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se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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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 가족
‘응팔’이 맺어준 자매 대화
▶ 자매 관계란 무엇일까요? 거울 같아서 애잔하기도 하고 의지도 되는 관계일까요. 아니면 한쪽의 기가 드세 또다른 한쪽이 기를 못 펴는 그런 관계일까요. 여기 <응답하라 1988>의 보라와 덕선을 보다가 기시감을 느끼고 대화를 나눈 자매가 있습니다. 갑자기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 좀 특별했던 사춘기를 공유한 그들이 서로의 기억을 교환했습니다. 인터뷰하는 새로운 가족의 초상, 독자 여러분도 도전해보세요. 투고는 gajok@hani.co.kr

‘언니, 성보라가 누군지 알아? 언니랑 되게 닮았다.’ 한밤중에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성보라가 누구인지 몰라서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흡족할 만큼 예쁘지 않다. ‘도대체 어디가 닮았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답이 왔다. ‘왜, 안경 큰 거 쓰고, 머리도 반만 올려 묶은 것도 똑같고, 좀 넓적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응팔>(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하는 짓이 언니랑 묘하게 비슷해.’ 옛날에야 다들 큰 안경을 쓰고 다녔고, 내가 뭘 그렇게 넓적하다는 건가 싶어서 성보라가 나오는 드라마의 동영상 클립을 찾아봤다. 동영상을 보면서, 동생이 새 옷을 사면 동생이 일어나기 전에 몰래 입고 나가고, 머리 나쁘다고 동생을 구박하면서 어떤 사건의 사회적 의미나 정의를 들먹이며 잘난 척하고, 동생에게 산타는 없다고 여러 번 또박또박 얘기해 줬던 일들이 ‘갑자기’ 전부 생각났다. 순간 이 드라마 작가가 날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극본을 쓴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 보기까지 했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다.

동생은 결혼을 해서 서울의 동쪽에 살고, 나는 혼자서 서쪽에 산다. 나는 가끔 동쪽으로 가서 동생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수다를 떨다 온다. 예전에 주로 내 연애 상담을 해주던 동생은, 결혼 후에는 주로 어린 조카 얘기와 본인이 꾸려가는 어린이 미술학원에 대한 얘기를 하곤 한다. 같이 살 때나,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굳이 서로 얘기했던 적은 없다. 현재가 바빠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과거가 불편해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성보라로 시작된 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한 대화는 그래서 좀 특별했다. 동생에게 그때 얘기를 좀 더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성보라처럼 사이코였다고?
예민할 때 아빠 돌아가신 뒤에
재혼한 엄마랑 사이도 안 좋았고
신경증 약 타러 병원도 갔잖니”

동생
“난 어려서 힘들지 않았다고?
엄마가 새아빠랑 재혼 전이었나
친구들이 생일파티 해주러 왔다가
새아빠 마주쳐 얼마나 상처였는데”

 
‘응답하라1988’의 성보라. 사진 tvN 제공
‘응답하라1988’의 성보라. 사진 tvN 제공

 야, 성보라랑 나랑 되게 비슷하더라. 그래도 난 네 새 옷 입고 나가서 축구 하고 흙 묻혀 오고 그러진 않았잖아?

동생 그래, 내가 비슷하다고 그랬잖아. 언니는 운동을 싫어하니까 축구는 안 했지. 하지만 성보라처럼 내 소중한 새 옷들을 몰래 입고 나가서 술 먹고 토해서, 흙 대신 토를 묻혀 오곤 했지.

웃긴다고 큰 소리로 웃었지만, 좀 미안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성보라 좋아하더만.

동생 성보라는 드라마에서 의외로 따뜻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로 나오거든. 옆집에 누가 아프다는 걸 우연히 듣고, 선뜻 운전해서 병원에 데려가기도 하고.

 야, 나도 나름 따뜻한 데가 있지 않았니? 나도 누가 아프다고 말했으면 병원에 기꺼이 데려갔을걸?

동생 글쎄… 언니가 따뜻한 구석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는데. 내가 기억하는 언니는, 식구들에게 장난 아니게 짜증 내고, 나보고 공부 못한다고 구박만 하고 그랬는데 말이야. 언니 고3 때 집안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지. 완전 살얼음판이었어. 그때는 언니가 너무 까칠하고 이상해서, 옆집 사람이 아팠더라도 언니한테는 절대 말 안 했을 거야. 언니, 옛날에 나 영어 과외 해준다고 해 놓고, 공부 안 한다고 내 얼굴에 문제집 집어 던진 거 기억 안 나? 숙제 안 해 왔다고 던졌던가?

기억난다. 웃긴다고 더 크게 웃었지만, 미안하고 기분도 별로다.

 야, 나 사춘기가 좀 길었잖아. 한창 예민할 때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 재혼하면서 엄마랑 사이도 안 좋았고. 내가 힘들었거든. 나 중학교 때, 엄마가 만든 음식에서 엄마 화장품 냄새 나는 거 같아서 밥도 못 먹었던 거 알아? 신경증 약 타러 병원도 갔었잖니.

동생 그래? 그건 잘 모르겠네. 언니가 예민해서 맨날 배 아프다 그랬던 건 기억나는데. 동글동글한 장염약을 달고 살면서, 똥 눈다고 항상 화장실에 앉아 있었지. 참, 언니, 내가 라면 먹은 거 설거지하라고 했다고 젓가락 내던졌던 건 기억나냐? 그때 ‘이게 미쳤나?’ 싶었다.

