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살림동호회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옛날 살림들. 위부터 둔내 늘봄대장간의 무쇠칼, 이봉주 유기의 그릇과 수저, 운틴가마 무쇠 프라이팬, 안동 하회마을의 느티나무 도마.

[esc] 라이프
유기그릇·무쇠칼·느티나무 도마 등 살림꾼들 입소문으로 찾는 이들 늘어나

옛날 살림을 사러 갔다. 케케묵은 살림이라고 다 내다버린 적이 있었는데 요즘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팅 프라이팬 대신 들기름을 발라 쓰는 무쇠 프라이팬에다 숫돌에 갈아 쓰는 무쇠칼, 닦고 간수해야 하는 놋그릇이며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도마를 사러 길을 나섰다.

칼을 다듬고 있는 늘봄대장간 주인.

우선 놋그릇이다. 놋그릇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림의 유행이 읽힌다. 방짜유기장 이봉주(87)씨는 1948년 유기그릇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공출로 집집마다 놋그릇 씨가 마른 터라 당시엔 만들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나 집집마다 연탄을 때기 시작하자 연탄가스를 쏘이면 색이 변하는 유기 제품이 퇴출 1순위가 되었다. 놋그릇 한무더기를 들고나와 양은 냄비나 스테인리스 그릇과 바꿔가는 사람도 많았단다.

스테인리스에 밀린 방짜유기 
몇년새 예단 리스트에 올라 
무쇠칼과 나무 도마 
무거워서 불편한 도구에서 
묵직해 든든한 살림살이 친구로

이봉주 유기 안양공장을 운영하는 이형근(55)씨는 “한달에 한개도 팔리지 않는 날이 많았다. 징이나 꽹과리는 물론 장구나 북까지 같이 만들면서 겨우겨우 살았다”고 했다. 방짜 유기 만드는 화덕이 꺼져가던 무렵 드라마 <대장금>이 숨통을 틔웠다. 시절이 바뀌어 몇년 전부터 결혼할 때 예단으로 유기그릇을 보내는 게 유행이란다.

이봉주 유기 공방은 경기도 안양과 경북 문경 2곳에 있다. 예단으로 나가는 유기는 거의 안양에서 아들 이형근씨가 만들고 전시회에 낼 그릇은 아버지 이봉주씨가 문경에서 만든다. 아버지가 달군 쇠를 펴는 네핌질을 하고 우김질로 오므리며 쇠망치로 두드릴 적에 아들은 압연으로 펴고 스피닝으로 깎는다. 재료는 매한가지다. 공장 입구엔 금빛으로 빛나는 구리와 동그란 주석이 든 포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어려서부터 방짜를 두드리는 메질을 하며 자란 아들은 기계로든 손으로든 쇠방망이질하듯 정성을 들인다고 했다.

유기를 만드는 이형근씨의 손은 오랜 세월 놋을 쓸고 닦느라 거칠어졌다.

무겁다, 잘못 쓰면 색이 변한다, 유기를 두고 불평이 많은데도 점점 많이 팔리는 이유는 무얼까? 유기에 반하는 이유는 우선 색이다. 연한 금색을 띤 묵직한 그릇이 주는 질감도 한몫한다. 이형근씨는 “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아름다움이 불편함을 압도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짙은 노란색이 놋그릇 색인 줄 알고 쓰는 사람도 많지만 잘 닦은 유기는 뽀얀 빛을 띤다. 노랗게 변해버린 그릇을 공장으로 보내서 다시 연마해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연마작업을 하던 나이 지긋한 직원에게 관리 방법을 물어보니 “물기를 싹 닦고 마른 수세미로 닦아야지. 물속에 넣어서 닦으면 힘만 들지”라며 버럭 소리를 높였다. 불편한 게 아니라 다른 그릇과 쓰는 방법이 좀 다르다는 뜻이다.

건강에 좋다는 유기의 효과에 대한 소문은 사실일까? 안양 유기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사과를 담아두면 색이 변하지 않는다” “김치도 끝까지 아삭거린다”는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이형근씨는 “과장된 이야기도 많지만 오염물질이 닿으면 금세 색이 변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일본에서는 방짜에 넣어두면 대장균 증식이 억제된다는 논문도 나왔다”고 했다.

