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우슐라(76)의 크리스마스에 절대 빠지지 않는 장식이 있다. 검은 옷 입은 산타(사진)다. 1950년에 11살 많은 큰오빠가 준 선물이다. 두꺼운 종이로 만든 깡통인데 볼은 여전히 발그레하다. 스프링에 달린 목은 뭐가 즐거운지 64년째 끄덕이듯 달랑거린다.

본래 이 산타 몸속엔 초콜릿 세 조각이 들어 있었다. 여섯살에 옛 동프로이센 땅에서 서쪽으로 피난 온 우슐라는 초콜릿을 앞니로 갉아 조금씩 녹여 먹었다. 그 전해 크리스마스에는 엄마가 과자를 한 움큼 구웠더랬다. 버터를 용케 구해 반달 모양을 빚었다. 바로 먹기 아까워 집에 들여놓은 전나무 가지에 장식으로 매달았다. 집었다 놨다 눈독 잔뜩 들였다. 그 맛을 상상하며 즐거움을 지연시키는 건 쌉싸래한 쾌감이었다. ‘사각 사각 사각.’ 아침에 일어나니 과자를 묶어뒀던 실만 남아 덜렁거렸다. 밤새 쥐 좋은 일 한 셈이었다. 그 억울한 크리스마스 한 해 뒤 오빠는 과자가 남긴 미련일랑 깨끗이 밀어버릴 환상의 맛을 선사한 거다.

그 뒤 오빠는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낳고 물류공장에서 일했다. 해가 유난히도 반짝이는 날, 오빠가 일하는 공장 지게차 운전사는 상자를 가득 싣고 공장 문 쪽을 향해 나서는 중이었다. 햇살이 찡 하고 눈에 박혔다. 앞이 캄캄해졌다. 그 순간 상자들이 쏟아져 내렸다. 오빠는 그 밑에 깔려 즉사했다. 35살이었다. 오빠가 살아 있다면 87살이 되는 올해에도 검은 옷을 입은 산타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우슐라의 명절을 지켰다.

우버(45)한테도 명절 필수품이 있다. 유리병 안에 담은 뒤 공백을 뽁뽁이로 메운 것도 모자라 헝겊으로 여러 겹 감싸 놨다. 할머니가 남긴 손바닥 반쪽만한 파란색 유리종이다. 파란색이라지만 종 꼭지만 원래 색을 증명하고 있다. 우버의 증조할머니 것으로 전해지니 족히 100년은 됐다. 할머니는 전쟁 통에 다섯살 된 딸과 피난길을 나섰다. 남편은 징집됐다. 수레를 끌 말이나 소도 없으니 양손 가득 봇짐이 전부였다. 여섯달 동안 서쪽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쓸 만한 손수레 발견하고 감사기도 올리자마자 덩치 큰 피난민에게 빼앗겼다.

우버가 20살 생일을 맞아 영국 여행 떠나 있을 때 할머니는 뇌출혈로 숨졌다. 마지막 대화는 “우버야 돈은 꼭 복대에 넣고 다녀라”였다. 우버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생필품 넣기도 빠듯한 그 봇짐 속에 이 유리종을 싸왔던 까닭을 말이다. 그저 매 크리스마스에 그 종을 달며 상상할 뿐이다. 할머니가 그 세월을 버티려면 이 종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베른트(48)에게는 명절뿐 아니라 사시사철 집 한 귀퉁이를 지키는 47살 곰 인형이 있다. 베른트 생에 첫 곰 인형으로 아버지가 만든 거다. 짱짱한 천을 사 재단하고 몸 안은 솜으로 채웠다. 목과 두 팔, 두 다리에는 관절을 끼워 넣었다. 털은 숭숭 빠졌지만 관절은 여전히 잘 돌아간다.

곰 인형의 이름은 ‘대디’다. 아버지는 이 인형을 완성한 날 쪽지도 썼다. 베른트의 사진첩에 끝이 나달나달해진 그 쪽지가 남아 있다. “안녕. 내 이름은 ‘대디’야. 나를 아껴줘. 이름을 봐도 알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큰 사랑으로 만들어진 곰이거든. 언젠가 진짜 아버지가 네 곁에 있어주지 못할 날이 올 거야. 그래도 걱정 마. 대신 ‘대디’가 널 지켜줄 거니까.”

김소민 독일 유학생


(*위 내용은 2015일 2월 5일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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