여전히 온몸을 흔들며 웃었지만, 언제 그만 웃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와, 내가 진짜 어릴 때 사이코 같았구나. 내가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아서 힘들었어 그때. 넌 어려서 잘 몰랐겠지. 엄마가 넌 예뻐했잖아.

동생 그래? 내가 어리긴 했어도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야. 나 5학년 때던가, 엄마가 가락동 집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줬어. 엄마가 내 친구 엄마들한테 아빠가 없다고 얘기해 버려서, 친구들이 우리 아빠 돌아가신 걸 다 알고 있었지. 그것도 너무 속상했어. 그런데 지금 아빠가 엄마랑 재혼하기 전이었나, 후였나, 아무튼 새아빠가 우리 살던 그 작은 집에 같이 있었던 기억이 나. 친구들이 생일 축하해 준다고 모두 왔는데, 새아빠가 추리닝의 부스스한 차림으로 소파에서 일어나서 나오는 거야. 그때 정말 당황스럽더라. 나한테 아빠 없다는 걸 친구들도 다 아는데 말이야. 애들이 너 아빠 없지 않냐고, 저 아저씨는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누구라고 설명해야 할지, 어린 마음에 너무 어려웠고, 상처였어.

우리 아빠는 1988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12년 동안 살던 화곡동의 넓은 주택에서, 가락동의 제일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낯선 동네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기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만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새 친구들이 알게 될까봐 항상 조마조마했다. 선생님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호구 조사를 한다며 애들한테 눈을 감게 하고 아빠 없는 애는 손들라고 했다. 애들이 혹시나 실눈을 뜨고 내가 손드는 걸 엿보기라도 할까봐 얼마나 식은땀을 흘리고 또 흘렸는지 모른다.

3년 뒤, 내가 중학교 때 엄마가 재혼을 하셨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삼십대 중반, 지금의 내 동생 나이 즈음이다.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게 어린 나이이다. 그때 더 어렸던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좌절해서 무너져버린 어린 엄마가 너무 미웠다. 혼자 씩씩하게 잘 살지 못하고, 결국 새아빠를 구한 심약한 엄마에게 몹시 화가 났다.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혔다. 긴 터널 같았던,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길고 컴컴한 터널 안에는 동생이 등장하지 않는다. 분명히 작은 집에서 셋이 붙어서 살았는데, 엄마랑 힘들었던 기억만 있지, 동생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동생이 어디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며, 느끼고 있었는지 관심을 가졌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저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다.

 처음 듣는 얘기네. 엄마가 너무 어렸어.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불쌍하지. 엄마가 열심히 우리를 키우긴 했지만, 완전한 엄마는 아니었던 거 같아. 그런데 그런 얘기는 왜 한번도 안 했어?

동생 그러게, 많이 어렸지. 지금 언니보다도 더 어렸으니까. 글쎄, 뭐 그런 얘기를 굳이 하겠어? 내가 아무리 내 딸 고은이를 사랑으로 열심히 키워도, 다 크면 나에게 입은 상처가 많았다고 얘기하겠지? 우리처럼?

 원래 다른 집들도 모든 가족사는 잔혹극이야. 그런 거지 뭐. 고은이는 어려운 일 없이 예쁘게 커서 너랑은 좋은 친구처럼 잘 지낼 거야. 우리랑은 다를 거야.

동생 그랬으면 좋겠네. 엄마랑 통화 좀 해봤어?

머리통이 작아서 공부를 못하는 거라고 나한테 구박만 받던 동생은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해서 벌써 6살이 된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엄마랑 살갑게 지내지는 않아도, 엄마에게 용돈도 드리고 엄마를 챙겨주면서 나보다, 그리고 나 대신, 더 어른처럼 행동한다.

 난 엄마랑 길게 얘기하면 싸우잖아. 엊그제 안부 문자 했어. 김치 받으러 오라더라. 야, 그런데 내가 어릴 때 그렇게 이상하게 굴었는데도, 넌 왜 지금 나랑 놀아? 나한테 화 안 나?

동생 아이고야,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난다. 그러게, 왜 놀까? 남편이 우리보고 맨날 연락한다고 ‘베프’냐고 놀리더라.

동생이 웃는다. 대학 졸업 뒤 취직은 안 하고 미술 작가가 되겠다고 다시 미대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결혼도 안 하고 도화지의 가장자리만 만지작거리면서 맘대로 사는 나에게 단 한번도 잔소리를 한 적 없는 동생이 웃는다.

 참, 너 고생했으니까, 내가 나중에 잘되면, 너 외제차 사줄게. 뭐 사줄까? 긴 거, 그거 사줄까? 그 긴 차 이름이 뭐더라?

동생 무슨 소리야, 저번에 집 사준댔잖아? 성공하면 평창동에 있는 큰 집 사준댔어, 네가.

 아, 그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줄게. 내가 너한테 뭘 못해주겠냐.

동생 아이고, 알았다. 내가 다 적어 놓겠어. 나 지금 일하러 가야 해. 다음에 또 맛있는 거 사줄게 건너와.

성보라보다 넓적한 나한테 구박만 받았던, 얼굴이 혜리(성보라 동생 덕선 역)처럼 조막만해서 예쁜 동생이 씩씩하게 뒤돌아서 간다. 미안하고 고맙다, 동생아.

서울 서쪽에 사는 넓적이 사이코 언니

(*위 내용은 2016년 1월8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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