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형부, 작은언니, 큰형부, 큰언니, 나, 큰언니 둘째 딸 승민, 첫째 딸 승주, 큰언니 외손녀 다연, 조카 사위 경모(윗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큰언니의 둘째 딸 이승민이 그렸다.
[토요판] 인터뷰; 가족 / 이모할머니의 가족일기
▶ 가족이라는 이름의 집을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한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한다, 예쁘다, 보고 싶다…. 거실이나 각자의 방에서 이런 간질간질한 말을 네이버 밴드에서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이들 가족에게 34년의 나이 차이는 공기처럼 가볍습니다. 지역도 뛰어넘습니다. 서울에 사는 큰언니 가족과 싱글인 나, 고향에 거주하는 작은언니는 디지털 공간에서 매일 만나고 대화를 나눕니다. 이 가족의 모바일 대화를 엿보는 건 어때요?

2013년 여름, 아버지의 생신을 앞두고 세 자매가 생신 선물로 집을 사드렸다. 무슨 생신 선물이 그렇게 크냐고? 아직 지방 소도시의 작은 마을에서는 서울 반지하 방 2개짜리 전세금으로 햇볕 잘 들어오고 전망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집을 살 수 있다. 아버지는 농사에는 천부적 소질이 있으셨으나 평생 사업과는 운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시도를 되풀이하시다가 큰오빠에게 물려주시려던 땅과 집을 은행에 강제반납하시고 무소유의 홀가분함을 피력하시며 즐겁게 사신다. 그냥 다 좋다고 하시지만 좀 더 밝고 넓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형부들의 기꺼운 동의를 얻어 집을 사드렸다.

세 자매 가운데 작은언니만 고향에서 산다. 자연히 아버지를 챙기고 집안의 대소사를 정리하는 일이 작은언니의 몫이 되었다. 온라인 대화방을 세 자매가 개설했다. 네이버 밴드 이야기방은 어머니의 이름을 딴 ‘춘자씨네 꽃밭!’. 2007년 돌아가신 어머니는 우리를 꽃처럼 예쁘다며 키워주셨고 넓은 마당에 사시사철 꽃을 피워내시는 정원사의 영혼을 가진 분이셨다. 사춘기 때 어머니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고 그런 아버지에게 평생 화 한번 안 내고 사신 어머니가 바보 같아서, 아버지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기 싫어서 피하다 보니 막내딸인 나는 아직 혼자다. 두 언니들은 같은 해 결혼하여, 이제는 첫째를 나란히 출가시키고 손녀를 본 할머니가 되었다. 더불어 나도 이모할머니가 되어버렸다!

2013년 8월13일

 언니와 형부들의 마음이 깃든 선물, 예쁜 집! 엄마가 계셨으면 정말 좋아하셨겠다. 여름엔 엄마 생각 많이 나는데 엄마 기일 전에 정리되어서 정말 좋네. 우리는 못 내려가서 미안! 작은언니 혼자 이사하느라 고생 많았겠다. 그 집을 수리한 사람이 정말 자기 살 것처럼 수리를 잘한 것 같아.

작은언니 아버지도 피곤해서 입술이 터지셨더라. 오래된 물건들은 다 버리고,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제일 큰 장독은 가져와서 베란다에 두었지. 작은형부가 알면 잔소리할 거야. 힘들게 일한다고.

큰언니 정말 고생 많았네. 이사가 보통 힘드냐. 아버지는 평생 힘든 이사는 안 해보셨을 텐데. 참 많이 변하셨다. 내 동생 힘든 거 혼자 하게 해서 미안해~! 일하는 사람 시키라니까. 하긴 그것도 맘대로 잘 안되지.

 그러게. 엄마 계실 땐 평생 손수 물도 안 드시던 분이 밥도 하시고, 빨래도 하시는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네. 친구들 보니까 다들 혼자 계시는 아버지나 시아버지 챙겨드리는 게 제일 고민이더라.

아버지 집 선물해드리고 만든
대화방 ‘춘자씨네 꽃밭’에서
세 자매의 수다가 꽃핀다
예쁘다, 장하다, 보고싶다…

손주 본 언니들은 벌써 ‘할머니’
큰언니네 함께 사는 난 ‘이모할머니’
조카 따라 모델하우스 가고
소소한 기쁨과 가족을 배운다

2013년 8월25일

작은언니 오늘 하루도 다들 즐거웠나요? 난 아버지 집에서 가져온 이불하고 커튼 세탁하고 다리고 했더니 하루가 다 갔네. 그래도 세 딸 중에 나라도 시간이 있으니 다행이지. 좀 전에는 우리 새아가랑 손녀 보쌈 사서 먹이고 용돈 줘서 보냈지. 같은 아파트 사니까 이렇게라도 자주 얼굴 볼 수 있지. 오늘 이 밤도 행복해!

큰언니 그래! 며느리 잘 본 것도 다 네가 쌓은 덕이고 복이다. 자식들도 손주들도 다 잘될 거야. 우리가 아버지에게 잘해드리는 것에 대해 형부도 거부반응이 없어 다행이지. 딸 결혼하고 손녀 보고 나서는 형부가 더 잘한다. 남자 형제들만 있어서 도통 여자 마음도, 며느리 마음도 잘 모르는 것 같더니만. 요즘 나날이 철이 든다. ㅎㅎ

작은언니 우리 형부는 진짜 최고지. 박 서방도 형님 정말 대단하다고 하잖아. 처형 하자는 대로 다 맞춰준다고! 근데 우리 막내는 많이 바쁜가 보네. 인기가 많아!

