 요즘엔 그냥 웃는 걸로 대응한다.
어차피 가치관이 다르고, 
그건 논리로 설득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2. "밥은 누가 해요?"

같이 근무했던 남성 동료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걸 물었다.
이 질문 뒤에는 한 가지 질문이 더 따라온다.
"밥도 직접 해요?"
음,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땐 좀 황당했다.
육아휴직하고 집에 있는데, 그럼 밥을 직접 하지, 누가 하나?

나중에 여러 남성 육아휴직자를 직접 만나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육아휴직한 남성 중에는 무늬만 육아 휴직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즉, 육아와 살림은 직장 다니는 아내가 하고,
남성은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나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남자가 밥 하는 게 잘 상상이 안 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놀러온 동네 아이가 이렇게 묻기도 했다.
"왜 아저씨가 요리를 해요?"
"아저씨가 요리하는 게 이상하니?
"예. 왜 남자가 요리를 해요?"
이 질문에 뭐라 대답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양성 평등의 관점에서 아이 눈높이로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는 거다.
나중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난처해하지 않을 만한 대답을 해주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던 것 같다.
그런데 왜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 내가 그 질문에 답하면서 고민을 해야 했을까?


3. "오늘은 학교 일찍 끝나고 집에 있는 겨?"
우리 동네 어르신들을 낮 시간에 만나면 이렇게 인사하신다.
만날 때마다 '올해는 육아휴직하고 집에 있어요.'라고 말씀드리는데도,
다음에 만나면 또 그렇게 물으신다.('겨'는 '거야'의 충북 사투리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남자가 밥 하는 게 상상이 안 되듯이
그 어르신들 역시 남자가 휴직하고 집에서 애 보는 게 상상이 안 되는가 보다.


4. "그래도 괜찮은 겨? 부모님들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육아휴직 계획을 처음 들으시고 난 뒤의 장모님 반응이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포함한 자식 셋을 독립적으로 키워오셨고,
내가 육아휴직한다고 했을 때 '너희들이 잘 알아서 해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장모님은 사돈 어른들의 시선이 걱정되셨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장모님 당신의 걱정도 많으셨다.
'박 서방 학교는 괜찮을까? 밥하고, 애들 보는 거 힘들텐데, 괜찮을까?' 등등 많은 걸 염려하셨다.

장모님의 염려는 육아휴직 첫 해 내내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휴직 2년 째가 되자 사위의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장모님의 시선이
염려에서 믿음으로 바뀌셨다.
그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우리 집 앞에 매화 나무가 있어서 작년에 매실 액기스를 담갔다.
매실을 따서 씻고, 물기를 뺀 다음
유리병에 매실과 설탕을 1:1의 비율로 넣고,
100일 넘게 숙성시켰다.
그렇게 해서 큰 유리병으로 두 개의 매실 액기스가 생겼다.
그런데 작년 가을 어느날
우리 집에 오신 장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 서방, 우리 집에 매실 액기스가 떨어졌는데, 매실 액기스 좀 줘. 온 김에 갈 때 가져가게."
난 속으로 '우리 장모님이 육아휴직한 사위를 이제 더 이상 어색하하지 않으시고,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기시는구나.'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5. "애 보기 힘들지 않아요?" 

많이 듣는 질문인데, 이 질문을 받으면 괜히 엄살을 떨고 싶어진다.
정말 힘든데,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정말 힘들어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게 나아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럴 때면 상대방은 이렇게 호응해준다.
"옛 말에 '밭 매러 갈래, 애 볼래?'하면 '밭 매러 가겠다'고 한다잖아.
애 보는 게 원래 힘든 거야."
힘든 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건 힘이 나는 일이다.
 

6. "아버님, 그냥 집에 계세요."

작년 겨울.
당시 여섯 살이던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려면 
세살 된 둘째와 8개월 된 셋째까지 나갈 준비를 한 뒤
첫째와 둘째는 걷게 하고, 셋째는 유모차에 태워 
4~5분 정도 거리의 유치원에 다녀와야 했다.
그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유치원 선생님들께서 도와주려 하셨다.
"아버님, 신영이 유치원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저희가 퇴근하면서 집에 내려주고 갈테니
나오지 마시고, 그냥 집에 계세요."
그 뒤로 유치원 선생님들께서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영이를 퇴근 길에 데려다주신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모를 만큼 큰 배려와 도움을 주고 계시다.

신영이의 도예 공방 선생님도 도예 수업이 끝난 뒤 직접 신영이를 집까지 데려다주시고,
이웃집에서도 겨울철에는 신영이의 유치원 등교를 도와주셨다.
이분들을 생각하면
육아하는 아빠에게 특별히 관심과 배려를 더 표현해주시는 것 같아 고맙고, 뭉클하다.


7. 마지막으로, 곧 돌이 될 우리 막내 아들의 반응
작년 4월에 태어난 막내 수현이는 줄곧 내가 키웠다.
분유와 이유식을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말하자면 내가 주 양육자다.
수현이가 잠에서 깨면 엄마가 옆에서 자고 있어도 
더 멀리서 자고 있는 나한테 기어온다.
가끔은 수현이가 새벽에 깨서 울 때 먼저 깬 아내가 안아주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 수현이는 엄마에게 안겨 있다가도 
내가 일어나 분유 타러 가면 나를 따라 기어오며 운다.
걷는 걸 배우고 있는 요즘엔 아장아장 걸어오며 운다.
그럴 때면 아이 키운 보람을 느낀다.
'품 안의 자식' 같다.
반면, 아내는 섭섭해한다.
'누나들하고 어쩜 이렇게 다르냐'며 '아빠가 키웠다고 아빠를 알아본다'고, 아쉬워한다.


쓰다 보니 
육아휴직한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서 시작해서 긍정적인 반응의 순서로 소개를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보아온 가장 많은 반응은 관심과 격려, 지지였다.
지난 주에 쓴 첫 글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이 댓글을 통해 그런 반응을 보여주셨다.
여자들은 다 하는 일인데, 남자가 한다고 좀 더 주목받고, 
과분한 관심을 받게도 되는 것 같다.
그 관심과 격려가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아이 셋을 내가 키우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 건 많은 분들 덕분인 것 같다.


(오늘 다 쓰지 못한 반응이 몇 가지 더 있다. 
아내의 반응, 휴직 경험에 대한 나 스스로의 생각, 
그리고 동료 선생님의 '육아휴직은 선생님을 성장시켰나?'라는 물음 같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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