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일들이 사실로 밝혀질 무렵.
보통일 아니겠다 싶으면서도 이번에도 조용히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지나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걱정만할 뿐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느 토요일 늦은 밤.
절친에게서 문자가 왔다.
'광화문 왔다 들어 가는 길이다'
고마운 한편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친구가 이런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던가?
다시 주말을 앞두고 남편에게 같이 광화문에 갈 것을 제안했지만 남편은 냉소적이었다.
"의미 없어! 그런다고 뭐 달라질 것 같아?"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두려웠다.
이번에도 아무일 없이 지나갈 까봐.
정말 이 나라에서 살고 싶은데, 이렇게 절망적이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국 남편 대신 친구와 촛불을 들었다.
이날 처음으로 백만 명이 모였고, 인증샷과 함께 짧게 SNS에 글을 올렸다.
촛불.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
함께하는 친구.
그 다음 토요일은 어머님 기일이라 못 나가고 다시 한 주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개똥이와 작은 올케와 조카 둘 그리고 생각이 바뀐 남편도 퇴근 후 합류 하기로.
친구와 같이 했던 광장의 분위기는 "이렇게 평화로워서야... 어디 하야하겠어?" 할 정도로 평화 그 자체라서 아이들을 데려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개똥이에게 시국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같이 가겠냐 물으니 가겠단다.
내복, 모자, 목도리, 장갑, 양초, 종이컵, 방석, 비옷, 핫팩 그리고 다량의 간식.
준비할게 많았다.
분당선을 타고 왕십리역 까지 가는 동안에도 가족동반으로 목적지가 광화문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지애가 느껴졌다.
왕십리역에서 화장실 들러, 편의점 들러 광화문역으로 고고고.
- 전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개똥이.
광화문 승강장에서 출구까지는 사람으로 막혀 있었다.
승강장을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좌/우 번갈아 전철이 4~5대는 왔던 듯.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서로가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한참을 걸려 출구로 나오니 첫눈이 그쳤다.
바닥은 젖었지만 다행이다.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돕고 있다.
작은 외숙모가 준비한 피켓을 들고 기념 촬영
작은 올케와 조카 둘 그리고 남편의 후배와 합류하여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을 위해 LED초도 샀는데, 녀석들은 진짜 초를 더 좋아했다.
퇴근한 남편도 뒤늦게 합류 성공.
안치환 그리고 양희은은 감동이었다.
촛불 파도타기.
소등에 이은 점등.
다양한 공연과 발언.
중간에 모금함이 돌았는데 돈이 넘칠 정도로 많은 성금이 걷혔다.
수 많은 사람들은 수 만원씩을 주저 없이 기꺼이 내 놓았다.
누가 광화문에 가면 5만원 준다고 했던가?
주최측이 주는 게 아니라 광장에 모인 국민들이 오히려 주고 온다.
5시 30분 정도부터 8시까지 아이들은 잘 있어 주었다.
6세 남아는 그 시끄러운 광장에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었지만
다른 남아 둘은 재미있었고, 스트레스도 풀렸단다.
8시 행진이 시작될 때 우리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시청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서 무작정 코리아나 호텔로 들어 섰는데, 들어 서자마자 "화장실은 2층입니다"라는 친절한 안내.
자비로 구입한 간식을 나눠주는 사람들.
아이들에 대한 소소한 배려들.
하나 하나가 감동이었다.
내일은 광화문에 독수리오형제가 출동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강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