큰언니 막내는 우리도 얼굴 보기 힘들다. 매일 새벽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나가고! 회사랑 연애하는 중인가 보다.

학창 시절부터 친구였던 큰언니와 형부는 아버지 허락하에 주로 우리 집에서 만났다. 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무렵부터 큰형부는 항상 가족처럼 오빠처럼 함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교로 데리러 오는 것도 큰형부였고 처음 연애라는 걸 할 때 상담을 해준 것도 큰형부였다. 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 대학생이 된 큰조카를 데리고 살다가 큰형부도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살게 됐다. 주말이면 가족이 모여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데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34년이라는(언니와 나는 14살, 나와 큰조카는 12살, 큰조카와 막내조카는 8살 차이가 난다) 세대의 간극을 서로 깨달으며 다름, 혹은 비슷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안정된 직장을 나와서 꿈을 이루고 싶다며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 형부와 큰언니는 나를 지지해주었다. 네가 가진 장점은 싱글인 것밖에 없으니, 먹여주고 재워줄 테니 네 꿈과 의지대로 살아보라고! 격려해준 가족 덕분에 99%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했고 여전히 꿈을 향해 고군분투중이다.

큰조카가 결혼을 하고 나도 밤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을 다니다 보니 얼굴을 자주 보고 얘기하던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큰조카의 딸이 자라는 매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육아일기 밴드를 개설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매일 보지는 못하지만 대화는 많아졌다. 큰언니, 작은언니와도 밴드에 이야기방을 만들었다. 때로는 집에 있어도 거실에서, 각자의 방에서 대화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얼굴 보고 얘기하기엔 간질거리는 말도 온라인상에서는 더 자주 하게 된다. 예쁘다. 장하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이런 말들이다.

2015년 2월26일

작은언니 오늘 결혼기념일이라 꽃 받았네! 예쁜 귀걸이까지!

큰언니 32주년 결혼기념일 축하한다. 같은 해에 결혼해서 32년을 정말 잘 살았다. 힘든 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더 단단해지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아는 우리여서 참 좋구나.

 나는 이런 언니들의 막내라서 정말 좋아. 작은형부는 정말 로맨티스트야. 큰형부는 요즘 결혼기념일이면 해외여행 예약하시더라. 큰언니는 꽃 받는 걸 더 좋아하는데. ㅎㅎ

3월 둘째 주, 작은언니 부부가 서울에 놀러 왔다. 큰형부가 재미있는 일정을 짜야 한다는 의무감에 계속 고민하셔서 인사동에서 하는 트릭아트(착시를 이용한 미술) 전시와 대학로에서 <당신만이> 뮤지컬을 보여드렸다. 하루는 큰형부와 작은형부가 외출을 하고 여자 셋이 모여서 고스톱을 쳤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들이 어렸을 때는 젊은 엄마 같았지만, 이제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 같다.

작은언니 사돈어른 장례는 설 연휴여서 오히려 잘 치른 것 같아.

큰언니 그래. 시어머님 모셨던 건 다행이다 싶어. 형부랑 안 좋을 뻔했지만, 전화위복이라고 요즘은 더 잘한다! 남자는 여자를 몰라. 마음이 왜 다치는지!

 나는 그때 진짜 언니랑 형부랑 같이 안 살까봐 무서웠는데. 내가 언니 책임져야지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작은언니 형부랑 박 서방이랑 사이가 좋아서 정말 우리가 편한 거 같아. 둘이서 공연 잘 보고 오겠지? 같이 못 가줘서 좀 미안하네.

언니와 형부들은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나서 결혼으로 새로운 가족이 되었고, 나는 언니들의 결혼으로 아빠 같고 오빠 같은 형부들과 가족이 되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 중의 하나는 언니들이 혹시라도 이혼을 하면 형부들과 남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고 원앙같이 지내는 부부라 해도 서로 편하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있는 법이다. 몇 해 전 평생 잉꼬부부로 추앙을 받던 큰언니 부부에게도 위기가 왔는데 작은 말씨 하나로 서로 엄청 상처가 되었던 적이 있다. 결혼생활에서 정말 조심해야 할 말이 각자의 가족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남들은 독신으로 언니 가족과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우린 가족인데 왜 불편하지?” 하고 되묻는다. 가족들은 나의 결혼을 독촉하거나 문제 삼은 적이 없다.

지난주에 결혼한 조카가 아파트 분양 청약을 알아본다고 온 가족이 출동하여 서울 근교의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다. 직장생활 초년 으레 들어둔 청약저축을 몇 년 전에 해약했다가 그래도 혹시 모를 미래의 독립을 생각하여 1년 반 전에 넣은 월 2만원짜리 청약저축이 전부인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다. 두세 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잠깐 볼 수 있는 모델하우스라니! 집을 사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문득 내가 비정상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정된 직장을 나와 불안정한 직장으로 이직해서 10년이 넘게 살다 보니 노후를 위해서 저축을 얼마나 해야 하고 집을 사기 위해서는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조카가 집을 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진지하게 스스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혼자 살아도, 가족과 같이 살아도 경제적인 독립과 노후대책은 필요하겠구나!

미스김 라일락

(*위 내용은 2015년 4월 10일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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