주인을 따라 색이 변하는 수저, 대를 물려 쓰는 살림에 대한 매력에 눈뜨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테인리스 칼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춘 무쇠칼은 또 어떤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늘봄대장간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무쇠 부엌칼을 만든다. 살림 동호회나 여행객들 눈에 띄면서 알려진 곳이다. “소문나 봤자 주문 맞추기도 힘들다”며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주인은 담금질에 특히 공을 들인단다. “1968년 경기도 이천에 큰 대장간이 있었어. 대장장이가 50명 정도 됐는데 거기서 담금질만 12년 했지. 나무나 돌이 결이 있는 것처럼 쇠도 결이 있어. 결이 거칠수록 잘 드는 거야. 스테인리스 같은 건 입자가 너무 고와서 칼 하기엔 시원찮아.” 


늘봄대장간에 놓인 낫과 부엌칼들.

대장간 한편에는 잘린 철도 레일이 쌓여 있었다. 이걸 녹여 칼도, 낫도, 호미도 만든다. 온종일 매달리면 부엌칼을 10개쯤 만든다고 했다. “나 1개 만들 때 다른 사람들은 5~6개는 만들걸. 쉽게들 만드는데 모양은 좋아도 칼이 들지를 않지. 열처리할 때 공을 들여야 하는데 공장에선 죄다 화학 처리를 하지. 나는 배운 대로 시간이 오래 걸려도 물에다 식혀.” 종일 만들었다는데 값도 싸다. 큰 부엌칼은 1만5000원, 작은 칼은 5000원이다. 시험삼아 무를 잘라봤더니 무서울 만큼 잘 든다. 쓰다가 둔해지면 숫돌에 간다. 주인이 30년 정도 써왔다는 부엌칼은 과도만한 크기로 닳아 있었다.


부엌칼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때리고, 오리고, 다리고, 달구고, 담그고, 자루 박고, 다시 또 갈고, 15가지 일을 한다고 했다. ‘이문도 안 남는다면서 왜 어렵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인 답이 이렇다. “막 해가지고 내보내면 사람 꼬라지가 안 되잖아. 아무거라도 공을 들여서 만들어야지.”

여행객들 입을 타고 소문이 난 살림은 또 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주말에만 살 수 있다는 도마다. 택배도 안 되고 오직 안동에서만 파는 이 도마는 지영흥(57)씨가 느티나무와 밤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다. 지씨는 “두 나무가 야물면서 질기다. 소나무, 참죽나무, 편백나무 등 도마로 쓰는 나무는 죄다 거두어 실험해봤는데. 이 두 나무만 곰팡이가 안 피더라”고 했다. 오래전 사둔 나무를 3년 넘게 말렸다가 쓴단다. 주문이 들어오면 결이 살아나도록 자르고 받침까지 달아 들기름을 칠한다. 마르면 다시 칠하기를 두세번 한다. 하회마을 도마는 끝이 둥글고 나뭇결이 생생한 것이 특징이다. “도마에 몰두한 지 16년 됐어요. 작년부터 도마 좋다는 소리를 부쩍 듣게 되니까 결국은 내가 맞았구나 싶죠. 일주일에 100개쯤 만드는데 일일이 깎다 보니 주문을 못 맞추죠. 그래도 제가 만든 도마가 고운 사람 손에서 곱게 쓰이는 상상으로 살아요.”

공장이 아니라 그가 만들고 내가 쓰는 살림. 오랫동안 길들이며 내 것으로 만드는 살림. 옛날 살림은 이 맛에 들여온다. 살림 이야기를 담은 책 <띵굴마님은 살림살이가 좋아>에서 안동 하회마을 도마를 소개한 이혜선씨 생각은 이렇다. “옛날 물건들은 불편하고 손이 많이 가지만 왠지 그걸 쓰면 더 맛있어지는 것 같아요. 주문을 외운다고나 할까요. 손맛을 보태는 것처럼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면 틀림없이 맛있어져요.” 김치 양념은 돌확에 갈고 팥빙수는 놋그릇에 담아낸다는 이혜선씨가 추천하는 또 다른 살림으로는 무쇠 프라이팬이 있다. 생협을 통해 무쇠 주방용품을 파는 삼화금속 김국한 대표는 “어느 날 갑자기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국산이 밀렸다. 값도 떨어뜨리고 무쇠에 대한 믿음도 떨어뜨렸다. 올해부터 겨우 국산 무쇠솥을 찾는 소비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단순하게, 우직하게. 처음엔 1000원짜리 생활용품이 대량 쏟아지는 시대에 물성이 드러나는 단순한 살림을 찾아 헤맸다. 찾다 보니 남는 것은 세월 무게만큼 묵직한 살림살이들이다.

횡성/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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