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의 학회 출장(!)을 마치고 아빠가,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함께 걱정해주셨던, 기도해주셨던 분들을 위해 먼저 말씀드리자면, 케이티는 토요일 저녁 무렵부터 많이 나아져 통증은 거의 느끼지 않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탈장이 발생했던 위치가 아주 단단하게 많이 부어올라 있고, 멍도 아주 새까맣고 크게 들어 있긴 하지만 열이 나거나 토하는 등의 위험한 증상은 없어서 그냥 두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자료를 뒤져보니 드물긴 해도 저렇게 크게 붓고 멍드는 경우가 없진 않다는군요. 케이티는 KT 신드롬 때문에 오른쪽 하반신의 림프액이 잘 순환되지 않고 항상 적체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탈장 수술 후 생긴 추가적인 림프 부종도 만성화될 가능성이 없진 않은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한 달 안에 빠져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아이가 아파하진 않으니 우선은 한시름 놨습니다. 걱정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오후엔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집 근처 커피숍에 나가 커피 한 잔 마시며 두 시간쯤 책을 읽는 사치를 좀 부려봤습니다. '타임 머신'이라는, 1895년에 발표된 H.G. 웰스의 소설이었는데 혼자 애 보는 동안엔 이 짧은 소설도 틈틈이 읽을 새가 잘 안 나더라구요. 통증을 잊기 위해서인지 뭔지 아무튼 하도 나가 놀자고 졸라대는 통에 애가 깨어 있는 동안엔 계속 집 밖에 나가 있어야 했고 애가 자면 저도 풀썩, 꺼져서 '재충전' 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암튼, 며칠씩 질질 끌던 책을 끝내고 나니 개운하더군요. 아, 개운하단 표현은 좀 이상한가..? 이게 일종의 '고전 SF' 소설인데, 수십만 년 후 지구/인류의 모습이 아주 소름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점심 때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제가 커피숍에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서 천둥 번개 동반한 비가 쏟아져서 무시무시한 인류의 미래를 감상하기에 아주 적절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더랬죠.
아무튼, 남편이 돌아왔고, 아이도 잘 지내고 있으니, 저도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해야겠습니다. 새삼 우리집엔 아이도 있고, 아이 아빠도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도 무겁게 다가옵니다. 유민이 아버지네 집엔, 돌아올 유민이도 없고, 아버지도 없는데 말이죠. 왜 한 사람의 평범한 '아빠'를 저렇게 죽을 각오로 단식하며 투쟁하는 '투사'로 만들어야만 하는지, 뉴스를 볼 때마다, 말라가는 그 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아프고 미안합니다. 아파서 더 볼 수가 없어 외면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잡는 일이 매일의 숙제 같습니다. 평생 고생하며 살아온, 그런데도 당신 몸 하나 편히 누일 곳 없이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버지 생각도 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