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괴물모자 이야기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정이가 가족들을 괴물 뱃속에서 꺼내주는 걸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이러했습니다.
동네에 정이가 아는 형아가 하나 있습니다. 정이는 형아와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형아는 정이보다 한 살 많은 여섯살배기입니다.
한 살 차이라고는 하지만 정이 생일이 늦어 무려 20개월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형아는 정이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 술래만 하고 싶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같이 잘 놀다가도 형아 말을 안 듣고 뻗대는 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물론 여섯살배기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엄마였습니다.
'정이는 혼 좀 나봐야돼.'라거나 '정이가 좀 그렇잖아' 같은 말들을 거리낌없이 날렸습니다.
가만히 보면 큰 악의는 없어 보이는데, 그런 말을 들은 날 집에 와서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그 때 그 때 대처하지 못하고 멀뚱히 듣고 있다가 한 참 후에 뒷북 치는 제 성격이 문제이기는 했습니다.
아무튼 정이에게 다음부터는 그 형아도 그 아줌마도 같이 놀지 말자고 했습니다.
정이는 울고불고 떼를 썼습니다.
나중에 저는 정이에게 윽박지르듯이 '그럴거면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고, 그 집가서 살아.'라고 해버렸고, 제가 상상한 답변은 정이가 형아랑 안놀겠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이는 꺼이꺼이 울면서 '아줌마, 형아 집에 데려다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살겠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정이를 너무 심하게 야단쳤습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안쓰럽고, 미안해 했지만 정이는 이미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정이는 괴물모자 이야기를 하면 괴물 뱃속에서 엄마, 아빠, 재이를 꺼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괴물은 혼자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잘 놀고,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려 2주 동안 우리 가족은 괴물 뱃속에서 살았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변했습니다.
엄마, 아빠, 정이, 재이가 살았어요.
어느 날, 엄마랑 아빠랑 정이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엄마가 “동생이랑 사이좋게 놀랬지!”
아빠가 “그렇게 하면 동생이 다치잖아!”
정이는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괴물모자를 가져 왔어요.
정이가 괴물모자를 쓰니까 갑자기 무서운 괴물로 변했어요.
눈은 부릅뜨고, 이빨은 뾰족뾰족 날카로웠어요.
괴물은 하악하악 소리를 냈어요.
괴물은 “잡아먹겠다!”라고 했어요.
괴물은 엄마를 한 입에 꿀꺽, 아빠도 한 입에 꿀꺽,
기어 다니는 재이도 한 입에 꿀꺽 잡아먹었어요.
엄마, 아빠, 재이는 캄캄한 괴물 뱃속에서 만났어요.
무서웠어요.
괴물은 기분이 좋았어요. 아무도 괴물한테 야단을 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괴물은 집에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놀고 싶은 것도 마음껏 놀고,
뛰고 싶은 대로 마음껏 뛰어다니고
혼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입에서 불을 뿜으며 화내는 아빠, 엄마, 정이, 재이의 모습>
괴물모자 이야기를 2주 만에 눈치보며 간신히 꺼내자
정이는 '아니야. 엄마, 아빠 꺼내야지~'라고 허락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이에게 그림을 그려 보자고 했고, 정이는 두 장을 쓱쓱 그려냈습니다.
하나는 가족들이 입에서 불을 뿜으며 화를 내는 모습이었고,
하나는 괴물의 모습이었습니다.
괴물은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모자 모양을 그려주었더니 정이가 완성했습니다.
<괴물의 모습>
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아이에게 화를 냈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아이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었습니다.
매일 밤 반성하고, 잘못하기를 반복하는 느낌입니다.
정이야, 엄마가 미안하다.